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40문, 대요리문답 강해 93-95문] "사람의 본분(의무)은 도덕법을 지키는 것이다.(2)"

 신명기 10 : 12 - 13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 소요리문답 제39문, 대요리문답 제91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의무)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9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의무)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의무)은 그의 나타내 보이신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1)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본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의 본분은 창조주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생이 순종해야 할 법으로 도덕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에게는 사람에게 본분(의무)을 정하실 당연한 권세가 있으시고 사람은 당연히 순종해야 하는 의무 아래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2) 사람의 본분(의무)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봄에 밭아 나아가서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둔 후 그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습니다. 내 것이라고 말하고 권리를 주장합니다. 곡식의 씨앗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땅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뿌려진 땅에서 곡식이 싹을 틔우도록 햇빛과 비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잘 자라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신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었으니 자기 것이라 말하고 그 곡식의 권리를 주장하여 먹기도 하고 남는 것을 팔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생,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존귀한 자로 만드시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입니다.  

2. 소요리 40문, 대요리 92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의 법칙으로 처음 계시하여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0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2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순종의 법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무죄의 상태에 있는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신 순종의 법칙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특별한 명령과 도덕법이었습니다. 

3. 대요리 93문에서 도덕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3문 : 도덕법이란 무엇입니까?

답 : 도덕법은 인류에게 선언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도덕법은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하도록 지시하고 요구하되, 사람의 형태와 성향, 곧 몸과 영혼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거룩하고 의로운 모든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이 도덕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1) “도덕법은 인류에게 선언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덕법을 특별계시의 형태로 아담에게 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도덕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지으셨기에 이미 아담의 마음에는 도덕법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타락한 후로는 도덕법이 특별계시 형태로 주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도덕법인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도덕법은 모세가 만든 것이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받아서 전달하여 준 것입니다(신 5: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2) “도덕법은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하도록 지시하고 요구하되, 사람의 형태와 성향, 곧 몸과 영혼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거룩하고 의로운 모든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합니다.”

①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도덕법에 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도덕법에 순종하되 “인격적으로” 순종한다 함은 인간의 인격의 요소인 지정의(知情意)를 다해서 곧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 6:5) 순종해야 합니다.

② 또한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은 도덕법의 일부만 아니라, “완전히(전부)”를 순종해야 하고, 일시적인 순종이 아니라 “영구히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로 타락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 타락한 인간은 모든 율법(도덕법)을 항상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하면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갈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런 저주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③ 뿐만 아니라 “사람의 형태와 성향, 곧 몸과 영혼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되 영혼과 육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순종도 전인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은 영과 육을 분리하여 육적으로 행하는 일은 영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여 도덕 폐기론에 빠지는 부류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도덕적인 순종은 “사람의 형태와 성향, 곧 몸과 영혼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음의 순종 뿐 아니라, 몸으로 하나님의 도덕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④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거룩하고 의로운 모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참된 순종은 하나님께만 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구분하지 말고 주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덕법은 하나님을 향한 의무 뿐 아니라, 사람을 향한 의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4장 16절에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라고 총독 벨릭스 앞에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로서 구원받은 자녀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는 항상 순종해야 하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순종해야 합니다(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3) “하나님은 이 도덕법을 온전히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죽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도덕법을 지키는 자에게는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롬 10: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나와”). 그러나 위반하는 자에게는 죽음이 약속되어 있습니다(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불순종하는 자가 받을 죽음의 형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2:17).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동산 나무에 숨었는데, 그것이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가 끊어진 영적인 죽음의 실상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아담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육체의 죽음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9절 말씀에 의하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죽어서 흙으로 만들어진 몸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창 3:5)습니다. 세 번째 죽음은 둘째 사망으로 불리는 영원한 죽음 곧 불 못에 떨어지는 지옥 형벌을 말합니다(계 20:10, 12-15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도덕법을 지키지 못하는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도 우리 힘으로는 도덕법을 지킬 수 없는 자들이었는데, 이런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담당해 주셨고, 그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천국의 후사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만 자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만 성령 안에서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4. 대요리 94문에서는 타락한 후에도 도덕법이 사람에게 유용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4문 : 타락한 후에도 도덕법은 사람에게 유용합니까?

