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57-59문, 대요리문답 115-117문] "제4계명(1)"
출애굽기 20 : 8 - 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57문과 대요리 제115문에서는 제4계명에서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7문 : 제4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거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5문 : 제4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거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입니다.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무리하신 날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고,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심과,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임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날입니다.
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분주한 생업 속에서 그 날을 쉬면서 안식일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창조의 영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언약 백성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히 지키라고 하시데, 일차적으로 거룩은 구별을 뜻합니다. 일상적인 노동과 이익 추구에서 잠시 물러나, 하나님을 위한 날로 거룩히(다른 말로 구별하여) 나를 세상적인 유익을 위한 일이나,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과 관계에서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2)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거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여기서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문화명령(노동명령)을 성실히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는 말씀은 6일간 책임 있게 살아간 자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며 안식을 누리는 말씀입니다.
안식을 누리되 가정의 자녀와 종들 그리고 이방 나그네들까지 쉬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안식일 준수는 특정 계층의 특권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주시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안식일에 노동을 쉬라 하심으로 연약한 자들을 노동의 착취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데 참여하는 자들로 부르시는 사랑의 배려의 말씀입니다.
또한 6일 일하고 7일째 쉬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속한 일입니다. 소련의 스탈린 정권은 1929년 10월부터 1931년 11월까지 4일 일하고 5일째 쉬는 날을 도입했으나 쉬는 날을 돌아가면서 쉬게 하고 공장을 계속 가동하려 했으나, 설비를 보수할 시간이 없어서 고장과 사고가 급증했고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1931년 12월부터 1940년 6월까지 5일 일하고 6일째를 쉬는 날로 정하여 매월 6, 12, 18, 24, 30일을 쉬는 날로 지정하여 가족이 함께 쉬게 했으나 생산성 향상은 미미했고, 노동자들의 만성적 피로와 불만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스탈린은 11년간의 인위적인 실험을 중단하고 6일 일하고 7일째 쉬는 주 7일제로 돌아왔습니다. 이보다 먼저 프랑스혁명(1793) 시대에 혁명정부는 반기독교 정책의 일환으로 1주를 10일 단위로 만들어 9일 일하고 10째 쉬게 하였는데, 극심한 피로 곧 노동자와 가축의 탈진으로 1805년 나폴레옹에 의하여 폐지되기도 하였습니다.
6일 일하고 7일째 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준수함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 힘이 인간의 끊임없는 노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적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58문과 대요리 제116문에서는 제4계명에서 명하는 것을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8문 : 제4계명에서 명하는 것을 무엇입니까?
답 : 제4계명은 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정하신 때를 하나님께 거룩히 지키는 것, 곧 이레 중 하루를 종일토록 하나님께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9문 : 하나님께서 이레 중 어느 날을 매주의 안식일로 정하셨습니까?
답 : 하나님께서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고, 그 후부터는 매주 첫날을 안식일로 정하셨는데, 이 날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6문 제4계명에서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입니까?
답 : 제4계명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명하신 특정한 시간, 즉 7일 중에 온전한 하루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하거나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이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곱째 날이었으나, 그 후부터는 매주 첫날이 되어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안식일이고, 신약에서는 주일이라고 합니다.
1) “제4계명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명하신 특정한 시간, 즉 7일 중에 온전한 하루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하거나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루 중 일부가 아니라, 하루 전체를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창 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신 5:12-14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그러므로 주일 하루는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전혀 부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사실은 일주일 중 하루가 아니라 칠 일 모두를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합니다.
2) “이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곱째 날이었으나, 그 후부터는 매주 첫날이 되어 세상 끝 날까지 지속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안식일이고, 신약에서는 주일이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매주 첫날)을 새로운 안식일로 기념하여 지켰습니다(고전 16:1-2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행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그날을 ‘예수님의 날’이라는 뜻으로 ‘주일’(주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점에서(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주일은 안식일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첫 창조 곧 6일간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신약의 안식일(주일)은 새 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죄로 파괴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재창조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성도에게 참된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준 사건이므로, 완성된 ‘새 창조의 날’인 부활의 날(주일)을 기독교의 완성된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본래 안식일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는 것입니다.
3. 웨스트민스터 제117문에서는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7문 :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죄악 된 일들뿐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들과 오락을 그만두고 온종일 거룩하게 휴식을 취하되, 부득이한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하고 절제 있게 정리하고 또한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들을 더 자유롭고 적절하게 이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죄악 된 일들뿐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들과 오락을 그만두고 온종일 거룩하게 휴식을 취하되...”
‘안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샤바트’는 하던 일을 ‘그치다’ 또는 ‘중단하다’를 의미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죄악 된 일들과 오락을 중단해야 합니다(사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더불어 다른 날에는 합당한 일도 중단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 출애굽기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만나로 출애굽 백성들을 빈들인 광야에서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매일 들로 나가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출 16:25-28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그 날 만큼은 자신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쉬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게 하신 것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결코 굶주려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표징이었습니다.
