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55문, 대요리문답 113문] "제3계명(5)"
출애굽기 20 :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55문과 대요리 제113문에서는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55문 : 제3계명에서 금하시는 죄는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이 금하시는 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것을 훼방하거나 악용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3문 : 제3계명에서 금지하시는 죄는 무엇입니까?
답 : 1)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명한 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그 이름을 무지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3)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불경건하게, 속되게, 미신적으로,
혹은 악하게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4)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칭호, 속성, 규례, 사역을 모독하고 위증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5)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모든 죄악 된 저주, 맹세, 서원, 제비뽑기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6)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합법적인 맹세와 서원을 위반하고, 불법적인 맹세와 서원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7)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서 불평하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8)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서... 이를 호기심으로 파고들거나 잘못 적용하는 것”입니다.
9)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것의 어느 부분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1:20)라고 말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자발적 사상이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계시입니다. 그러니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됩니다. ‘사사로이’라는 말은 헬라어 ‘이디오스(ἴδιος)’라는 말로서 그 뜻은 ‘자신에게 속한, 개인적인’이라는 뜻으로, 성경을 기록 목적이나 전체 문맥과 단절시킨 채 개인의 이익, 감정, 사적 논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를 금하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22장 18절로 19절에서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것을 더하는 것이요, 또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제하는 악한 행동으로서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인 양 포장해 주장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말씀하신 것처럼 속여 그분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영적 위선이자 제3계명의 위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겔 13장 22절에서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이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자의적 잣대나 거짓 율법주의로 성도에게 부당한 죄책감과 불안을 심어 영혼을 병들게 하거나 진정한 회개와 심판에 대한 경고 없이 무조건적인 축복과 안심만을 전하여, 죄인이 돌이키지 못하고 멸망에 머물게 만든다면 영혼을 해롭게 하는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오늘날 기복주의와 번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을 경배와 순종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야망을 실현해 주는 보조자로 전락시켜 버리고, 성경이 약속하는 영원한 생명, 성화,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복을 단지 현세의 재정적 부와 육체적 건강으로 축소·치환하여 성경 본래의 구속사적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제3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10)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것의 어느 부분을... 혹은 어떤 방식으로 왜곡하여 모독적인 농담”을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12절로 13절에서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국가적 위기와 심판 앞에서 백성들에게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고 회개하라고 엄중히 명령하셨는데, 백성들은 회개 대신 어차피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라고 말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심판의 경고를 비꼬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를 냉소적인 유행어와 농담거리로 전락시켜 죄를 정당화하고 양심의 가책을 무마하려 한 영적 완악함의 극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원래의 의도와 어긋나게 사용하는 것, 특히 농담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제3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11)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것의 어느 부분을... 별나고 무익한 질문들이나 헛된 말다툼이나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일에 악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별나고 무익한 질문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성경의 핵심인 복음과 믿음에서 벗어나, 당시 영지주의적 신화나 세속적 족보, 신비주의적 사변에 집착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 과도한 호기심을 갖고 파고드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보다 무익한 의문과 혼란만 남을 뿐입니다.
