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40문, 대요리문답 강해 95-97문] "사람의 본분(의무)은 도덕법을 지키는 것이다.(3)"
신명기 10 : 12 - 13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40문과 대요리문답 제92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의 법칙으로 처음 계시하여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0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2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순종의 법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무죄의 상태에 있는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신 순종의 법칙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특별한 명령과 도덕법이었습니다.
1) 대요리문답 제93문에서 도덕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3문 : 도덕법이란 무엇입니까?
답 : 도덕법은 인류에게 선언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도덕법은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하도록 지시하고 요구하되, 사람의 형태와 성향, 곧 몸과 영혼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거룩하고 의로운 모든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이 도덕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① “도덕법은 인류에게 선언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② “도덕법은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하도록 지시하고 요구하되, 사람의 형태와 성향, 곧 몸과 영혼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거룩하고 의로운 모든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합니다.”
③ “하나님은 이 도덕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2) 대요리문답 제94문에서는 타락한 후에도 도덕법이 사람에게 유용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4문 : 타락한 후에도 도덕법은 사람에게 유용합니까?
답 : 타락한 후에는 아무도 도덕법으로 의와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덕법은 중생한 사람이든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매우 유용합니다.
① “타락한 후에는 아무도 도덕법으로 의와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② “그러나 도덕법은 중생한 사람이든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매우 유용합니다.”
2. 대요리문답 제95문에서는 도덕법이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유용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5문 : 도덕법은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유용합니까?
답 : 도덕법은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유용합니다. 도덕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뜻, 그리고 이를 따라 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무를 알려 주며, 사람들이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과 자신들의 본성, 마음, 생활이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아 겸손하게 하고, 이로써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명백히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 “도덕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뜻”을 가르쳐 주기에 모든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로마서 7장 12절에서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법 곧 율법이 선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거룩한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4절로 45절에서 하나님은 당신께서 거룩하신 분이신 것을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그리고 이를 따라 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무를 알려 주며, 사람들이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과 자신들의 본성, 마음, 생활이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무를 도덕법을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서 도덕법의 핵심이 정의이며, 자비(인자를 사랑하며), 신실함(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② 그러나 사람에게는 율법이 선한 것임을 알고, 또 그 율법을 지켜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율법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사람은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전혀 없는 죄인이며, 인간의 본성은 율법을 싫어하고 죄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0절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또한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아 겸손하게 하고, 이로써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명백히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고,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수여 받은 유대인들이라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킬 능력이 그들에게 아니, 모든 인생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9절에서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율법 곧 도덕법은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아 겸손하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는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뜻,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나, 그러나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될수 없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율법의 기능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율법을 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들에게 율법은 우리 대신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또한 율법은 우리에게 “완전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명백히 볼 수 있도록 도와” 줄 뿐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여기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지킬수 없는 모든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께서 다 완성하셨다는 의미에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것이며, 또한 율법을 지킬수 없는 죄인인 모든 인생들이 오직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음으로 의롭게 되어,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고, 예수님의 의를 전가 받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기에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3. 대요리 제96문에서는 도덕법이 중생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유용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6문 : 도덕법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어떤 점에서 유용합니까?
답 : 도덕법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장차 임할 진노를 피하게 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유용합니다. 또한 그들이 계속해서 죄의 상태와 죄의 길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는 그들로 핑계할 수 없게 하며, 죄의 저주 아래 있게 합니다.
1) “도덕법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장차 임할 진노를 피하게” 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9절로 10절에서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율법은 옳은 사람의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방편이 무엇인지를 율법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자들에게도 율법이 유용하게 작용하는데, 바로 율법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자들 곧 중생하지 못한 자들에게 꼭 필요한데, 오직 율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악한 본성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마땅한 기준을 도덕법을 통하여 규정하여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무엇이 잘못이고 죄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격적인 존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9절로 10절에서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도덕법은 “그들(중생하지 못한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유용합니다.”
도덕법이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는 또 다른 유익은 그들이 도덕법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죄인들은 도덕법(율법)을 통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나온 경건한 두려움은 중생하지 못한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율법의 초등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하였습니다(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3) “또한 그들이 계속해서 죄의 상태와 죄의 길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는 그들로 핑계할 수 없게 하며, 죄의 저주 아래 있게 합니다.”
