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35문 - 대요리 77문, 78문] "칭의와 성화의 다른점과 완전성화에 이르지 못함"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로 8절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1. 소요리 35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주신 자들을 ‘거룩하게 하심’(성화 -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5문 “거룩하게 하심이란 무엇입니까?”
답 :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인데,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전인적으로 새로워지게 되고, 점점 더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요리 75문에서도 성화란 무엇인지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75문 “성화란 무엇입니까?”
답 :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거룩하게 되도록 택하신 사람들을 정하신 때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활동을 통해서, 전인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 마음속에 두신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씨와 그 밖의 다른 모든 구원의 은혜들을 고무하고, 증가하고, 강화하여서, 그들이 점점 죄에 대하여는 죽고, 새로운 생명에 대하여는 살아나게 하십니다.”
지난 시간에는 대요리 75문에서 가르친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대하여 자세하게 가르친 대요리 76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76문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무엇입니까?”
답 :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죄인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죄인은 자기 죄의 위험뿐 아니라, 추함과 가증함을 보고 느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깊이 뉘우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죄를 크게 슬퍼하고 미워하여, 그 모든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범사에 새로운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동행을 결심하고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오늘은 성화와 관련하여 대요리 77문에서 가르치는 “칭의와 성화의 다른 점”과 대요리 78문에서 가르치는 “왜 신자는 완전 성화를 이룰 수 없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먼저 대요리 77문에서는 ‘칭의와 성화의 다른 점’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77문 “칭의와 성화는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답 : “성화와 칭의는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둘은 서로 다릅니다. 칭의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시지만, 성화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은혜를 주입하시고 그 은혜가 영향을 미치게 하십니다. 칭의에서는 죄가 용서되는데 반해, 성화에서는 죄가 억제됩니다. 칭의에서는 모든 신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복수하시는 진노에서 자유롭게 되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결코 정죄 받지 앉지만, 성화에서는 성화가 모든 신자에게 똑같이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아마도 완전히 성화될 수 없으며 다만 완전을 행해서 자라 갈 뿐입니다.”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칭의가 법정적 선언이라면 성화는 거룩하게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칭의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신 행위라면 성화는 거룩하게 되어가는 과정인데,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칭의)을 받은 자는 반드시 성화에 이르게 되고, 성화되어 가는 사람은 오직 칭의 된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1) 먼저 “성화와 칭의는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둘은 서로 다릅니다. 칭의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시지만, 성화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은혜를 주입하시고 그 은혜가 영향을 미치게 하십니다. 칭의에서는 죄가 용서되는데 반해, 성화에서는 죄가 억제됩니다.”
① 칭의와 성화는 나눌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요리문답에서 “성화와 칭의는 분리할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실 뿐 아니라,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칭의(의롭다하심)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화에 이르게 되며, 성화에 이르는 사람은 칭의(의롭다하심)를 받은 사람들뿐입니다.
②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서로 다릅니다.
이 둘이 어떻게 다른 지를 요리문답에서는 “칭의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십니다. 그래서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전가 받은 의로움입니다(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반면에서 성화는 “하나님의 영이 은혜를 주입하시고 그 은혜가 영향을 미치게 하”심으로 실제적인 의로움을 이루게 하십니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③ 또한 칭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면하여 주심으로 “칭의에서는 죄가 용서되”어 죄를 전혀 짓지 않은 사람처럼 간과하여 주심으로(롬 3:25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우리 죄를 사면해 주시는 것이라면, 성화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억제하여 주시는 것으로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죄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2) 또한 “칭의에서는 모든 신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복수(보복)하시는 진노에서 자유롭게 되되,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결코 정죄 받지 않지만, 성화에서는 성화가 모든 신자에게 똑같이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아마도 완전히 성화될 수 없으며 다만 완전을 행해서 자라 갈 뿐입니다.”
① 칭의를 통하여 모든 신자가 처음부터 완전히 동등하고 이생에서 완전히 의롭다고 하시는 일이 성취가 되어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칭의는 처음부터 완전하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완전하게 전가하여 주시기 때문에 믿는 자 모두에게 처음부터 완전한 의가 주어지고 전가 받은 그 의는 모두에게 동등한 완전한 의를 전가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② 반면에 성화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며 이생에서 완전히 성화될 수 없고 다만 완전을 위해서 자라갈 뿐입니다.
성화가 완전하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어린 아이들이 자라서 신령한 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또한 신자는 이 땅에서 완전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믿는 자들을 향하여 요한일서 1장 10절에서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신자가 이 땅에서 완전히 성화되어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다만 이 땅에서 완전을 향하여 자라갈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1절에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고 말씀하심으로 신자는 날마다 성화를 이루어야 하는 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3. 대요리 78문에서는 ‘왜 신자들이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없는 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78문 “왜 신자들은 성화를 완전히 이룰 수 없습니까?”
답 : “신자들이 성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모든 부분에 남아 있는 죄의 잔재들과 성령을 끊임없니 거스르는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신자들은 자주 시험에 들게 되고, 많은 죄에 빠지며, 그들의 모든 영적인 봉사에 방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행하는 가장 좋은 행위들도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불완전하고 불결합니다.”
1) 먼저 “신자들이 성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모든 부분에 남아 있는 죄의 잔재들과 성령을 끊임없니 거스르는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신자들은 자주 시험에 들게 되고, 많은 죄에 빠”집니다.
성화와 관련하여 신자가 이 땅에서 완전히 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자가 이 땅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는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5장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는 말씀과 고린도후서 7장 1절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는 말씀을 완전성화의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기준이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자가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반면에 이 땅에서 도덕적으로 완전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구절들을 많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8장 46절 “범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 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전도서 7장 20절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잠언 20장 9절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야고보서 3장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요한일서 1장 8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신자의 성화는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죄의 영향력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악 된 본성이 완전히 죽지 않고 패잔병처럼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 사도는 7장 18절과 23절에서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늘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죄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롬 8:3-9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2) 성령을 거스르는 육신의 정욕 때문에 신자들은 자주 시험에 들고 많은 죄에 빠짐으로 “그들의 모든 영적인 봉사에 방해를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로 17절에서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들이 삶속에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느냐 성령의 소욕을 따르느냐에 따라서 끊임없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자의 심령 속에 타락한 옛 사람의 원리인 본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신자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부활한 이후입니다. 그때까지는 타락한 육체에 남아 있는 죄의 잔재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3) “그래서 신자들이 행하는 가장 좋은 행위들도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불완전하고 불결합니다.”
이 땅에서 믿는 자들의 성화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행하는 가장 좋은 행위들도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불완전하고 불결할 뿐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아론이 성소와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그의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적힌 황금 패를 부착하라고 하셨습니다(출 28: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이유는 38절에서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론의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가 있어야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 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성물을 드리는 행위조차 죄에 오염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의롭게 여기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러운 옷과 같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신자가 이렇게 그 육신에 남아 있는 죄의 잔재와 성령을 거스르는 육신의 정욕으로 인하여 자주 시험에 들고 죄에 빠지며, 영적인 봉사에 방해를 받고, 신자가 행하는 가장 좋은 행위조차도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불완전하고 불결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혹과 죄로 인하여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