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53-54문, 대요리문답 111문-112문] "제3계명(1)"
출애굽기 20 : 7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3문과 대요리문답 제111문에서는 제3계명이 무엇인가를 묻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3문 : 제3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1문 : 제3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실 때 ‘망령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브’는 ‘비어 있는, 공허한’을 뜻합니다. 즉,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심이 비어 있는 상태’로 부르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의 인격과 실재(實在)를 의미합니다. 창조와 통치와 구원과 심판의 하나님은 일반계시인 창조세계와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름 곧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 보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반응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거룩하고 경외어린 반응입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곧 경외심을 비어 있는 상태로 부르는 것은 헛된 일일 뿐입니다.(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4문 :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말씀과 행사를 거룩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라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2문 :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칭호, 속성, 규례, 말씀, 성례, 기도, 맹세, 서약, 제비뽑기, 그분의 사역, 그리고 그 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1) “제3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칭호, 속성”을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히 이름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히브리 사고에서 이름은 곧 그 존재의 인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출3:3-14). 이름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계시하셨습니다. 다른 이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로힘(전능하신 창조주)’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위엄을, ‘엘 샤다이(모든 능력의 하나님)’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계시합니다. 그러므로 제3계명의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모든 방편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수단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매우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시 29: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2) “규례, 말씀, 성례, 기도, 맹세, 서약, 제비뽑기, 그분의 사역”을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① 주의 “규례”를 행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전도서 5장 1절에서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 제도와 각종 절기를 명하신 대로 지켜야 했으며, 성전에 나와서 제사를 드릴 때에도 말씀하신 규례대로 지켜야 합니다. 규례를 행할 때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규정을 충실히 따른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명하신 정신과 원리를 생각하고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규례를 행할 때의 자세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전도서 5장 1절 하반절에서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하나님은 악을 행하면서 제물을 드리는 자들을 우매한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② 주의 “말씀”을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시편 138편 2절에서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과거 역사를 통하여 드러내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런 명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의 말씀을 더 높게 하셨다고 하실 때 주의 말씀(히. אִמְרָה임라)은 그 백성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으로 말씀하신 언약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신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구원의 복음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③ “성례”에 참여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1장 28절로 29절에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인데, 세례를 받을 때 서약함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그 모든 서약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서약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고, 늘 그 서약을 지키기로 힘쓰는 것이 마땅한 일이며, 또한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몸에 참여하는 자로서 죄를 버리고, 주님과 연합하고 주님이 죽으심으로 교회를 하나의 주님의 몸으로 부르신 것을 생각하고 성도와 화평을 이룬다는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④ “기도”에 참여할 때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이자 신앙고백이며 감사와 간구를 아뢰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자세는 분노와 다툼을 버리고, 죄를 떠나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아뢰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⑤ “맹세”할 때와 “서약”할 때도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맹세는 공의로운 재판이나 엄숙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다짐하는 행위이며, 서약(서원)은 하나님께 특정 의무나 헌신을 약속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맹세할 때의 자세에 대하여 예레미야 4장 2절에서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서약할 때의 자세에 대해서 시편 76편 11절에서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 맹세나 경솔한 서원을 금하고, 일단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 것은 자신의 손해가 되더라도 신실하게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어떤 경우에도 만홀히 여김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사사 중에 입다는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주시면 내 집 문에서 나를 맞으러 나오는 자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전쟁을 주신 후 가장 먼저 입다를 맞이한 것은 그의 무남독녀였습니다. 입다는 자신의 서원대로 그 딸을 주님께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원을 지켰습니다.
⑥ “제비뽑기”할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구약시대 제비뽑기는 인간의 지혜로 결정하기 힘든 중대한 일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맡기는 행위입니다(잠 16: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비뽑기를 시행한 것은 사도들이 가롯 유다를 대신하여 12번째 사도를 선출하기 위하여 제비뽑기를 할 때였는데, 사도행전 1장 24절로 26절에서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약의 원리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각 사람이 자기 견해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서로 간에 의견이 대등할 때 하나님의 주권적인 판결을 구하는 정당한 맥락에서만 경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⑦ “그분의 사역” 곧 ‘하나님의 일하심’을 대할 때에 경외함과 감사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창조와 섭리와 구속 사역 전체입니다. 욥기 36장 24절에서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피조세계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양하고, 삶에 찾아오는 고난과 이해할 수 없는 환경(섭리) 앞에서도 원망하지 않으며, 십자가 은혜(구속)를 날마다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을 경외함과 감사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3) 또한 “생각과 묵상과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 일컫지 않는 첫 출발지점은 입술과 행동이 아닌 마음의 내면인 “생각과 묵상”에서부터입니다.
성경에서 생각하다는 말은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말함이 아니라, 깊이 고찰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자를 특별히 여기십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생각할 것을 사무엘상 12장 24절에서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묵상 가운데 하나님을 생각할 것에 대해서 시편 19편 14절에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입술을 통하여 말로서 드러내기 전에 먼저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정돈 되어야 합니다.
② 둘째로 “말과 글에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언정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말과 글에서”라는 것은 성도가 세상 속에서 신앙을 증언할 때 사용하는 공적인 고백(말·글)과 성경 말씀에 책임을 지는 합당한 언어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을 할 때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고 하십니다. 또한 글을 통해서도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시 102:18)라고 말씀하듯이 글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록해야 합니다.
또한 “거룩한 고백과 책임 있는 대화”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거룩하고 신중한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데,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서 거룩한 고백에 대해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거룩한 고백)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는 책임 있는 대화에 대해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말씀하고, 골로새서 4장 6절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도의 대화는 듣는 이에게 은혜를 끼치고, 세속적인 더러움에 물들지 않도록 소금처럼 부패를 막는 ‘책임 있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③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모든 행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도의 먹고 마시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신앙적 행위까지, 성도의 존재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시편 29편 2절에서는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가진 거룩한 무게감에 걸맞게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제3계명의 핵심 목적입니다.
④ 또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을 살리고 이웃을 세우는 풍성한 유익을 가져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라고 하시고, 고린도전서 14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유익)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유익과 교회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의 경건한 언어와 거룩한 고백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고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열매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또한 예레미야 32장 39절에서는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유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거룩히 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성도와 그 성도의 후손에 영적인 복과 유익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⑤ 이 모든 일을 행할 때의 자세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다루는 성도의 심령 상태는 ‘거룩함’(세상과 구별)과 ‘경건함’(거룩한 두려움)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로 29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소멸하는 불’이시기에, 그분의 이름을 대할 때는 노예적인 공포가 아니라 창조주와 구속주를 향한 ‘거룩하고 경건한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은, 마음 깊은 묵상에서부터 입술의 고백과 책임 있는 삶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거룩한 두려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 영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