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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36문] "성도들이 금생에서 누리는 복과 위로"

 로마서 5장 1절로 2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1. 소요리 36문에서는 성도가 이 땅에서 누리는 복과 위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6문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혜택은 무엇입니까?”

 답 :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따라 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혜택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과 양심의 평안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증진과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 본 소요리 31문에서는 효과적인 부르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영의 하시는 일로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밝게 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서 우리를 설득하여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하시는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소요리 32문에서는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금생에서 받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는데,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금생에서 이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혜택들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소요리 32문에서 가르친 금생의 유익은 세 가지였는데, 곧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이었습니다.

오늘 소요리 36문에서 가르치는 성도가 이 땅에서 누리는 복과 위로가 32문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여러 가지가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데,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외에 5 가지의 복과 위로를 더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5 가지는 바로 “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과 ② 양심의 평안과 ③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④ 은혜의 증진과 ⑤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이 사랑을 확신”하는 복과 위로를 누립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하실 이가 그리스도 밖에 없는 줄을 알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즉시로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일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도 사랑이요, 우리로 예수님을 믿도록 성령으로 주장하시고, 구원하신 자들을 보존하심도 하나님의 사랑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일인 것을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있어서 영원 전에 낳으시고, 연합과 사랑 가운데 계신 성자보다 귀한 분은 없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아니라면 절대로 독생자를 보내실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하시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2) 둘째로 “양심의 평안”의 복과 위로를 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양심은 자신의 죄 때문에 평안을 모르고 평안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은 영혼은 양심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로마서 5장 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 된 사람뿐입니다. 여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된다는 말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명하신 마땅한 본분인 율법의 의를 자기 힘으로 이룰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인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대속을 믿음으로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의 복과 위로를 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에서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 38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 심령에 성령을 통하여 부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풍성한 복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 그들 모두는 기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8장 8절에서는 전도자 빌립의 복음을 전할 때 그 말을 따르던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고 세례를 받은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내시도 세례를 받고 “기쁘게 길을”(행 8:39) 갔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3절로 34절에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의 가정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의 심령 속에 성령께서는 이제는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완전히 벗어나, 천국 백성이 되었는데,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게 될 영생의 산 소망을 인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의 심령 속에는 세상의 것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듯 솟아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시편 4편 7절에서 이 구원의 기쁨에 대하여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최고의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심령에 주신 구원의 기쁨은 세상의 최고의 기쁨을 능가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4) 넷째로 “은혜의 증진”의 복과 위로를 누립니다. 

 은혜의 증진이라는 말은 은혜가 자란다는 말이 아니라, 은혜로 인하여 성장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받고 잘 사용함으로서 이루어지는 ‘은혜 안에서 성장’을 말합니다(존 브라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중생한 자들에게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해집니다. 이것을 “은혜 위의 은혜”(요 1:14)라고 할수 있는데, 사죄의 은혜 위에 칭의의 은혜, 칭의의 은혜 위에 자녀 됨의 은혜, 그 위에 성화의 은혜, 그 위에 견인의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선행의 실력도 자라게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성숙과 영적인 성숙의 은혜를 주십니다. 회개가 증가하여 작은 죄를 더 버리고 멀리하게 되고, 선행이 증거하며, 인격은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로 4절에서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 속에서 주님을 위한 믿음의 일들을 행하고, 사랑으로 수고하고, 하늘의 소망을 인하여 핍박 가운데서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바울 사도는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후서 1장 4절로 9절에서 신자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 자라고 말씀하면서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더하라고 하면서 1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인 변화가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불러 구원하신 자들인 것을 확증하는 것이라고 베드로 사도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5) 다섯째로 “끝까지 견디는” 복과 위로를 누립니다. 

 끝까지 견디는 것이 견인의 은혜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심으로 끝까지 견디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공급해 주시지 않으시면 영적인 고갈로 인한 퇴보를 겪게 됩니다. 날마다 은혜를 공급해 주시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에 근거하여 날마다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 됨을 확신케 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교통해 주심으로 죄와 싸우고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능력 있게 하십니다.

성도의 견인이 하나님께서 보존(Preservation)하신다는 측면에서는 견인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성도 스스로의 힘으로만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보존을 받는 수동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6절에서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위험한 산길에서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꼭 잡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3권 24장 6절로 11절에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호하심 아래서 안전함을 말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자신의 보호하심 속에 두심으로 아무도 그리스도의 손과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기독교강요 3권 24장 7절에서는 요한복음 17장 12절의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은 하나도 믿음에서 떨어져 멸망하지 않을 것이나, 그러나 멸망의 자식들은 주께서 보존하는 자들에게 제외시키신다고 말씀하면서 교회 안에 있던 자들 중에 멸망의 길을 가는 자들이 있다면, 요한일서 2장 19절에서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존 오웬도 성도의 견인의 근거를 성도의 주관적인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과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중보기도에 두었습니다. 

 도르트 신조 제5장 6항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잃어버리도록 허락지 않으심’에서 “하지만 자비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변하지 않으시는 선택의 계획을 따라, 자기 백성에게서, 심지어 그들이 근심스럽게 실족할 때에도 자신의 성령을 완전히 거두지 않으신다. 또한 양자됨의 은혜와 의롭다 하심의 상태를 잃거나, 사망에 이르는 죄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버리심 받거나 자신들을 영원한 멸망에 스스로 던져 넣을 만큼 그들이 깊이 떨어지게 하지도 않으신다.”

7항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다시 회개로 새롭게 하심’에서 “왜냐하면 이러한 실족 가운데서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분의 썩지 아니할 씨(이 씨에서 그들이 중생했음)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의 말씀과 성령으로 확실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들을 회개하도록 새롭게 하셔서, 자신들이 범한 죄들을 마음으로 경건히 슬퍼하게 하시며, 믿음으로 또한 중심에 통회함으로 중보자의 피 안에서 죄 사함을 구하고 또한 얻게 하시며, 화목하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경험하고, 믿음으로 그분의 자비를 찬송하고, 따라서 그때부터 더욱 부지런히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8항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보존하심’에서 “따라서 그들이 믿음과 은혜에서 완전히 떨어지거나, 실족 가운데 계속 남아 결국에 멸망하지 않는 것은 그들 자신의 공로나 힘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자비에서 나온다. 그들 자신에 대해서는 이것이 쉽게 일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심하 바 없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이것을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변할 수 없으며, 그분의 약속이 깨어질 수 없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이 취소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와 보전하심이 폐하여 질 수 없고, 성령이 인 치심이 허사가 되거나 소멸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견인은 성도의 인내(Perseverance)를 요구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로 13절에서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의 교리는 하나님께서 다 하시니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입었기에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죄와 싸우고 선을 행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위험한 산길에서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견인의 교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슨 죄를 범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견인은 칭의, 수양, 성화에서 유출되는 것이기에 믿는 자들이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회심하여 성령이 그 심령에 계시는 한,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구원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공급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전과 같이 죄악 속에서 살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는 죄와 싸우고 때로 후퇴 할 때도 있지만, 다시 일어나 은혜를 의지하여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에 죄를 즐기던 옛 사람의 원리가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를 대항하여 싸우기까지 절대로 만족하지 않는 새 사람의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