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17문] "인류가 죄로 인하여 당하는 비참함"

 창세기 3장 8-10절, 24절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에베소서 2장 2-3절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1. 오늘 살펴볼 주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모든 인류에게 가져온 비참함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7문에서 이렇게 묻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17문 :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어떠한 위치에 떨어지게 되었습니까?

 답 :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죄와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1) 인생의 비참의 원인은 죄요, 죄의 결과가 비참함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소요리문답 16문에서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들만의 죄가 아니라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로서 언약을 맺었고 그 언약을 어겼음으로,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시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으며 그와 함께 타락하여 함께 죄책과 의가 없음과 본성의 부패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모든 후손도 함께 타락하게 되었는데, 인류가 타락(떨어짐)하게 된 처지와 위치를 한 마디로 말하면 “죄와 비참한 처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의 단 하나의 위로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사나 죽으나 나의 몸도 영혼도 나의 것이 아니요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다 치르셨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구원해 내셨으며... 이제부터 그를 위하여 살기를 진정으로 바라도록 만드시고 또한 그렇게 살 준비를 갖추도록 만드십니다.”라고 가르친 후 제2문에서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되게 살고 죽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알아야 합니까?”라고 묻고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이요, 둘째로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이요, 셋째로 그 구원에 대하여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먼저 나의 죄로 인하여 당하게 되는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비참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 구원의 방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비참을 온전히 깨달아야 구속주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질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의 질병을 온전히 깨달아야 그 병에서 놓임 받게 해 주는 치료약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바라거나 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되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바참한 처지에 눈을 뜨게 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고 그런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밝히 드러내 주시고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죄의 비참함에 대해서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죄와 비참한 처지”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에서는 더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제27문 : 타락은 인류에게 어떤 비참을 가져 왔는가?

 답 : 타락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상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고, 사탄에게 매인 종이며,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모든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2. 먼저 타락이 인류 모두에게 가져온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상실”을 가져왔습니다. 

 범죄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더불어 충만한 교제를 누렸습니다. 에덴은 기쁨과 즐거움의 장소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와 자비를 충만히 누리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이 단절되었는데 2가지 방면에서 단절이 일어났습니다. 

 1) 첫 번째는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면전에 설 수 없는 자들이 되었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처소인 에덴에서 내보내시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7절로 8절에서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라는 장벽이 생겼기 때문이요,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친밀한 생명의 교제를 나누던 에덴에서 쫓겨난 것을 창세기 3장 24절에서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낙원인 에덴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적대관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장 7절에서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라는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진 아담과 하와의 양심에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장애물이 생긴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의 단절의 두 번째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은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이 끊어진다는 것 곧 영적인 죽음이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에서 사도 바울은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1절에서 허물이라는 말의 어원은 헬라어 ‘핍토’라는 말로서 ‘떨어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죄는 ‘하말티아’로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의 자리에서 떨어진 존재들이 바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 곧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을 통해서만,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질 수 있을 뿐입니다. 

 감사한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저와 여러분은 중생하였습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죽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생명의 교통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말이 중생(거듭남)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기도하고 도우심을 구하고 교통하는 것보다 더 큰 위로도 힘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3. 둘째로 타락은 인류에게 “...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도 진노하시는 분이시냐고 물을 수 있으나, 하나님은 무조건 진노하시는 분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을 거역한 죄와 악에 대하여 거룩한 진노를 발하시고 그 거룩하신 진노는 선을 이루시는 방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침묵하신다면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부인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공의롭지도 거룩하시지도 않은 분이신 것을 드러내는 것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의 성품이 죄와 악에 대하여 거룩하신 공의의 분노를 발하시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1장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당하게 된 비참함은 육체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생존을 위해서 땀 흘려 수고하고 일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와에게는 “...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격적인 피조물들에게는 잘한 일에는 상을 주시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분명한 결과가 따르는데, 인류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죄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인 삶이 인생의 비참입니다.

