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16문] "원죄의 전가"
로마서 5장 12-14절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 지난 시간에 소요리문답 제15문에서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하신 실과를 먹은 것입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타락하게 된 죄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심을 받은 자들로서 지.정.의가 죄로 오염되지 않은 거룩한 상태에서 선과 악을 행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 사탄 마귀의 유혹과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죄를 범함으로 타락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것이 죄가 되는 것은 단순히 과일 하나를 먹은 것을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을 어겼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서 먹으면 선악을 알게 하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의 말을 듣고, 피조물로서 자신들의 지위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죄를 지은 것이었습니다.
2.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 ‘타락한 처지의 죄악성’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25문에서 이렇게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 제25문 : 사람이 타락한 그 처지의 죄악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답 : 사람이 타락한 처지의 죄악성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그가 창조함을 받았을 때의 의가 없음과 그의 본성의 부패로 구성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영적으로 선한 모든 것에 대해서 전혀 싫증나며 불능하며 악에만 전적으로 또는 계속 기울어지게 되었는데 이를 보통 원죄라 일컬으며, 이에서 모든 실제적인 범죄가 나온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범죄함으로 “죄책과 그가 창조함을 받았을 때의 의가 없음과 그의 본성의 부패”가 왔다는 말입니다. 더 큰 문제는 범죄로 인하여 죄책 아래 놓이게 된 것과 의가 없음과 본성의 부패함이 그의 후손들에게 전가되어 모든 인류는 원죄 아래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 원죄 아래서 태어나게 되는 사람의 타락한 처지의 죄악성은 첫째로 죄의 책임 아래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미치는 첫 번째 비참함입니다. 죄의 책임 곧 죄책 아래 태어난다는 말은 아담의 죄에 대해서 그 후손들이 함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원죄 아래 태어난 모든 인생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이미 선언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죄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 질병과 고통과 노쇠함이 찾아오게 되었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끊어진 삶 곧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에서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의 삶인 공중권세 잡은 사탄 마귀를 따라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함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삶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 결국 죽은 후에는 영적인 죽음의 실상인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이 영원토록 끊어진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2) 원죄 아래 태어나게 되는 사람의 타락한 처지의 죄악성의 두 번째는 아담이 창조 시에 가지고 있던 원의를 상실한 상태로 출생한다는 점입니다(로마서 3장 10절 -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원의를 상실한 상태의 두 가지 모습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로마서 3장 11절 - ...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선을 행함에 무능한 자들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로마서 3장 12절 - ... 선을 행하는 자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 원죄 아래 태어나게 되는 사람의 타락한 처지의 죄악성의 세 번째는 본성이 부패하여 죄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날 때부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할 뿐입니다. 이 본성의 타락의 범위는 전인적이어서 창조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순전성과 탁월성과 고상함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사는 비천한 자들이 되었고,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하는 존재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3. 전적 타락 가운데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선을 행할 수 있으나, 가장 큰 죄인 성령 훼방죄를 짓습니다.
1)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행하는 선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일과 같은 일들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선한 일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명하시고 선한 일인 하나님을 닮는 일들은 전혀 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예레미야 13장 23절에서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외적인 죄는 내면적인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죄인이 중생하여 마음이 영적으로 청결해지지 않는 한 외적으로 참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외면적인 삶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하나,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죄와 허물로 죽은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적인 삶을 어느 정도 개선했을 수 있으나, 새로운 마음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성령 훼방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훼방죄는 성령님을 직접 모독하는 죄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끝까지 무시하고 배척하는 죄입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가장 큰 직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서 모든 율법에 순종하심으로 의를 이루셨고, 십자가 위에서 택한 백성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대속(십자가의 보혈(寶血)로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 일)을 이루신 것을 증거하심으로 택한 백성으로 믿어 구원 얻게 하시는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자는 택한 백성이 아니기에 이 놀라운 대속의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은혜 밖에 있을 뿐입니다. 성령 훼방죄는 악의적으로 복음을 배척하고 멸시하고 할 수만 있으면 복음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악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됩니다.
3) 오늘날 그리스도 밖에 있는 현대인들은 오랫동안 진리의 기준으로 받아오던 성경의 권위를 부정함으로 인간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부정하자 도리어 자기 욕망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천박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이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됨을 부정하자 이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정신은 인본주의 사고방식으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를 대치한 것입니다. 이 인본주의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의 결정권자는 사람이라는 주의입니다.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바르게 살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자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물질과 쾌락을 두고 서로 경쟁하며 다투게 되었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 속에서 피를 튀기며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을 뿐입니다.
4. 오늘 소요리문답 제16문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 후손들에게 전가되는 원죄의 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제16문 : 아담의 첫 범죄로 모든 사람이 타락하였습니까?
답 : 아담과 언약을 세우신 것은 그만 위하여 하신 것이 아니고 그 후손까지 위하여 하신 것이므로, 그로부터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첫 범죄시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으며,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
1) 아담은 인류의 시조일 뿐 아니라, 인류의 대표였습니다.
아담 안에 전 인류가 있었고, 모든 인간은 아담에게서 나오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온 인류는 한 혈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담 안에 있고, 아담 후에 있을 온 인류를 그 언약 아래 소환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께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2) 아담의 첫 범죄는 아담과 함께 범죄한 그의 후손들로 죄인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우리 시조이기 때문에 아담의 첫 범죄는 전 인류의 모든 죄의 뿌리가 됩니다. 그래서 소요리문답 16문에서 “... 그로부터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첫 범죄 시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으며,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샘의 근원이 오염되면 그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모든 물이 오염된 채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죄는 실제로 사람을 더럽히고 오염을 시킵니다. 욥기 14장 4절에서 욥은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기도하였는데, 죄인으로 태어난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것 밖에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3) 아담 한 사람으로 시작된 죄가 모든 인류를 죄 아래 태어나게 만들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신학적인 견해는 달라집니다.
