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13문] "첫 사람의 타락"

 창세기 3장 1 - 13절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고의 환경인 에덴에서 어떻게 범죄하여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으나, 하나님과 맺은 생명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언약을 어긴 죄를 범하여 그 본래의 지위에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소요리문답 13문에서는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13문 : 우리 시조는 창조 받은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

 답 : 우리 시조는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따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였습니다. 

 이 타락은 무죄한 상태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완전히 타락하게 되어 영생을 상실하게 되었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전적부패와 전적타락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서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이미 아담의 타락 안에서 “부패”한 자들인데, 믿는 성도들도 이 “부패”에 떨어질까봐 사도 바울은 두려워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부패”하는 말은 헬라어로 ‘프데이로’인데, 그 뜻은 ‘완전히 파괴되어 못쓰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타락은 두 가지 방면에서 다 일어났습니다. 바로 내적인 지위와 외적인 지위 모두에서 타락이 일어났는데, 내적인 지위는 존재론적인 지위라고도 하고, 외적인 지위는 환경적인 지위라고도 말합니다. 

 2. 내적인 지위 곧 존재론적인 지위에서 타락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신 지(知), 정(情), 의(意)의 타락을 말씀합니다. 

 이 내적인 지위 곧 존재론적인 타락에 대해서는 [도르트 신조 셋째, 넷째 교리 ;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과 그 회심이 일어나는 방식. 1항. ‘타락의 영향’]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총명은 창조주와 영적인 일들에 대한 참되고 건전한 자식으로, 그의 마음과 뜻은 정직으로, 그의 모든 심정은 순수로 단정해 주셨다. 참으로 전인이 거룩하다. 그러나 사람은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이 뛰어난 은사들을 자신이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신 자신의 총명에는 눈멂과 끔찍한 어둠과 허망함과 어그러진 판단을, 자신의 마음과 뜻에는 악함과 패역함과 완고함을, 자신의 심정에는 더러움을 스스로 가져왔다.”

 도르트 신조에서는 왜 셋째와 넷째를 하나로 묶어서 [셋째, 넷째 교리 ;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과 그 회심이 일어나는 방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속죄에 대한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하나로 묶’어서 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르트 총회에서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이 제출한 셋째 항에는 ‘사람은 자신 안에서 아무런 구원의 은혜, 자유의지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배도와 죄의 상태에 있는 한 스스로는 구원받는 믿음과 같이, 진정 선한 것을 할 생각도 없고 할 의지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이해와 경향 또는 의지, 모든 능력에서 새로워져야 하는데 그래야 참되게 선한 것을 바르게 이해하고, 생각하고, 뜻하고 행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없음이니라.”(요 15:5)고 말씀하신 바대로다.’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의 3항은 성경적이다.

 그런데 다음 항인 넷째 항은 달랐습니다.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은 넷째 항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은혜가 작용하는 방식에서, 사람은 그 은혜를 거부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에 대해 기록된 바대로, 많은 이가 성령께 저항했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을 개혁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데, 그 다음 27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은 이 형상과 모양을 다르게 해석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고, 도덕적인 것을 아는 능력을 가진 것이며 그 이상은 아니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모양은 ‘거룩함, 완전함, 의로움과 관련된 것인데, 이것은 처음부터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며, 그 자신의 노력과 순종의 대가로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형상이 의와 거룩함과 진리이며 사람이 타락할 때 의와 거룩과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타락 후에도 사람의 의지는 여전히 온전하여 선을 행할 능력을 상실하였으나,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그 의지로 어느 정도 의와 거룩함과 진리에 이를 수도 있고, 또 자기 의지로 성령께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는 사람이 주일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집에서 TV를 보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모두 후자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성령님의 은혜의 역사가 아니라면 자연인이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은 선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그들의 말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증거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우리의 지.정.의가 모두 타락하였는데, 의지는 정서를 따르는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지성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의지가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좋아하는 것 곧 타락한 정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사랑하기에 의지는 결국 타락한 정서 곧 본성이 원하는 죄악을 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은 전인 곧 의와 거룩함과 진리에 있어서 완전히 타락한 존재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형상은 파괴되었습니다.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제 역할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르트 신조에서는 아르메니우스주의자들의 견해가 잘못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셋째와 넷째 교리를 하나로 묶어서 [셋째, 넷째 교리 ;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과 그 회심이 일어나는 방식.] 1항에서 인간은 전인이 완전히 타락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2항에서는 ‘부패의 전파’, 3항에서 ‘사람의 전적 무능력’, 4항에서 ‘본성의 빛의 무능함’, 5항에서 ‘율법의 무능함’에 대하여 가르친 후 제 6항에서 ‘복음의 필요’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도르트 신조에서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 지위에서 완전히 타락하게 되었고, 전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자들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타락으로 인해서 내적인 지위 곧 존재론적으로 타락한 모습입니다.  