중생하지 못한 모든 사람이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는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습니다. 이유는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법대로 자신이 살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뿐 아니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어야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는 자들에게 율법은 2가지 역할을 합니다. 먼저는 그들을 죄에 대하여 핑계하지 못하게 합니다(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 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도덕법을 통하여 자신들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마땅한 의무대로 살지 못한 죄인인 것을 핑계치 못하게 합니다. 둘째로 그들이 저주 아래 있음을 증거 해줍니다(갈 3:10 “무릇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저주를 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번째 사망 곧 불 못이 예비 되어 있을 뿐입니다.
4. 대요리 제97문에서는 도덕법이 중생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어떤 점에서 유용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7문 : 도덕법은 중생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어떤 점에서 유용합니까?
답 : 중생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행위 언약인 도덕법에서 해방되었으므로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거나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일반적인 용도 외에 중생한 사람들에게 도덕법은 그것을 성취하시고 그들을 대신하여 또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 법의 저주를 당하신 그리스도와 그들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특별히 유용합니다. 그리하여 도덕법은 그들로 더 많이 감사하게 하고, 바로 그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순종의 규칙으로 주신 도덕법을 더욱 열심히 따르게 합니다.
1) “중생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행위 언약인 도덕법에서 해방되었으므로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거나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범죄 이전의 아담은 하나님과 맺은 행위언약에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후에는 아담과 그의 후손 중 어느 누구도 행위 언약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원죄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6장 ‘사람의 타락, 죄, 형벌에 관하여’ 3항에서 ‘그들은 온 인류의 시조이었으므로 그들로부터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그들의 모든 후손들에게 이 죄의 죄책이 전가되었고 또 동일한 죄에서 죽음과 부패한 성질이 전하여졌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원죄는 아담의 후손에게 2가지를 전가 하였는데, 먼저는 아담의 죄의 책임이 그 후손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 중에 아직 스스로 죄를 짓지 않은 태아(胎兒)나 영아(嬰兒)도 죽는 것입니다. 둘째로 원죄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동일한 죄에서의 죽음과 부패한 성질이 전하여졌’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은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남으로 아무도 율법대로 순종하여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구원하시는 방식은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의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의 의를 행할 수 없는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예수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에 완전히 순종하셨고, 자기 죄에 대한 충분한 대속을 지불하신 것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여 주셨기에 도덕법 곧 행위언약대로 순종하지 못해도 죄의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믿는 자들에게 물으셔야 할 책임과 심판이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쏟아졌고,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일반적인 용도 외에 중생한 사람들에게 도덕법은 그것을 성취하시고 그들을 대신하여 또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 법의 저주를 당하신 그리스도와 그들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데 특별히 유용합니다.”
중생한 성도는 도덕법을 지킨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와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 받아야 하는 죄의 책임에서 자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롬 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나 그 율법의 저주로부터 택한 백성을 해방하시기 위하여 친히 율법에 순종하시고, 또한 율법대로 살지 못한 자들을 그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대신 당하신 그리스도에게 얼마나 큰 사랑의 빚을 진 자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3) “그리하여 도덕법은 그들로 더 많이 감사하게 하고, 바로 그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순종의 규칙으로 주신 도덕법을 더욱 열심히 따르게 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어 스스로 구원을 이루고자하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율법대로 순종할 수 없는 자신의 실상 곧 원죄 아래 태어나서 아담의 죄에 대하여 공동책임이 있고, 또 “동일한 죄에서 죽음과 부패한 성질이 전하여졌다”는 것을 깨닫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이유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로 인한 심판을 두려워하게 될 때 율법이 선하고 거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율법대로 살수 없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지불하신 충분한 대속으로 구원 얻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도덕법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2절로 14절에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게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율법의 4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 첫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거룩한 본성과 뜻을 보여 줍니다. 둘째로 사람이 율법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셋째로 율법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사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넷째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에게 있어서 율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리인 것을 깨닫고 그 율법대로 살려고 힘쓰게 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순종의 규칙으로 주신 도덕법을 더욱 열심히 따르게”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