새벽기도회 느헤미야의 관심
느헤미야 1:1-3
성경 본문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설교 말씀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 1절에서 그에 대하여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라고 말씀하고 또 그가 어느 시대 사람인 것에 대해서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기스르월”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주전465년부터 424년까지 41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통치 20년 되던 해이니, 주전 445년에 있었던 일부터 느헤미야가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바벨론이 멸망한 후 바사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에게 은혜를 주셨고, 또한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혜를 잘 활용하여 이방 나라에서 상당한 지위에 오르는 출세를 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뒤에 있는 11절 말씀에서 그의 관직이 “왕의 술 맡은 관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의 기사에서도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여 그 내용처럼 3일 만에 그가 복직이 되고, 바로가 꿈을 꾸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요셉이 바로 왕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술 관원이란 쉽게 말해서 왕이 마시는 술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왕의 정적들이 술에 독을 타서 왕을 독살하던 시대에 ‘술 맡은 관원’은 왕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이런 직책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면 맡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왕이 자신의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자리가 “왕이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또한 술만 따르고 술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국사를 논하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정치와 국가 경영에 대한 대단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 자리는 지혜와 식견이 넓고 충성스러우며 정치에도 능한 왕의 신임을 받는 소위 핵심자리에 있는 출세한 사람의 관직이었습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의 관심은 자신의 지위를 더 안전하게하고 더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2절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이라고 말씀합니다. 느헤미야는 당시 대제국의 왕궁에서 왕의 신임을 받는 출세한 관리로서 자신의 앞날과 개인의 영광에 신경을 쓰기보다 자신의 신앙의 뿌리인 “유다와 예루살렘”, 오늘 날의 표현으로 하면 교회에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3절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 말은 들은 느헤미야는 근심하고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외국에 살다보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과 고국을 그리워하게 되지만, 느헤미야는 이방 땅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부모가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는 바사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고통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관심, 곧 신약의 표현으로 하면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대한 괸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계획하심의 은혜 속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속받아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고, 지옥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관심과 소망은 느헤미야처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오늘날의 말로 표현하면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머리시오, 신부된 교회의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지상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의 모임인 교회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교회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요, 교회를 바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은 세상의 정치도, 경제도, 군사력도 문화도 아니고, 오직 교회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구원받은 우리는 늘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