안식일(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되 단순한 육체적 쉼을 넘어서서 평일에 나를 위하여 행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그 행사를 생각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그 날을 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세상일과 오락을 멈춘 대신에 하나님을 향한 공적인 예배, 가족 및 성도와의 영적 교제, 그리고 주님이 본을 보이신 ‘선한 일과 구제’가 채워져야 비로소 참된 거룩한 안식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2) “부득이한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① 먼저 안식일에도 “부득이한 일(Works of Necessity, 불가피한 일)”은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12장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도 예수님이 그들을 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이삭을 잘라 먹는 행동이 곡식을 추수하고 탈곡하는 노동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행동을 막으시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득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부득이 한 일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레 12:3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율법은 사내아이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반드시 할례를 받도록 규정했습니다. 만약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과 겹칠 경우, 안식일 노동 금지보다 언약의 표징을 행하는 법이 우선하기에 안식일에도 피를 흘리는 외과적 수술(노동)인 할례를 행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두고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아니하려고 안식일에도 사람이 할례를 행하기도하고 받기도 한다’라고 부득이함을 인정하셨습니다(요 7:22-23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가축을 외양간에서 풀어 물을 먹이는 일도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엄격한 바리새인들조차 안식일에 자기 집의 소나 나귀를 굶겨 죽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앓던 여인을 고치시며 (눅 13: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매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에게 기초적으로 필요한 수분의 갈증과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일상적인 돌봄은 안식일이라도 멈출 수 없는 불가피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은 직장인들인 공무원이 주일에 당직을 서고, 회사에서 당직을 서야하는 일들이 그런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인 일이지 매주일 마다 반드시 출근하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합당하지가 않은 일입니다. 수입이 줄어든다하여도 성도는 주일을 잘 지킬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나그네 삶에서 영적으로 유익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쉼을 누리는 길입니다.
② “자비를 베푸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도 안식일에 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라고 하시면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마 12:7-10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 “11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1-12)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질병에 사로잡혀 신음하던 자들을 해방하여 하나님께서 창조 때 말씀하신 온전한 안식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처럼 자비를 베푸는 일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더불어, 병든 이웃을 방문하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일들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일입닏. 이런 일을 행하는 날이 주의 날 곧 안식일입니다.
③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락과 노동을 그치는 것만으로 안식일을 제대로 보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을 그치고 중단한 이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사 66: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공적으로는 교회의 모임과 예배에 참여해야 하고, 사적으로는 평소에 소홀히 했던 기도와 성경 읽기에 힘써야 합니다.
안식일에 노동과 세속적 오락을 멈추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해야 할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닙니다. 노동과 세속적 오락을 멈춘 자리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교제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안식일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교회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낮잠을 자라고 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오락이나 다른 일을 행함으로 안식일을 규례를 범하지 말라는 극단적인 방어책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여야 하는 본래의 목적은 빠져버린 모습입니다.
청교도 목회자이지 신학자인 조지 스윈녹은 “안식일(주일)은 영혼의 장날(The market-day of the soul)로서, 영혼이 다가올 한 주간을 살아갈 양식을 풍성하게 구비하는 날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마을 장날이 일주일에 한번 열려서 주민들이 한 주 동안 먹고 살 식료품과 생필품을 장만하는 활기차고 분주한 날이었는데, 스윈녹은 주일에 하나님의 은혜의 장터(말씀 선포, 성례, 기도, 성도의 교제)로 나아가 한 주간 세상에서 영적으로 메마르지 않고 살아갈 은혜와 양식을 넉넉히 비축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시대의 성도들은 토요일에 주일에 필요한 식사 준비도 미리 하였고, 주일에 증거 될 말씀과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주일에는 온 가족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함께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들었고, 점심을 나눈 오후에는 교리 공부를 하였고, 저녁에 귀가한 후에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오늘 목사님이 전한 말씀의 대지가 무엇인지,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묻고 낮에 들은 마음을 심비에 새겼습니다.
3)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하고 절제 있게 정리하고 또한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들을 더 자유롭고 적절하게 이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4계명은 안식일 하루에만 관계된 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4계명을 말씀하시면서 6일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함께 명하셨습니다. 6일 동안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안식일에 하나님을 섬기는데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6일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주일에 밀린 과제를 하게 됩니다. 직장인이 6일 동안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주일에 밀린 업무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제4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6일 동안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는 미리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몸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조는 이유의 상당수는 영적 문제라기보다 전날 밤늦게까지 사람을 만나고 취미 생활에 너무 열심을 내거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미디어에 무절제하게 시간을 쓰고 주일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토요일 저녁부터 불필요한 약속을 줄이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맑은 정신으로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일을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제함으로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가장 복된 날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2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