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15문] "아담과 하와의 죄"
창세기 3장 5-13절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 오늘 본문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정.의가 죄로 오염되지 않은 거룩한 상태로 지으심을 받아, 선과 악을 행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 사탄 마귀의 유혹과 자신의 의지로 죄를 범함으로 타락하게 된 사건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해서 소요리문답 15문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15문 :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무엇입니까?
답 : 우리 시조가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하신 실과를 먹은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곧 참된 기쁨과 만족의 장소요, 수고하지 않아도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복된 장소에서 지은 첫 번째 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창세기 2장 8절로 9절 말씀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에덴동산에는 세 종류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첫째로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가 있었고, 셋째로 “동산 가운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1)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만드시고 그 나무의 열매를 먹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만드신 것은 사람이 그 실과를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그것을 따서 먹을 때마다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먹고 육체에 필요한 힘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며, 에덴을 관리하는 복락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2)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개혁주의 성경신학자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는 그의 저서 『성경신학 : 구약편』에서 생명나무를 인간이 순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더 높은 단계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생명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와 변치 않는 영생의 약속을 나타내는 언약의 표징이라고 보았습니다.
보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심으로써 시험의 기간을 설정하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한 순종을 보였다면, 그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더 높은 단계의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 기회는 상실되었고, 인간은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스는 생명나무가 단순한 불사(不死)의 열매를 제공하는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와 순종을 통해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언약의 요소로 이해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찬의 떡과 잔이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과 같이 눈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날마다 보여주는 것으로서 생명나무를 볼 때마다 영생으로 옮기게 될 것을 소망하고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3) 에덴동산에는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신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사람이 먹으면 죽게 되는 독(毒)이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게할더스 보스는 그의 저서 『성경신학 : 구약편』에서 “선악과는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나 금기가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도덕적 언약에 있어서 핵심적인 시험이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선악과(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를 단순히 “옳고 그름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가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속에서 인간의 순종을 시험하는 수단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아담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할 것인지, 피조물로서의 자리를 지킬 것인지를 드러내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복종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는 행위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는 선악과의 의미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스스로 가지려는 시도”라고 설명하였습니다.
2. 선악과는 그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뱀 곧 사탄은 하와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라고 말하였습니다. 뱀의 말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실제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 줄을 아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반대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한 자로서 진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탄의 말에 기초하여 교리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탄은 거짓말로 하와를 미혹하였습니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선과 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아진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실상은 반대입니다.
우리는 소요리문답 14문에서 ‘죄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어기는 것입니다’라고 배운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대로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것이 선이요, 그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는 것이 악인 것을 그 나무를 통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게할더스 보스의 말대로 선악과는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복종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는 행위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거부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 먹지 않는 것이 선이요, 그 말씀을 어기고 따먹는 것이 죄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인 나는 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자임을 기억하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주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행하고 살아야 할 자가 아니며, 하나님의 뜻과 명령 아래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는 인생이 지으심을 받은 목적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시는 이정표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마음의 원하는 것을 이루어 세상에 이름을 높이 드러내고 잘 먹고 잘 사는 소위 성공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표입니까?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에 온전히 순종하고 어기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우리 삶의 목적은 그렇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3.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나무열매 하나를 먹은 것이 죽어야 하는 죄가 된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 살펴 본대로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하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악인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을 어김으로 자신들이 피조물의 지위에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뜻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심각한 죄를 지은 것이었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라는 말씀인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세가 아니고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말라는 죄의 유혹을 받고 그 실과를 보니 그들의 눈에 “...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 악이고, 하나님께 금하신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일이지만, 내가 볼 때 하나님이 말씀대로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처럼 여겨지더라도 결국 그렇게 행하게 되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지혜롭고 복된 결말이 아니라, 우리로 슬픔과 수치와 고통에 떨어지게 하는 죄와 악이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결과는 타락이었습니다.
타락이라는 말은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창조 받은 지위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타락은 두 가지 방면에서 일어났는데, 내적 지위와 외적인 지위에서의 타락입니다.
① 내적 지위에서 타락은 존재론적인 타락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지으신 지.정.의에 있어서 타락을 말씀합니다.
지성은 창조주에 대한 참되고 건전한 지식 대신에 눈멂과 끔찍한 어둠과 허망함과 어그러진 판단을 하게 되었고, 정서는 순수와 거룩함을 추구하는 대신 더러움을 가져 왔으며, 의지 곧 마음과 뜻은 정직하게 지으셨는데, 타락으로 악함과 패역함과 완고함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적 지위 곧 존재론적인 지위에서는 타락입니다.
② 외적 지위 곧 환경적인 지위에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범죄하던 바로 그때에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몸은 930년 후에 흙으로 돌아가는 육체의 죽음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낙원 곧 에덴에서 쫓겨나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않고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수고로운 인생이 되었고, 여인들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4. 아담의 타락으로 그의 모든 후손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원죄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아담이 범한 죄의 공동책임. 둘째 원래 의의 결핍. 셋째 본성의 부패입니다.
1) 원죄의 첫 번째 요소는 아담의 죄에 대하여 그의 후손들이 공동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언약의 머리로서 하나님과 맺은 행위언약을 어김으로 자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도 태어날 때부터 죄인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모든 인류의 언약의 머리로서 범죄하였기에 대표성의 원리를 인하여 그의 모든 후손들이 그 죄의 책임과 영향 아래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로 22절에서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언약의 머리인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영적으로 죽었으며, 사망이 그들 위에 왕 노릇하는 죄와 사망의 종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2) 원죄의 두 번째 요소는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주셨던 의가 결핍된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서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을 때 받은 ‘의’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의를 상실한 인간에게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①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11절에서는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고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한 백성을 찾아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심으로 구원하여 주시지 않으면 영원토록 하나님과 단절된 죽음의 상태에 거할 뿐입니다.
② 둘째로 선을 행함에 있어서 무기력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12절에서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연인(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선을 행할 능력이 없음으로 무익한 일들만 되풀이 할 뿐입니다.
3) 원죄의 세 번째 요소는 본성이 부패한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로 7절에서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은 자기중심적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굴복할 마음이 없어진 상태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본성의 부패란 타락한 이후 인간에게 스며든 마음과 양심의 더러움입니다. 본성이 부패한 모습이 바로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서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것이 죄악된 본성 곧 부패한 본성의 모습입니다.
이 본성이 사람의 마음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악을 행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원죄란 부패한 마음, 죄의 지배를 받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원죄에서 나오는 죄의 열매들이 자범죄(自犯罪)입니다. 원죄는 죄의 뿌리요, 자범죄는 그 뿌리에서 자라나 결실한 열매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마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더러운 죄를 행할 뿐입니다.
5. 이로 인하여 아담의 후손들은 영적으로 선한 모든 것을 매우 싫어하고, 행한 능력도 없으며, 거역하고, 마음이 악을 향해 전적으로 또는 계속적으로 기울어지게 될 뿐입니다.
이 사실을 시편 58편 3절에서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를 짓는 존재입니다. 선을 행할 수 없기에 악(惡)만 행하며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것이 원죄의 상태로 태어난 모습이고, 이 원죄로부터 모든 자범죄가 나오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로 15절에서는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죄는 육신이 아닌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밖에서 잘라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된 자들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 있을 때는 선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하나님을 닮은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이제 우리를 구원하사 그리스도 안에서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자들로 만들어 주셨으니,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답게 선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