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54-55문, 대요리문답 112문-113문] "제3계명(3)"

   출애굽기 20 :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54문과 대요리 제112문에서는 제3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4문 :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말씀과 행사를 거룩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라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2문 :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1)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칭호, 속성”을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2) “규례, 말씀, 성례, 기도, 맹세, 서약, 제비뽑기, 그분의 사역”을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3) 또한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 일컫지 않는 첫 출발지점은 입술과 행동이 아닌 마음의 내면인 “생각과 묵상”에서부터입니다. 

성경에서 생각하다는 말은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말함이 아니라, 깊이 고찰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자를 특별히 여기십니다. 생각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사무엘상 12장 24절에서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묵상 가운데 하나님을 기억할 것에 대해서 시편 19편 14절에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입술을 통하여 말로서 드러내기 전에 먼저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정돈되어야 합니다. 

② 둘째로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언정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말과 글에서”라는 것은 성도가 세상 속에서 신앙을 증언할 때 사용하는 공적인 고백(말·글)과 성경 말씀에 책임을 지는 합당한 언어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서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하십니다. 또한 글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에 대해서 시편 102편 18절에서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라고 말씀하듯이 글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록해야 합니다. 

또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거룩하고 신중한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데,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서 거룩한 고백에 대해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거룩한 고백)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는 책임 있는 대화에 대해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골로새서 4장 6절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도의 대화는 듣는 이에게 은혜를 끼치고, 세속적인 더러움에 물들지 않도록 소금처럼 부패를 막는 ‘책임 있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③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모든 행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도의 먹고 마시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신앙적 행위까지, 성도의 존재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시편 29편 2절에서는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가진 거룩한 무게감에 걸맞게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제3계명의 핵심 목적입니다.

 ④ 또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을 살리고 이웃을 세우는 풍성한 유익을 가져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고 하시고, 고린도전서 14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유익)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유익과 교회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의 경건한 언어와 거룩한 고백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고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열매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또한 예레미야 32장 39절에서는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유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거룩히 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성도와 그 성도의 후손에 영적인 복과 유익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⑤ 이 모든 일을 행할 때의 자세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다루는 성도의 심령 상태는 ‘거룩함’(세상과 구별)과 ‘경건함’(거룩한 두려움)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로 29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소멸하는 불’이시기에, 그분의 이름을 대할 때는 노예적인 공포가 아니라 창조주와 구속주를 향한 ‘거룩하고 경건한 두려움(Reverence)’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은, 마음 깊은 묵상에서부터 입술의 고백과 책임 있는 삶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거룩한 두려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 영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55문과 대요리 제113문에서는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5문 : 제3계명에서 금하시는 죄는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이 금하시는 죄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것을 훼방하거나 악용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3문 : 제3계명에서 금지하시는 죄는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명한 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 그 이름을 무지하게, 헛되이, 불경건하게, 속되게, 미신적으로, 혹은 악하게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 하나님의 칭호, 속성, 규례, 사역을 모독과 위증에 사용하는 것, 그리고 모든 죄악된 저주, 맹세, 서원, 제비뽑기에 사용하는 것, 합법적인 맹세와 서원을 위반하고, 불법적인 맹세와 서원들을 지키는 것,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서 불평하고 항변하며, 이를 호기심으로 파고들거나 잘못 적용하고, 혹은 어떤 방식으로 왜곡하여 모독적인 농담이나 별나고 무익한 질문들이나 헛된 말다툼이나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일에 악용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피조물이나 하나님의 이름 아래 내포되어 있는 무엇에 마술, 혹은 죄악된 정욕과 행동에 남용하는 것,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및 방법들을 훼방하고 경멸하고 욕하거나 교활하게 반대하는 것, 외식과 악한 목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거나, 적합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고, 열매가 없고, 무례한 행동을 하여, 그 이름에 수치를 돌리거나 그 이름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1)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명한 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 2절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실 것을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와 성품의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이 거룩하신 이름을 마음 중심에 두어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고 경멸하거나 가치 없게 다루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 대적하는 죄이므로,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징벌적 저주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이미 주신 복이 취소될 것이란 것을 경고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망령되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이 도리어 저주로 바뀌게 된다는 선명한 경고입니다.

   2)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그 이름을 무지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7장 23절에서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였는데, 이는 아테네 사람들은 어떤 신도 경배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려고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제단은 모든 신을 위한 것이므로 하나님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식으로 무지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제3계명을 위반하는 일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더해 갈수록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해서 그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신지에 대한 이해가 자라나야 하고, 그에 합당한 신앙고백적인 삶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3) “제3계명에서 금지하는 죄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불경건하게, 속되게, 미신적으로, 혹은 악하게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잠언 30장 9절에서 아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아예 무시하는 교만 곧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는 말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아도 나는 내 방식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말이고,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하는 것은, 도둑질하고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속이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망령되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굴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아굴은 한구절 앞인 8절에서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②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건하고 속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말라기 3장 12절로 15절에서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14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을 섬긴 것에 대한 눈에 보이는 물질의 보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겨도 물질적, 현실적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 소용없는 이름’으로 선언함으로써 제3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배와 사랑의 대상이 아닌, 투자 대비 이익을 계산하는 거래상대로 바꾼 것을 말합니다. 창조하시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 그리고 죄인을 심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고, 원하는 대가가 돌아오지 않자 그 이름을 즉시 비방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경건하고 속되게 헛되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③ 미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사무엘상 4장 3절에서 잘 보여 주고 있는데,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라는 이 말씀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언약궤만 가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원수들과 자동으로 싸워주시는 분으로 오해를 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미신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쟁에서 패했을 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의 잘못은 무엇입니까?’를 물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여호와께 묻는 것과 회개를 생략하고 오직 ‘언약궤만 가져오면 이긴다’는 잘 못된 생각에 빠졌습니다. 특히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라고 말함으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를 ‘그것으로’으로 부르면서 구원의 주체가 인격적 하나님이 아니시고 '언약궤라는 물건'에 능력이 있다고 믿는 미신적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약궤를 전쟁터 한가운데 가져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자신들의 뜻대로 조종하고자 한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궤가 빼앗기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도구화하려는 자들의 의도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만 있으면 여호와께서 싸워 주실 것이라는 미신적 신앙을 철저히 깨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미신적인 생각으로 조종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④ 하나님의 이름을 악하게 언급하는 것에 대하여 말라기 1장 12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또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도다 라고 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식탁(제단)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임재하는 곳인데, 여호와의 식탁 곧 제단이 더러워졌고, 그 위의 과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는 것은 그 제단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명예를 직접적으로 헐뜯고 깎아내리는 험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다는 것은 입으로 욕설을 뱉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명예를 '하찮고 무가치하며 불쾌한 것'으로 비하하여 다루는 모든 말과 행동이 다 포함됩니다. 또한 그 다음 구절인 13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고 하시는데, 이런 불평의 말과 악한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한 말과 행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세상에 속한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큰 복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물질과 장수와 번영의 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복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을 때이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는 복을 세상에서 좋은 것을 주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받게 될 복을 예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의 실체가 완성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심령에 참된 기쁨과 평강을 주시고, 우리 삶에도 필요한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