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22문]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누가복음 1장 26-38절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교회가 성경대로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증거할 때 세상 사람들은 왜 기독교에만 구원과 영생이 있다고 말하느냐? 라고 항변합니다. 어느 종교든지 자기들 나름대로 교리를 가지고 종교적인 삶을 살면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고 말해야지 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편협한 주장을 하느냐고 말하며, 기독교인들은 포용력이 부족한 독선과 아집에 빠진 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럼에도 참된 신앙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유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이 율법을 지켜서 다른 종교인들이 말하는 대로 자기들의 종교의 수양(修養)의 방식을 따라서 살아간다하여도 사람은 자신의 행위와 공로로 자기의 죄를 씻을 수 없고, 의를 획득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에 사도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고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오늘은 참된 구속자시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으로서 어떻게 참 사람이 되셨는지를 성경이 가르치는 바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22문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사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탄생하심으로 사람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2문을 대요리문답 37문에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7문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사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그의 실질(형질)로 탄생하심으로 사람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이단 사상이었던 영지주의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은 선하고 순수하며 육은 악하고 더럽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선하신 영이신 하나님께서 악하고 더러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을 철학의 틀에 맞추려하니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 이단 중의 하나가 토케티즘인데, 이 말은 헬라어 ‘토케인’에서 나온 말로서 이 단어의 뜻은 ‘보이다. ~ 인 듯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인간의 몸을 가지지 않았고, 단지 육체를 입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예수님의 몸은 실제가 아니요,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순종하신 것도 아니요, 고난을 받으시거나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이 모두 상징 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거짓된 것이나, 만일 예수님께서 실제로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래서 죄인을 위하여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택한 백성을 위한 대속의 값이 지불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태어날 때 받으신 본명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중보자와 구속주로서 감당하실 일에 대한 직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택한 백성의 주님이십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다른 아들이 또 있는 것이 아닌 외아들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독생자’라는 말은 헬라어는 ‘모노게네스’인데, 이 말은 ‘모노(유일한 하나)’와 ‘게네스(낳은 바 된 자)’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독생자’자라는 말이 ‘하나(Only one)’라는 뜻이 아니라, 영어로 ‘유니크(unique - 유일한, 독특한, 특별한)’한 분이라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낳지 않은 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뿐인 독특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본성(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공유하신 독특한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구지 설명을 하자면 둘 이상이 필요하지 않는 한분으로 충분한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독생자’라는 표현이 히브리서 11장 17절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있었음에도 이삭을 외아들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어지는 유일한 아들이 이삭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용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아내가 있어서 생물학적인 방식으로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영원 전에 창조가 아니라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성자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영원 전에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셨다는 말은 인간의 생육법으로 낳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는 ‘논리적인 출생’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 ‘하나’라는 말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들의 본질이 하나’요, 본질적으로 ‘같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주후 32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이며 하나님과 ‘비슷한 분(호모 이오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성부와 성자는 ‘동일 본질(호모 우시오스)’을 가진 하나님이라고 반박하였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호모 이오스(성부와 성자가 비슷한 분)’를 주장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래서 니케아 신경에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영원 전에 성부에게서 태어난, 신 중의 신이며 빛 중의 빛이고, 참 신 중의 참 신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출생되었으며,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분입니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계획하신 창조와 구속을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기 위해서 영원 전에 아들을 낳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6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6문 : 은혜 언약의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답 :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는 성부 하나님과 한 실체이시고 동등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본질이 같으시고 영광과 능력과 권세가 동등하신 분이시기에 성부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주시면 족하겠다고 할 때에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어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주시는 분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질적인 면에서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참 아들이십니다.
3) 그러면 왜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중보자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셔야 우리를 온전히 구원할 구주가 되시기 때문인데, 이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8문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8문 : 왜 중보자가 반드시 하나님이어야 했습니까?
답 : 중보자가 반드시 하나님이어야 했던 것은 자기의 인성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와 사망의 권세에 빠지는 것을 막아서 지키시고, 자기 고난과 순종과 중보를 가치 있고 효력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속상(贖償 - 속전을 드려서 갚다)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으시고, 특별한 백성을 사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고, 그들을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보자가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7문에서 크게 두 가지로 가르쳤는데, ① 첫째는 “그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본성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짊어지”셔야 했기 때문이고, ② 둘째로는 “의와 생명을 획득하시고,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셔야 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8문에서 중보자가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① 첫째로 “자기의 인성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와 사망의 권세에 빠지는 것을 막아서 지키”셔야 했기 때문이요, ② 둘째로 “자기 고난과 순종과 중보를 가치 있고 효력 있게 하”시기 위해서 중보자는 하나님이셔야 했고, ③ 셋째로 “하나님의 공의를 속상(贖償)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으”셨어야 했기 때문이며, ④ 그 외에 “특별한 백성을 사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고, 그들을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셔야 했기 때문”에 중보자는 하나님이셔야 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이 땅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셨습니다.