물론 개혁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말씀을 인류의 대표인 아담의 범죄에 모든 인류가 함께 죄를 짓고 그래서 죽음이 모든 사람 위에 왕 노릇 하게 되었다는 견해로 받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생각할 때 죄가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는 갓난 아기들과 태중의 태아가 죽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현대인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고, 그것을 별개라고 주장하나, 성경은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닥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5. 아담의 죄가 그 후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1)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후손에 전가된다는 원죄의 교리를 부정합니다.
펠라기우스는 모든 사람이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며, 죄는 모방을 통해서만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마다 자신의 인격으로 죄를 지으며 그에 따라오는 사람은 그 사람이 지은 죄의 결과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은 원죄가 사실임을 보여줍니다. 순수하다고 여기는 어린 아이들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든지 그들의 마음에 죄의 씨앗이 심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에 비해서 순수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상대적인 순수일 뿐입니다.
2) 그러나 펠라기우스의 원죄를 부정하는 주장은 다음 네 가지 이유로 개혁주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① 펠라기우스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은 죄로 인하여 죽는다고 주장하나 그러나 태중의 태아나 갓난아기가 죽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② 펠라기우스의 이 주장은 로마서 5장 12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모든 사람이 인류의 대표인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를 지은 자들이 되었다는 이 구절의 말씀과 모순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닌 것에 대해서 로마서 5장 14절에서 “...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③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씀하는 죄의 보편성에 대한 말씀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범죄했다고 선포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포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완전한 의 곧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신 능동적 순종과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대신 값을 치루신 수동적 순종의 의로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을 대조하여 말씀하시는 중에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④ 펠라기우스주의의 견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라고 말할 때 ‘죄를 지었다’라는 동사 시제인 부정 과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부정 과거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아담 안에서 말입니다. 이 구절은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있다고 해석할 수 없습니다.
6. 개혁주의 입장의 원죄의 교리는 다음과 같이 2가지입니다.
1) 어거스틴은 원죄에 대하여 사실주의 또는 ‘씨’ 견해를 말하였습니다.
이 견해는 중세와 현대에도 많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인데, 신체적 의미에서 모든 세대가 아담의 범죄 당시 아담 안에 있었고,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주장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아담 안에서 태아로 있었다 해도 아담의 죄에 대하여 의식을 한 것은 아니나 이 견해를 쉽게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7장 9절로 10절에서 레위와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지파도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기에 그들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전 인류가 아담 안에 있었고, 그래서 아담이 범죄할 때 모든 인류가 범죄했다는 주장입니다.
2) 원죄에 대해서 대다수 개혁주의자들은 아담의 대표성과 아담과 그 후손의 연합설을 지지합니다.
이 견해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범함으로 모든 인류가 사망 아래 처하게 되었다는 것으로서 연합설(Federalism)이라고 합니다. 로이즈 존스는 이 요점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아담의 죄도 우리에게 전가된다. 물론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죄악된 본성을 이어 받는다. ... 그러나 이 본성이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아니라,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를 사망에 얽매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모두 죄를 지었고, 우리가 모두 죄의 책임을 졌다는 사실이다. ... 우리의 이 모든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아담과 맺은 연합이다. 또한 우리의 구원이 있게 하는 것은 앞의 연합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와 맺은 연합이다.’ 이 견해의 요점은 아담이 인류를 대표했기 때문에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아담만 판단 받은 것이 아니라 인류도 판단을 받았고 아담이 죄를 지었기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7.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죽는 것에 대해서 다음의 2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만일 원죄의 교리를 부정하고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을 설명하려 한다면 ‘악의 영원성’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 말은 죄를 범하지 않은 자들에게 악이 역사하여 사망을 가져온다는 주장입니다. 이 견해가 사실이라면 도덕은 사라지고, 이 땅은 죄를 죄라고 부를 수 없고, 악을 악으로 부를 수 없는 혼돈만 가득한 세상이 되고, 성경의 교훈에 따르면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 마귀가 악의 근원인데, 이 견해를 받아들이면 피조물에 불과한 타락한 사탄 마귀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악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이 견해를 받을 수 없습니다.
2) 또한 원죄의 교리를 부정하면 힌두교의 윤회설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태아가 태중에서 죽거나 갓난아기가 죽는 것은 전생의 죄 때문이라고 그들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인생의 실제의 문제를 풀 수가 없고, 다만 계속되는 다음 생으로 문제의 해결을 미루는 방식이 될 뿐인데, 언젠가는 다시 죄와 죽음의 문제에 필연적으로 다시 부딪칠 뿐이요, 그 죄를 지은 자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 누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난해한 주장입니다.
8. 오직 유일하고 타당한 설명은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12절로 14절에서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바와 같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에 의하여 인류의 대표로 임명을 받았으므로 아담이 서면 우리도 서고, 아담이 넘어지면 우리도 그와 함께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교리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그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대표성의 원리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임하게 하신 것은 잔인한 것이 아닌가?’라고 불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표성의 원리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아담의 후손 중에서 어느 누가 아담은 범죄했으나 나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나의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아담 안에서 범죄한 자들로 여기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의 은혜를 성령의 역사로 믿는 모든 자들을 그들의 언약의 머리가 되시고 대표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를 전가하여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게 하시어 영원토록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복락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하늘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부활의 몸을 입을 소망을 가지고 있으나, 이미 영혼은 아브라함 품에서 안식을 누리며,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계시록 14장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받은 구원을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영광이 불원간에 우리 모두의 것이 될 것이며, 주님 재림하시는 날 영광스런 몸을 입고 영원토록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받은 자들의 참된 소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