 이 죄로 인한 비참함이 아담의 후손들에게는 더 많은 비참함을 가져 왔는데, 사람들이 당하게 되는 가난, 질병, 수치, 고통, 슬픔, 다툼, 분열, 죄악, 죽음, 그리고 마지막에 임할 영원한 지옥 형벌은 다 죄로 인하여 오게 되는 비참함입니다. 죄가 먼저 오고 그 다음이 비참입니다. 

 이 비참을 해결하는 방법은 비참의 근원인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당하는 비참은 시대를 잘못 만나서도 아니고,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도 아니고,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해서도 아니며,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사주팔자가 나빠서, 조상의 묘를 잘못써서가 아니라,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은 이 비참으로부터 해방된 자들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 하여도 이 땅에서 고난을 받고 질병이 찾아오고 사고도 발생하며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비참함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는 성화의 방편과 통로가 되고, 그 비참한 삶을 주님이 함께 하사 능히 감당할 힘과 은혜를 주시고,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아프지도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고 주와 더불어 영원토록 교제하며 기쁨의 복락 가운데 살아가는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모든 인생의 비참이 지나간 자들인 것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4. 셋째로 타락은 모든 인류를 하나님 앞에서 “...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진노의 자녀라는 표현은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는데서 왔습니다. 

 모든 인간이 타락한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처음 창조 때와 달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가 아닙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목축과 음악과 예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오늘날은 과학, 기술, 예술, 농,상,공업의 발달로 아담 이후 가장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으나, 그것을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들의 사상은 세속주의, 인본주의, 상대주의, 물질주의, 실용주의, 반지성주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① 세속주의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란 관점입니다. 이 세속주의 정신은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과 지옥도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② 인본주의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자아 숭배로 이어집니다. 

 ③ 상대주의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절대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도 상대적이라고 가르칩니다. 누구에게는 진리인 것이 누구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④ 물질주의는 세속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지금 여기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는 개인적 소유에서만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⑤ 실용주의는 진리를 실제적 효용으로만 측정합니다. 무엇이 옳고 참된 것인가의 가치 기준이 그것이 효과가 있고 쓸모가 있느냐에 있다는 말입니다. 

 ⑥ 반지성주의는 오늘날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하는 시간이 짧으며 가치있고 중요한 것을 살펴보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심을 받은 존귀한 인생이 한 마디로 사람이 육체가 된 것입니다(창 6:3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함으로 본질상 죄를 미워하시고 그 죄에 대하여 형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에베소서 2장 4절로 7절에서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던 저와 여러분 모두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 때문에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5. 넷째로 타락함으로 모든 인류는 “... 사탄에게 매인 종...”이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인류는 마귀의 올무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디모데후서 2장 26절에서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무로 번역된 헬라어 ‘파기스’는 ‘함정’이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인 함정이 아니라, 사람을 꼼짝 못하게 단단히 붙들어 매는 함정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의식하지 못하는 때에도 마귀의 영향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마귀를 죄인들의 아비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아비인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고자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부모가 자녀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아비인 마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살아간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의 의지는 죄가 끄는 대로, 사탄이 죄로 유혹하는 대로 끌려가는 노예의지를 가질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을 때때로 사탄 마귀가 죄로 유혹하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속박에서 풀어 놓으신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때 능히 사탄의 유혹과 본성의 악함을 이기고 주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6. 다섯째로 타락함으로 모든 인류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모든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죄를 심리적인 질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죄를 짓는 이유는 그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이고, 충분한 교육과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인격있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한 것으로서 그 죄는 영원한 형벌과 죽음의 원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은 이 세상에서 형벌을 받으며 오는 세상에서도 형벌을 받습니다. 죄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동정이 필요한 불행이나 재앙도 아닙니다. 오직 죄는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하고, 용서가 필요한 범죄입니다. 

 7.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인류의 범죄로 인한 비참을 부정합니다.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말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죄를 부정한 펠라기우스를 따르며 인생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죄악성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출생한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이것은 신학이 아니라, 현대철학의 한 분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자범죄를 지음으로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할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지옥의 형벌을 대신 다 받으심으로 대속(대신 죄값을 치루어 주심)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고, 죄의 비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하늘의 산 소망을 따라서 이 땅을 살아가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