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27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2)"
요한복음 19장 28-34절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1.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중보자와 구속주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1) 오늘 소요리문답 제 27문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제 27문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가 강생하시되 비천한 지위에서 나신 것과 율법 아래 나신 것과, 금생의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와 죽음을 받으신 것과, 장자 지낸 바 되신 것과,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을 말합니다.
2) 대요리문답 제 46문에도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신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제 46문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신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지상에서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가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영광을 스스로 비우시고 종의 형상을 취하시어 비천한 신분에 처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었습니다.
이 사실을 대요리문답 47문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47문 : 그리스도는 잉태되시고 태어나실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잉태되시고 태어나실 때 자신을 다음과 같이 낮추셨습니다. 곧 그분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 품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때가 차매 기꺼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고, 신분이 낮은 여자에게서 출생하심으로, 평범하지 않은 여러 가지 열악한 형편에 처하였습니다.
3. 또한 그리스도는 그 비천한 모습으로 “지상에서 사”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것을 대요리문답 제 48문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애에서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제 48문 :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애에서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애에서 스스로 율법에 복종하심으로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시고, 인간 본성에 공통된 것들이든, 특별히 자신의 비천한 상태에 수반하는 것들이든 세상의 멸시, 사탄의 시험, 육신의 연약함과 싸우심으로써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대요리문답 49문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자신을 낮추신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제 49문 : 그리스도는 죽으실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죽으실 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분은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셨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으며,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배척을 받으셨고, 빌라도에게 정죄를 받으셨으며, 핍박자들에게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와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셨고,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느끼시고 그것을 참으셨으며, 자기 생명을 속죄제물로 드리셨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어떻게 자신을 낮추셨는지를 몇 가지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실 때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셨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의 몸값인 은 30에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에 의하여 팔리셨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돈으로 팔아 예수님을 배신하였으나,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시자 자신들도 체포될 것이 두려워서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함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시자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대답하였고, 주님께서 다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라고 하시자, 다시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 26:35)라고 말하였으나, 주님 말씀처럼 그는 주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2)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실 때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조롱을 받으실 것에 대해서 이사야 53장 3절에서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라고 예언하신 대로 예수님은 조롱과 배척을 받으셨는데, 유대인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마 26:67-68)라는 조롱을 당하셨고, 또한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자들은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마27:28-31).
또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 떡을 먹고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했던 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메시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으며, 살인자인 바라바를 예수님 대신 놓아 달라고 말함으로 살인자인 바라바보다 예수님을 가치 없는 분으로 여기며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이와 같은 조롱과 배척을 당하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실 때 “빌라도에게 정죄를 받으셨으며, 핍박자들에게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무죄 방면하려 했으나, 민란이 나려고 하자 십자가형을 선언한 후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었습니다(막 15:15). 죄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매를 맞으시고 사형판결을 받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4)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죽음의 공포와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셨고,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느끼시고 그것을 참으셨으며, 자기 생명을 속죄제물로 드리셨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① 예수님은 참된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이신데, 온전한 사람으로서 죽음의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셔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인하여 두려워하셨습니다. 기도하실 때 땀방울에 피가 배어 나왔음을 누가복음 22장 44절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죽음의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공포와 어둠의 세력들과 싸우”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② 예수님은 십자가 위해서 “자기 생명을 속죄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죽지 않아도 되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죽으신 것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③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을 당하”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형은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사형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어떤 죄를 지어도 로마법으로 십자가형을 내릴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치명적인 손상을 단시간에 주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육체의 고통속에서 물과 피를 흘림으로 고통과 갈증에 몸부림치다가 죽음에 이르는 사형제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그토록 고통과 수치 속에서,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시면서 죽으셨는데,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은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하여 당하여야 할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을 당하”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기까지” 무덤에 장사되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것을 대요리문답 50문에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제 50문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장사되셔서, 죽은 자의 상태로, 제 3일까지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물러 계셨음을 말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 표현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장사되”심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서 “3 ...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죽으신 예수님의 몸이 장사되신 것이 왜 낮아지심인 것입니까?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여기심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고, 또한 무죄한 참 사람도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는 수치와 비하를 겪으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죽은 자의 상태로, 제 3일까지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물러 계셨”는데, “이는 다른 말로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 표현합니다.”
무덤은 죽음의 권세의 상징입니다. 그 죽음의 권세 아래서 3일 동안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 표현합니다. 라틴어와 영어로 된 사도신경에서는 이 표현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교에서는 이 말씀이 실제 예수님께서 지옥의 고통을 맛보셨다는 말씀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한 한편 강도에게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라고 말씀해 주신 것 외에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다른 어떤 성경 구절이 없기 때문에 장사되신 것을 지옥에 내려 가셨다고 대요리문답에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교에서는 이 부분을 예수님께서 선조 림보(연옥)로 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선조 림보(연옥)는 구약의 성도들이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장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구절은 한 절도 없습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이 표현을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는 표현이 실제적인 장소로서 지옥에 가신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친히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까?
1) 주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과 18절에서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양떼인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로 15절에서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라고도 말씀해 주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삼아 주시기 위하여 먼저 자신의 목숨을 버리실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이 사랑을 받은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이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대신 죽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구주를 죽게 하였습니다.
2) 주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신 것은 십자가 후에 기쁨을 내다보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이유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그 기쁨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속을 완성하심으로 창세 전에 삼위 하나님 간에 세우신 구속언약을 성취하심을 통하여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심으로 인간의 죄와 사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곧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사랑과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를 드러내 주셨고, 또한 택한 백성을 구원하사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께 찬송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영원토록 돌리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내다보시고 이를 기뻐하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7.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자로 여기심을 받았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들로 받아들여졌고 천국의 후사가 되었는데,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이 감사하고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절로 15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제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저와 여러분 모두의 이 땅에서의 남은 삶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나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마땅하다고 은혜를 깨달은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또한 우리는 그분의 낮아지심과 고난 받으심을 본받는 자들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 모두를 당신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속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는데,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 베드로전서 2장 19절로 21절에서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부당한 고난, 곧 죄가 없어도 주님의 이름과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제자로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도 갇혔으나,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12제자들처럼,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복음의 영광을 위해서 능욕받는 일을 기뻐하는 자들로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