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33문] "의롭다 하심(칭의)이란 무엇인가?(2)"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 이 시간은 소요리 33문에서 가르치는 ‘의롭다 하심(칭의)’에 대해서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33문 “의롭다 하심(칭의)이란 무엇입니까?”

답 : “의롭다 하심(칭의)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로서, 그분께서 죄인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기 앞에서 의롭다고 용납하시고 간주해 주시는 것인데, 이 의(義)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소요리 33문을 대요리 70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를 따라서 살펴보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70문 “의롭다 하심(칭의)이란 무엇입니까?”

답 : “의롭다 하심(칭의)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로서, 그분께서 죄인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 용납하시고 간주해 주시는 것인데, 이 의롭다 하심(칭의)은 죄인들 안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이나 그들의 행한 어떤 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받아주시는 것인데, 이 의(義)는 오직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전가하시고 죄인들이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대속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은 대요리 71문에서 73문을 통하여 가르치는 의롭다 하심(칭의)과, 성도로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게 하는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2. 대요리 71문에서는 의롭다 하심(칭의)이 어떻게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71문 “의롭다 하심(칭의)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행위입니까?”

답 : “그리스도는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을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적절하고 실제적이며 충분한 만족을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요구하실 수 있었던 만족을 한 보증인에게 받으시되, 자신의 독생자를 그 보증인으로 제공하시고, 독생자의 의를 그들에게 전가하셨습니다. 또 그들의 의롭다 하심(칭의)을 위하여 그들에게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고, 그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까닭에 그들을 의롭다 하심(칭의)은 그들에게 값없이 베푸신 은혜의 행위입니다.”  

1) “그리스도는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을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적절하고 실제적이며 충분한 만족을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이 의롭다 하심(칭의)은 값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하여 행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는데, 바로 독생자의 피와 목숨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로 19절에서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보배로운 피와 목숨을, 우리 죄를 대속하는 속전으로 지불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값이 지불되지 않았는데, 죄인을 무죄하시다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요구하실 수 있었던 만족을 한 보증인에게 받으시되, 자신의 독생자를 그 보증인으로 제공하”심으로 의롭다 하시는 근거를 마련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53장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죄를 위한 한 보증인을 세우실 것을 예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우리의 죄 값을 스스로 갚을 수가 없는 자들이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빚을 갚아 주실 보증인을 보내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 53장 11절에서 우리를 우리의 죄의 빚에서 갚아 주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갚아 주실 보증인을 예비하셨는데,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로마서 8장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우리 죄를 대신 갚아주시는 보증인으로 세우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3) “독생자의 의를 그들에게 전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어주신 것입니까?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시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신 것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공의를 완전히 이루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또 그들의 의롭다 하심(칭의)을 위하여 그들에게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고, 그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까닭에 그들을 의롭다 하심(칭의)은 그들에게 값없이 베푸신 은혜의 행위입니다.”

① 죄인이 예수님의 의로만이 의로워질 수 있는데, 예수님의 의를 전가받는 방법은 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하실 때 “믿음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로마서 3장 25절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죄 값을 당신의 피와 생명을 속전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의 책임과 형벌에서 대속하여 주신 구주로 믿을 때 이 의를 전가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3절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실 때 “여겨진”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엘로기스테’인데, 어근은 ‘로기조마이’로서 ‘세다. 계산하다. 여기다. 생각하다’는 동사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때 ‘그 믿음을 그의 의로 계산해 주신다.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겨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여겨 주시고, 간주해 주시는 것이 바로 전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야고보서 2장 17절과 26절에서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강조하는 것은 행위가 칭의의 근거나 이유가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칭의의 열매와 증거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이 ‘역사하는 믿음’인 것을 가르쳤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라고 말씀하였는데, “믿음의 역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참 믿음은 ‘역사’(일)하는 것으로 그 믿음이 참인 것을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②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요리문답에서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까닭에 그들을 의롭다 하심(칭의)은 그들에게 값없이 베푸신 은혜의 행위”인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은 공로가 아닙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받았고 다른 사람은 믿지 않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했으니, 예수님을 믿는 내 믿음이 공로가 되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도록,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믿음도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믿게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움직이셔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③ 그래서 의롭다 하심(칭의)은 택한 백성들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행위입니다. 