1) 예수라는 이름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었습니다.
먼저 태어나실 예수님의 이름을 마리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30절로 31절에서 “30. 천사가 이르되 마라아여 무서워 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후 육신의 아버지가 될 요셉에게도 탄생하실 예수님의 이름을 주의 사자를 통하여 꿈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이 땅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신 분이심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41문에서 우리의 중보자를 예수라고 말하는 까닭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41문 : 어찌하여 우리의 중보자를 예수라 하는가?
답 : 우리의 중보자를 예수라 한 까닭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라고도 불리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곳이 나사렛이란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예수란 표현은 예수님이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당시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며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는데, 그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나사렛 예수’라고 예수님을 칭한 것이었습니다.
3)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9문에서 왜 중보자가 사람이셔야 했는지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9문 : 왜 중보자가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는가?
답 : 중보자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성품을 붙들어 주시고 율법을 순종하시고 우리의 성품을 입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중보하시며(대신 간구하심),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양자됨을 얻게 하시고, 위로를 받으며,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보자가 참 사람이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16문에서는 ① 사람의 죄 값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짐승이 아닌, 사람의 본성과 동일한 본성이 죄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며, ② 죄 있는 죄인은 그 값을 대신 할 수 없기에 죄 없는 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 39문에서는 더 분명하게 중보자가 참 사람이신 이유에 대해서 ① 먼저 “우리의 성품을 붙들어 주시고 율법을 순종하시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② 그리고 난 후에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임을 가르치고, ③ 더 나아가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시며(대신 간구하심),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양자됨을 얻게 하시고, 위로를 받으며,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셔야 했기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실 때의 직책이 ‘그리스도’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씀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사람으로 탄생하여 받으신 이름이 ‘예수’라면,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분의 직책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신약 헬라어이고 구약 히브리어로는 ‘마쉬아흐’ 곧 ‘메시아’입니다. 둘 다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로서, 구약 시대 왕, 제사장, 선지자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 셋 다 하나님과 백성의 중보자입니다. 왕은 통치의 중보자이고, 제사장은 백성의 아픔을 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이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말씀을 선포하는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메시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완전한 메시아 곧 완전한 구원의 중보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참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5.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시기 위하여 “참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사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탄생하심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만들어지고 태어나는 과정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풀과 나무와 곡식이 자라고, 또 동물들이 번식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에 햇빛과 비를 주시고 바다의 해류가 흐르게 하시고 땅 위에 바람을 불게 하시는 다스리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일이 부모의 유전자가 결합되어서 어머니 태중에서 뼈가 자라고 신경이 자라고 살이 오르고 근육과 힘줄이 자라고 각 장기가 자라서 제 기능을 하게 되고 때가 되자, 그 부모를 닮은 자녀를 낳는 것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역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이 방식으로 태어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유전자의 결합을 통하여 자녀가 출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임을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보자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 가운데 사람으로 나게 하실 때의 방식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는 참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2) 이에 대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35문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39문 :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라는 말로 당신은 무엇을 고백합니까?
답 : 하나님의 영원한 아드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여전히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성령의 사역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또한 다윗의 참된 자손이 되시고 모든 일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일 곧 성육신으로 참 사람이 되셨으나, 여전히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마리아의 살과 피를 취하신 참 사람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말이 그분의 신성이 단순히 육체만 입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참 사람의 요소인 몸과 영혼을 다 가지고 태어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소요리 22문과 대요리 37문에서 “참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신성을 소유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우리와 같이 영혼과 육체를 가지고 계신 참 사람이십니다.
3) 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탄생하심으로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으셨기 때문이요, 또한 한 번도 자범죄를 범하신 일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직 이 분만이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오직 유일한 중보자시오, 구속주가 되십니다. 완전한 중보자와 구속주의 자격을 갖추신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없고, 이 구원의 길을 친히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전 휘장을 찢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산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천하 인간에 다른 구원자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속을 완성하신 복음을 믿음으로만 예수님의 의를 우리 것으로 여겨주시는 칭의의 구원을 통하여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