답 : 타락한 후에는 아무도 도덕법으로 의와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덕법은 중생한 사람이든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매우 유용합니다. 

1) “타락한 후에는 아무도 도덕법으로 의와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구원관은 ‘자력 구원’ 또는 ‘행위 구원’입니다. 성경의 복음은 오직 은혜로 주시는 구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이단이 있었는데 바로 펠라기우스입니다. 그는 4세기 후반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 출신의 수도사로 로마에 와서 엄격한 도덕적 삶을 가르쳤는데, ‘아담의 죄가 인류에게 전가되지 않았다고 보았으며(원죄 부정), 인간은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죄를 짓지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포의 어거스틴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강조하며 펠라기우스와 치열한 신학 논쟁을 벌였고, “은혜가 없이는 인간이 선을 행할 수도,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는 점을 성경적으로 증명하여 펠라기우스 사상의 허구를 드러냈습니다. 그 후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어거스틴의 주도로 펠라기우스의 핵심 교리들이 이단으로 공식 선언되었고, 431년 에베소 공의회 제3차 보편 공의회에서 펠라기우스주의를 전 교회적 이단으로 최종 확정하였습니다. 그 후 교회사 속에서 절반의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오늘날 로마교의 구원론이며, 행위구원을 말하는 알미니우스 주의자들입니다. 

성경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롬 8:3)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갈 2:16)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것은 율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은 좋은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문제는 사람이 죄를 짓고 타락하였기에 율법을 따라 사는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타락한 후에는 율법 곧 “도덕법으로 의와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2) “그러나 도덕법은 중생한 사람이든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에게 매우 유용합니다.”   

사람이 율법 곧 도덕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하여도 도덕법은 선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8절에서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대요리문답 제95문에서 모든 사람에게 도덕법(율법)이 어떻게 유용한지, 대요리문답 제96문에서는 중생한 사람에게 어떻게 도덕법(율법)이 유용한지, 대요리문답 97문에서는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덕법(율법)이 유용한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6. 대요리문답 제95문에서는 도덕법이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유용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95문 : 도덕법은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유용합니까?

답 : 도덕법은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유용합니다. 도덕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뜻, 그리고 이를 따라 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무를 알려 주며, 사람들이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과 자신들의 본성, 마음, 생활이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아 겸손하게 하고, 이로써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명백히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 “도덕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뜻”을 가르쳐 주기에 모든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로마서 7장 12절에서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법 곧 율법이 선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 거룩한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4절로 45절에서 하나님은 당신께서 거룩하신 분이신 것을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그리고 이를 따라 행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무를 알려 주며, 사람들이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과 자신들의 본성, 마음, 생활이 죄로 오염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무를 도덕법을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서 도덕법의 핵심이 정의이며, 자비(인자를 사랑하며), 신실함(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이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② 그러나 사람에게는 율법이 선한 것임을 알고, 또 그 율법을 지켜야 마땅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율법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깨닫는 것을 사람은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전혀 없는 죄인이며, 인간의 본성을 율법을 싫어하고 죄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0절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또한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아 겸손하게 하고, 이로써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전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명백히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고,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수여 받은 유대인들이라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킬 능력이 그들에게 아니, 모든 인생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9절에서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율법 곧 도덕법은 “자신들의 죄와 비참을 알아 겸손하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는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뜻,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나, 그러나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될수 없습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율법의 기능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율법을 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들에게 율법은 우리 대신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또한 율법은 우리에게 “완전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더 명백히 볼 수 있도록 도와” 줄 뿐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여기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지킬수 없는 모든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께서 다 완성하셨다는 의미에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것이며, 또한 율법을 지킬수 없는 죄인인 모든 인생들이 오직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음으로 의롭게 되어,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고, 예수님의 의를 전가 받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기에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