행위가 아닌 값없이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시는데,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인 것을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대요리 72문에서는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72문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 “의롭게 하는 믿음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로써 죄인은 자신의 죄와 비참을, 그리고 자신의 상실된 상태로부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과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이 약속하는 진리에 동의할 뿐 아니라,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받을 만한 의인으로 간주되고 용납되기 위하여,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합니다.”  

  

1) “의롭게 하는 믿음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① “의롭게 하는 믿음”은 두 가지를 포함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내용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하는데,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믿음과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이 ‘긍정의 힘’입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말은 ‘내가 믿는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잘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믿으면 잘 될 것이고, 안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믿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롭게 하는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기에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은 믿음의 내용이 없습니다. 긍정의 힘은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구원을 얻게 하는 참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② 의롭게 하는 참 믿음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의롭게 하는 믿음은 인간의 능력으로 획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지혜와 결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내용이 되는 복음의 말씀과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받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은 성령께서 우리의 지각을 여시고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은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죄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로써 죄인은 자신의 죄와 비참을, 그리고 자신의 상실된 상태로부터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과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롭게 하는 믿음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자신의 죄와 비참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서 “그들이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둘째로, 죄와 비참에서 벗어날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자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셋째로, 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와 비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들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며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부르짖는 자들에게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라고 하였습니다. 

3) “복음이 약속하는 진리에 동의할 뿐 아니라,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받을 만한 의인으로 간주되고 용납되기 위하여,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합니다.”

① 성령님께서 성도의 마음속에 믿음의 씨앗을 심으시면, 말씀에 대한 불신이 점점 사라지게 되고 “복음이 약속하는 진리에 동의”하게 되어 그 약속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 9절에서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대로, 성령님의 역사로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인 자만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② 사람의 힘으로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해결하기 보다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더할 뿐입니다. 해결책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인의 죄 값이 지불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죄를 용서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죄인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을 이미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그분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절에서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라고 증거해 주시고 있습니다. 

③ 죄인을 의롭게 하는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죄인을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자기의 선행과 의를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만 받아들이고 의지할 때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받을 만한 의인으로 간주되고 용납”되는 것입니다. 

4. 대요리 73문에서는 믿음이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을 의롭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73문 “믿음이 어떻게 죄인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합니까?”

답 : “믿음이 죄인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하는 것은 믿음에 항상 따르는 다른 은혜들이나 믿음의 열매인 선행 때문이 아닙니다. 또 믿음의 은혜 자체나 믿음에서 나오는 어떤 행위가 의롭다 함을 위해서 죄인에게 전가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믿음이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적용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1) “믿음이 죄인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하는 것은 믿음에 항상 따르는 다른 은혜들이나 믿음의 열매인 선행 때문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은 행위가 아니고 은혜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믿음이 행위라면, 내가 스스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창출할 수 있다면, 그 믿음은 공로요 행위가 되어, 나의 믿음이 나를 구원으로 이끌었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행위의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니니 공로도 없고, 믿음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히 이루신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에서 피와 생명을 내어주시고 이루신 충분한 대속이 구원의 근거입니다. 

2) “또 믿음의 은혜 자체나 믿음에서 나오는 어떤 행위가 의롭다 함을 위해서 죄인에게 전가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믿음과 행위(선행)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17)이라는 말씀처럼 참 믿음은 행위(선행)를 산출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서 나오는 선행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교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선행이 추가되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예수님의 의를 믿기 때문이지, 믿음에서 나온 선행 때문이 아닙니다. 

3)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을 의롭게 하는 것은 “믿음이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적용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믿음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믿음은 구원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대속’만이 구원의 근거입니다. 우리에게 은혜 곧 선물로 주신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대속으로 이루신 의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불완전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공로도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도달하고, 또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 믿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드리는 수단과 구원의 통로로 삼으신 것은 이 믿음은 사람이 자신을 의지하거나 자랑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는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선을 행할 수 없는 무능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철저히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 곧 죄인을 위해서 행하신 ‘완전한 순종과 충분한 대속’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경륜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