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35문 - 대요리 80문 - 81문] "성도의 견인과 확신"

 요한복음 10장 28절로 29절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 소요리 35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신 자들을 ‘거룩하게 하심’(성화 -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5문 “거룩하게 하심이란 무엇입니까?”

 답 :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인데,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전인적으로 새로워지게 되고, 점점 더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성도가 전인이 새로워짐으로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신 지,정,의가 아담의 범죄시에 타락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각이 둔하여졌고, 하나님만 가장 사랑하던 정서가 자기 사랑으로 바뀌었고, 하나님 뜻을 행하던 의지가 자신이 원하는 죄를 행하는 부패한 의지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은 지,정,의가 새롭게 되었습니다. 지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고 또한 죄인 된 자신의 실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인 된 자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을 통하여 구원하신 그 구원의 영광과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서적으로는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와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정서로 새로워지게 되었고, 의지는 자신의 원하던 죄악을 행하던 의지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선을 행하는 거룩한 의지로 새로워지게 되었습니다.  

2) 그러나 이 땅에서 완전 성화를 불가능합니다. 

성도가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점점 더 의에 대하여 살게 되나, 성도가 이 땅에서 죄를 완전히 버리고 성도의 성화의 목표인 예수님처럼 죄와 상관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완전성화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사 속에서 원죄의 교리를 부인한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는 아담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쳤을 뿐이니,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어린 아이들은 죄가 없고,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죄를 씻기 위한 세례도 필요 없으며 모든 사람이 자기 의지로 계명에 순종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워져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주장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짓된 교훈으로서 교회사 속에서 418년 가르타고 공의회, 431년 에베소 공의회를 통하여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완전성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근거로 삼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라”(마 5:48),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와 같은 말씀은 성도의 거룩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비록 성도가 완전한 거룩함을 이룰 수 없으나, 날마다 이 목표를 향하여 다시 일어나 나아가야 합니다. 

3) 지난 시간에 대요리 79문을 통해서 성도들이 죄와 유혹으로 인해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지, 그렇지 않은 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79문 “참된 신자들이 그들의 불완전함과 그들을 사로잡는 많은 유혹과 죄로 인해,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까?”

답 : “참된 신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타락하거나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없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신자들에게 견인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작정과 언약, 그리스도와의 분리될 수 없는 연합,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중보기도, 그리고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하나님의 씨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는 은혜의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갈 수 없는 이유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인데, 그 내용은 다음의 5 가지입니다. ① 하나님의 불변하는 사랑, ② 보존의 은혜를 제공하는 하나님의 작정과 언약, ③ 그리스도와 뗄 수 없는 연합, ④ 그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 ⑤ 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하나님의 씨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이 시간에는 대요리 80문에서 가르치는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시는 견인을 확신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대요리 81문에서 가르치는 장차 구원을 받으리라는 확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대요리 80문에서는 성도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으며 구원에 이르기까지 은혜에 상태에서 견인할 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80문 “참된 신자들은 자신들이 은혜의 상태에서 있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은혜의 상태에서 견인할 것이라고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답 :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비상한 계시가 없어도, 자신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구원에 이르기까지 그 은혜의 상태에서 견인할 것이라고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함에 근거한 믿음으로, 생명의 약속을 받은 것을 그들이 분별할 수 있게 하시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그들의 영혼에 증언하시는 성령님 때문입니다.”

 대요리 80문에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자의 심령에 구원의 가능성이나 가망성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을 위하여 이루신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대속을 성령께서 신자 개개인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따라서 선한 양심을 따라서 말씀에 순종함으로 확신케 하십니다. 

그러나 로마교에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가능성을 부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롭게 되는 일이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아니라, 자신들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성경의 교훈을 부인하는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1) 구원의 확신은 오직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① 신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음에 대하여 요한일서 5장 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구원받은 자입니다. 

 ② 또한 신자는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으면 구원받은 자입니다. 이것을 요한일서 2장 3절에서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조건이 되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신자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은 “비상한 계시가 없어도, 자신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과 구원에 이르기까지 그 은혜의 상태에서 견인할 것이라고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2)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함에 근거한 믿음으로, 생명의 약속을 받은 것을 그들이 분별할 수 있게 하시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그들의 영혼에 증언하시는 성령님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믿는 믿음을 주시어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인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것을 로마서 8장 16절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증거입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하시고 또한 그 약속에 근거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 성령님께서 또한 우리를 감동하사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과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4. 대요리 81문에서는 성도들이 자신이 은혜의 상태에 있는 것과 장차 구원을 받을 것이 항상 확신할 수 있는 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81문 “모든 참된 신자는 현재 자신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는 것과 장차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을 항상 확신합니까?”

 답 : “은혜와 구원에 대한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된 신자들도 그것을 얻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고, 확신을 얻은 후에도 여러 가지 근심, 죄, 유혹, 탈선으로 인하여 약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고 도우시기 때문에 참된 신자들은 결코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1) 여기서 “구원에 대한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구원의 확신이 구원이 조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참된 신자라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한 아버지의 아들이 있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 분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의심을 들 수 있으나, 아들이 그것을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 해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의 확신도 마찬가지로 참으로 구원받은 신자가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수 있으나 그러나 그 의심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의심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사건이지만, 구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객관적인 사건입니다. 특별한 사건으로 갑자기 회심한 경우에는 그리스도께로 나오기 전에 심각한 영적 투쟁을 경험한 자들이기에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믿음의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복음을 듣고 성장한 신자들은 어느 시점에 회심을 하였지만 구원에 대한 충만한 확신을 갖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도 합니다. 

 2) “확신을 얻은 후에도 여러 가지 근심, 죄, 유혹, 탈선으로 인하여 약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습니다.”

 시편 77편 7절로 9절에서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라고 탄원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구원받은 신자의 심령에 때때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을 확신한 신자라도 “여러 가지 근심, 죄, 유혹, 탈선으로 인하여 약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확신이 사라졌다고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지고 구원을 상실한 것은 아닙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고 도우시기 때문에 참된 신자들은 결코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에 대한 의식을 전적으로 상실할 수 있다면 신자는 완전한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성화를 이루어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에 대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전적으로 상실하는 일은 없습니다. 

신자가 강력하고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와 성찬과 같은 은혜의 방편을 신실하게 사용해야 하며,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도록 힘쓰며 하나님의 때에 확신을 주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구하는 택한 백성들이 결코 완전한 절망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