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39-40문, 대요리문답 강해 91-92문] "사람의 본문(의무)은 도덕법을 지키는 것이다.(1)"
신명기 10 : 12 - 13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 요리문답은 성경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크게 2 가지로 나누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앞 시간까지 살펴 본대로 소요리문답 제1문에서 제38문까지, 대요리문답 제1문에서 제90문까지 가르친바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였습니다.
둘째는 오늘부터 살펴보고자 하는 소요리문답 제39문에서 제107문, 대요리문답 제91문에서 196문까지 가르치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본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리문답에서 중요한 2 가지를 구분하여 사람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먼저 가르치고 난 후에, 비로소 사람이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깨닫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의 의무를 바르게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듣고 배우지 않으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수 없습니다.
이제 살펴보고자 하는 소요리문답의 경우에는 제39문부터 대요리문답에서는 제91문에서 십계명에 대하여 묻고 가르침으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곧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본문(의무)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후손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본문(의무)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에 죄인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것 외에 소망이 없으며, 믿음을 가지게 된 신자는 이생에서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부지런히 사용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소요리문답 제39문, 대요리문답 제91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문(의무)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9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의무)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의무)은 그의 나타내 보이신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1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무(본분)가 무엇인가?
답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본분)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본분)”가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제39문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의무)에 대해서 다루면서 십계명에서 금하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절대 규범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절대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도 상대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나 성경의 교훈이 유효할 뿐이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신들에게 성경의 교훈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입니다. 더 나아가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 선한 것도 없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와 통치와 심판과 구원의 유일한 한분 하나님이시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굳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동성애는 성경에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명백한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 타고난 개인의 성향과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국가의 법과 사회의 인식도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면 갈수록 이런 시대로 나아갈 것인데, 그러면 이 땅은 다시 사사시대의 마지막 때처럼 사람이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될 것이고, 이런 상대주의와 개인주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행복이요, 성공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참된 행복과 만족과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이 세상은 머지않아 큰 혼란에 빠지고, 무질서와 악한 욕망이 충돌하여 모든 사람이 고통으로 울부짖는 곳이 될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듯이 사람은 창조주께서 세우신 도덕적인 질서와 말씀의 울타리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①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든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도덕법이 있습니다.
인생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가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셨기에 모든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의무)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사람과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에게는 사람에게 본문(의무)을 정하실 권세가 있습니다.
인간은 목적 없이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분(의무)를 정하실 수 있습니다. 창조주 말고 누가 피조물인 인생의 본분(의무)을 정하실 분이 하나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지켜야 할 본문이 무엇인지를 성경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위해서는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은 무디어 질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말씀 곧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로 14절에서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신명기 10장 12절로 13절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사무엘상 15장 22절로 23절 상반절에서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2) 사람의 본분(의무)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에 피조물인 인생은 순종해야 하고, 순종하는 것이 사람의 마땅한 본분(의무)입니다. 레위기 18장 4절로 5절에서 “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고 명하실 수 있는 것은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주시면서 출애굽기 20장 1절로 3절에서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일에 대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은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마 7: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반면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것대로 순종해야 함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불순종은 인간의 본분(의무)를 어기는 죄입니다. 이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집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누가복음 12장 47절로 48절에서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이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기에 자연스런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떤 심판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주신 양심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또한 피조세계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나타나 있으나 고의로 거절한 그들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모든 인생은 자신이 행한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살후 1:8-9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한편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인생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만유의 주재이신 것을 깨달아 아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는 피조물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본분(의무)를 다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소요리 40문, 대요리 92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의 법칙으로 처음 계시하여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0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92문 :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순종의 법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무죄의 상태에 있는 아담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신 순종의 법칙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특별한 명령과 도덕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죄 상태의 인류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바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과 도덕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도덕법은 도덕적인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담은 도덕적 행위의 기준과 규칙을 말합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도덕법에 대한 명령은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덕법을 지키라는 명령을 주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데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로 27절에서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무죄한 상태로 지음을 받은 인류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줄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로 17절에서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16절로 17절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여기 ‘다스리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드’이고, ‘지키다’는 말은 ‘사마르’인데, 구약에서 이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된 것이 15번 정도인데, 10번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파수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고, 5번은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봉사(책무)’를 ‘지키는’ 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그레고리 비일).
에덴에서 아담은 하나님을 예배로 섬기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에덴을 보존하는 사명을 받아 섬겼다는 말입니다. 바로 아담은 에덴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법을 받았고, 또한 그 법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과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계시 형태로 곧 기록된 문서의 형태로 도덕법을 주실 필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하였기에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도덕법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모세 시대에 성문 율법으로 하나님의 도덕법을 십계명을 통하여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