진리에 대한 헛된 말다툼도 버려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4절에서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진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옳음을 과시하기 위해 말씀의 세부 어휘나 지엽적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태도(말싸움, 변론)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일도 제3계명의 위반입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서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단들의 특징은 성경 구절을 문맥과 무관하게 발췌하여 자신의 왜곡된 사상이나 이단 교리를 변호하는 방패막이로 삼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단에 속한 자를 한두 번 권계한 뒤 멀리하라 명한 것은, 이단에 빠진 자들은 처음부터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2장 19절에서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고,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범죄하고 타락한 인생들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함으로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영혼의 구원, 온전한 성화, 그리고 교회의 덕을 세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2)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피조물이나 하나님의 이름 아래 내포되어 있는 무엇에 마술 혹은 죄악 된 정욕과 행동에 남용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자 몇몇 유대인들이 바울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입니다(행19:13-16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들이 선포한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악귀가 떠나가기는커녕 반대로 악귀에 사로잡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마술의 도구처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3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죄악 된 정욕과 행동에 남용하는 것도 제3계명의 위반입니다. 초대 교회를 어지럽힌 무리 중 하나는 ‘율법폐기론자’들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은 십계명을 비롯한 도덕법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다서 1장 4절에서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죄를 짓는데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13)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및 방법들을 훼방하고 경멸하고 욕하거나 교활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및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의 진리체계를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와 방법을 훼방하고 경멸하고 욕하고 교활하게 반대하는 것을 단순히 복음을 거절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비방하고 핍박하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5절에서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이라고 말씀하고 또 사도행전 4장 18절에서는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고 말씀함으로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고 의식법으로서 율법과 나름대로 도덕법으로서 율법을 지킨 자신들의 행위와 의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대속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경멸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베드로후서 3장 3절로 4절에서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욕하는 자들도 있는데, 베드로전서 4장 4절에서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라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욕을 먹고 비방을 당했음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를 향한 악의적인 비방과 또 테러와 핍박으로 인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고 있고, 창조론을 부정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책과 영상으로 만들어서 성경의 교훈을 비방하는 일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죄악들입니다.
14)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외식과 악한 목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3계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שָׁוְא, 샤브: 헛되게, 거짓되게) 일컫지 말라’는 것은 거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다 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내 이마에 두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속마음은 세상 정욕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신의 더러운 죄를 감추는 위장막으로 내세우는 짓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은 결코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외식과 악한 목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남에게 경건하게 보이기 위해 시장 어귀에서 길게 기도하면서도 뒤로는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눅 20:47). 복음과 신앙 고백을 자신의 사업, 정치적 입지, 교계 내 권력, 도덕적 우월감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의 종으로 부리려는 패역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나 교회의 유익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과 명성을 위해 위선적으로 거룩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는 것이므로 제3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15)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8장 38절에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불이익이 두려워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성호)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평판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높은 자리에 두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마치 세상 앞에서 감추어야 할 흠결이나 부끄러운 꼬리표처럼 취급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고 가치 없게(שָׁוְא, 샤브) 만드는 행위입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조롱하는 곳입니다. 이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은 불이익, 따돌림, 경제적 손해, 또는 비난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성도가 세상의 조롱이 두려워 주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여 숨긴다면, 마지막 심판의 날 영광의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주님 또한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당당히 고백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본질적인 척도입니다. 세상이 불이익과 조롱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바른 모습입니다.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 것을 요구하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제3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16)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에... 적합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고, 열매가 없고, 무례한 행동을 하여, 그 이름에 수치를 돌리거나 그 이름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적합하지 않고, 지혜롭지 않고, 열매가 없고,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은 제3계명을 어기는 일입니다. 성도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표를 달고 움직이는 대표자(대사)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도의 왜곡된 삶은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삶으로 범하는 제3계명 위반'이 됩니다.
① 하나님의 이름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돌리거나 그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6장 6절에서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만일 성도가 고의적으로 죄를 짓고 타락의 길을 간다면 세상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헛된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조롱거리로 만드는 패역한 죄입니다.
②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치 않은 지혜롭지 않은 행동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돌리거나 그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악의를 품고 지은 죄가 아닐지라도, 영적 분별력과 절제 없이 경솔하게 처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실수, 감정적 폭발, 경제적 무절제, 분별없는 처세술로 인해 불신자들에게 불필요한 비판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치 못한 열매 없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돌리거나 그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5절로 8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참된 생명을 가진 성도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또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 거룩한 변화와 생명력(열매)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능한 분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위선이 됩니다.
④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치 못한 무례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돌리거나 그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2장 23절로 24절에서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가졌다고 자랑하면서 도리어 율법을 어겨 도덕적 파탄을 보인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무례하고 비도덕적인 언행은 불신자들의 전도의 문을 막고,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라고 조롱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수치를 돌리고,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배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