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14문] "죄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3장 4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야고보서 2장 10절, 4장 17절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로마서 3장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1.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모든 인생이 당면한 고통의 문제인 죄와 악들은 결핍에서 온다고 말을 할 뿐 아니라,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사람이 죄인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인생의 문제 곧 다툼과 분쟁과 싸움과 각종 폭력과 전쟁과 같은 모든 죄와 악은 결핍에서 온다고 말을 합니다.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 결핍, 제대로 배우지 못한 교육을 받을 기회의 결핍, 먹을 양식과 자원의 부족과 같은 환경적인 결핍에 기인한다고 말을 하면서 죄와 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인하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설령 사람이 죄인이라도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니체는 ‘죄 의식이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며, 이를 극복해야 한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샤르트르는 ‘절대적인 선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죄의 개념도 인간이 창조한 것이며,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죄의 실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마음속만 들여다보아도 탐욕과 절제하지 못함과 오직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서 타인에 대한 미움과 분노와 같은 죄의 실체들은 차고 넘칩니다. 또 그 죄가 얼마나 강력하고 끈질긴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그들의 심령과 삶 속에서도 죄는 차고 넘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영지주의의 한 분파에서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가르치면서 죄는 육체와 관련이 있고, 영은 죄와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마르키 드 사드는 ‘신이 존재한다면 죄와 악의 책임이 신에게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죄와 악을 막을 수 있어야 하지만, 여전히 죄가 존재한다면 결국 신이 죄의 원인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는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인간을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신의 책임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견해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되 지.정.의가 죄가 없는 거룩한 상태로 지으셨고, 선과 악을 행할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과, 첫 사람은 죄를 짓지 않을 능력 곧 원의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사탄의 유혹에 미혹되어 자신의 의지로 범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하는 말들입니다.
2. 죄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 죄를 짓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인 것을 증거할 뿐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선악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기 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죄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죄로 인하여 오게 되는 모든 비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2문에서 “당신이 이 위로(우리가 이 땅에서 사나 죽으나 참된 위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인데, 그분이 피를 흘려서 죗값을 치르시고 사탄의 모든 권세에서 구원하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 가운데 우리의 머리카락이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과 성령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확신시켜 주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꺼이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가운데서 참되게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까?”라고 묻고서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나의 죄들이 얼마나 크며, 그 죄들로 인하여 내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둘째는 나의 이 모든 죄들과 비참한 상태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셋째는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자신이 죄인이요, 죄로 인하여 비참한 처지에 떨어진 것을 알 때 참된 소망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4문에서 죄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요리 제 14문 :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바로 알기를 원하면 죄의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죄의 기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이 죄다.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죄가 되는 이유가 어떻게 해서 누구의 법을 어겨서 죄가 되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죄이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죄입니다. 누가 죄의 기준을 정할 수 있으며, 누가 최종 재판관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을 알지 못하고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죄를 정하면 사람이 재판관이 되고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죄의 최종적인 결정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죄에 대한 심판자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법이 죄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의 율법으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와 죄의 비참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 순종의 법칙으로 주신 삶의 기준들이 바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 법은 타락하기 전 인간의 마음, 곧 양심에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9절에서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2장 14절로 15절에서는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라고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법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어두워지고 흐려지고 무디어졌습니다. 범죄 하여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과 총명이 망가짐으로 눈멂과 끔찍한 어둠과 허망함과 어그러진 판단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부패한 인간의 양심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말씀입니다.
4. 구약시대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은 크게 구분하면 세 가지였습니다.
1) 첫째로 시민법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회이며 동시에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곧 국가의 법이었습니다. 이런 국가체제를 흔히 신정국가(Theocracy, 神政國家)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국가의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시민법, 또는 사회법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모세율법에는 간음한 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만일 지금 이렇게 한다면 모두 범죄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도둑질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남의 것을 훔친 사람은 2배 또는 4배로 배상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어느 나라도 이렇게 판결하는 법은 없습니다. 국가이며 동시에 교회인 나라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의 시민법은 국가의 법에 그 정신이 포함되어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제사법입니다.
제사법은 성전제사제도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어떤 절차를 따라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를 레위기에서 잘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처음 제사장이던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하려다가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살라 죽이셨습니다.
구약의 성전제도와 제사제도와 제사장은 참된 성전이시오, 참된 제사장이시오, 한 점 흠 없는 참된 속죄의 제물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을 위한 단 한 번의 완전한 속죄의 제사로 제사법은 완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제사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로 1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영 단번에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음을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3) 셋째로 도덕법입니다.
도덕법은 십계명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지켜야 하는 법이 십계명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도 이 법 아래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과 진노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의 모든 시대의 선과 악의 기준은 바로 이 십계명입니다.
5.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대상은 율법을 깨달을 수 있는 이성이 있는 천사와 사람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이성이 없는 짐승들은 죄를 지을 수 없고, 구원과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힘쎈 동물이 다른 동물들의 먹을 것을 다 빼앗아 혼자 먹어도 아무도 그 동물이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물들이 양육강식의 법칙에 따라서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도 그것을 죄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짐승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을 따라서 살 뿐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천사와 사람을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천사들 가운데 일부가 타락하여 하늘에서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천사들이 지은 죄를 말씀하지 않으나 디모데전서 3장 6절로 7절에서는 교만의 죄를 지었다는 것을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교만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요 처음부터 살인한 자인 마귀(요 8:44)를 닮은 것입니다.
또한 사탄 마귀가 자기가 지으심을 받은 지위를 지키지 않았음을 유다서 6절에서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6. 이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을 죄(sin)라고 하며, 국가의 법을 어긴 것을 범죄(crime)라고 합니다.
대요리문답 제 24문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요리 제 24문 : 죄가 무엇입니까?
답 : 죄는 이성을 가진 피조물에게 법칙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부족하게 순종하거나 그것을 어기는 것입니다.
소요리에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대요리 문답에서 덧붙여 가르치고 있는데,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라는 부분을 “죄는 이성을 가진 피조물에게 법칙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부족하게 순종하거나”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죄도 되고 범죄도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살인과 도둑질이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살인과 도둑질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고, 또 모든 나라의 법에서도 금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죄이기는 하나 범죄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음란한 마음을 품는 것은 국가의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나라도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음란한 마음을 품는 것을 법으로 금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1절로 22절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하나님을 법을 어긴 죄라고 말씀해 주셨고, 또한 마태복음 5장 27절로 28절에서 마음에 품은 음란한 마음에 대해서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그것이 죄인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여 주신대로 미워함은 살인과 같고, 음란한 마음은 이미 간음한 것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만 죄입니다.
3) 셋째로 죄는 아닌데, 범죄가 되는 경우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나라로서 기독교 신앙은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로 간주되며, 성경을 소지하거나 예배 행위만으로도 처형 또는 정치범 수용소 수감 대상이 됩니다. 이런 체제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는 아니나, 그런 체제에서는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7. 그래서 죄는 이성 있는 피조물인 인생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 곧 율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율법은 크게 구분하면 무엇을 행하라는 말씀과 무엇은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작위와 부작위의 죄라고 말합니다.
1) 작위(作爲)의 죄(죄를 저지르는 행위)가 있습니다.
바로 ‘하지 말라고 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한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죄를 의도적, 능동적으로 행할 때 발생하는 죄들입니다. 그 작위(作爲)의 죄는 도둑질, 거짓 증언, 살인, 간음, 탐심 등과 같은 것입니다.
2) 부작위(不作爲)의 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율법사가 어느 계명이 큽니까? 라고 물을 때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또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의 죄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의 심령에 성령께서 이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어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며 순례길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