 3. 타락의 과정은 사람이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하나님께 반역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도르트 신조 [셋째 넷째 교리 ; 인간의 부패와 하나님께로 회심과 그 회심이 일어나는 방식. 1항. ‘타락의 영향’]에서 “... 그러나 사람은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의지의 자유를 오용함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이 뛰어난 은사들을 자신이 상실하게 만들었다. ...”라고 가르친 대로 마귀의 유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생명언약을 맺으시면서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라고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뱀 곧 마귀의 유혹을 받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생명언약을 파기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셨는데, 사탄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그 거짓말에 속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질 줄 알고 먹었으나,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죽음이 찾아오는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길을 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늘날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모든 이단의 교훈들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사탄 마귀가 출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조와 신앙고백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리서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적인 요점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신앙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른 교리를 알지 못하면 지금도 속이려 하는 사탄에게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4. 사람의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첫 언약 곧 생명언약을 파기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됨을 거부하였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악과에 대한 진실성의 여부를 자신의 이성과 경험으로 판단하는 일이었는데, 이 반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유혹자 곧 사탄의 말이 거짓임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사탄 마귀는 교회 안에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저작일 뿐이라고 말하며, 또 어떤 이는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믿는 것보다 부활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복음에 물을 타서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좀 더 고상하고 나은 사람이 되라는 종교철학으로 바꾸어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자 하고 있습니다.

 교회 바깥에서는 진화론과 유물론과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무신론과 하나님께서 계신지 아니 계신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통하여 학문의 세계에서도 구지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세상의 인문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고, 자신을 죄에서 구속하시는 구속주로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님을 인생의 스승이요, 좋은 모범을 보이신 위대한 사상가로 따르게 하거나, 또 그렇게 말하는 자들에게 속은 자들은 육체의 죽음 후에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나,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자신들이 사탄 마귀에서 속은 자요, 죄의 문제의 해결자로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멸시한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뿐입니다. 

 5. 사람의 타락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따라서 타락하였습니다. 

 소요리문답 13문의 답에서 “우리 시조는 자신의 의지의 자유를 따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창조 받은 지위에서 타락하였습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와가 사탄의 미혹을 받아 범죄함으로 타락하였지만, 그 책임이 사탄에게만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또한 아담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받아먹음으로 타락하였지만, 그 책임이 하와에게만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죄악은 아담과 하와의 자유의지가 발동하여 범한 죄악이었습니다. 

 그들은 미혹을 받을 때 자유의지를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에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타락의 책임을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과 자신을 미혹한 사탄에게 책임이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만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 의지를 가지고 범죄하여 타락했기에 범죄에 대한 책임을 자신들이 져야했습니다.

 6. 그래서 범죄하고 타락한 책임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있다는 말입니다. 

 타락 전 인간은 죄로 오염되지 않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있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 놓으셨느냐고 말하지만, 그러나 자유의지를 주시 않으셨다면 인간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이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 될 뿐입니다. 사람을 인격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창조하신 사람을 인격적으로 통치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이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인 것입니다. 그런데 무죄 상태로 원의를 가진 자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 생명 언약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범죄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 의지를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로 범죄하였기에 사람의 타락은 사람의 책임이며,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7. 그래서 사람은 창조 받은 지위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범죄함으로 사람은 타락하게 되었는데, 타락이라는 말이 ‘떨어지다’라는 말입니다. 본래 고귀하고 거룩하며 죄 없이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창조 받은 지위에서 떨어져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죄 없는 상태와 에덴동산의 모든 복락에서 떨어져 에덴에서 쫓겨났고, 몸도 죽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범죄로 인한 타락으로 인해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의 의지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의지가 되었습니다. 타락 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자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다는 모든 것이 다 죄 뿐이라는 말입니다. 죄의 노예된 의지를 벗어날 수 없는 죄가 끄는 대로 끌려가는 죄의 노예가 된 의지일 뿐입니다. 

 사람은 뱀 곧 사탄의 유혹을 받아 자유의지로 범죄하여 타락하게 됨으로 하나님과 맺은 생명언약을 파기하게 되어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범죄하던 그 날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었고, 육체에도 비참이 찾아오게 되어 아담은 결국 930년 후에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에 굴복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범죄 후 사람에게 찾아온 외적인 지위 곧 환경적인 지위에서의 타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은 사람 모두에게 고통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 원인이 바로 이 타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지금도 사람들로 하여금 이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이 타락이 사실임을 알아야 사람의 모든 비참이 바로 죄 때문이요, 이 죄에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또 죄인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이 타락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범죄하게 한 사탄 마귀가 오늘날은 창세기 3장을 신화로, 전설로 만들어서 인간의 죄의 실상을 두려운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생명길인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로 구원을 받지 못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8. 창세기 3장에서 말씀하는 인간의 타락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불교는 창조가 없으니 구원도 없습니다. 무로 돌아가는 열반을 말할 뿐입니다. 유교는 창조를 말할 수 없어서 자연의 음양 작용으로 사람이 생겨난 것으로 보기에 타락을 말하지 못합니다. 힌두교에서는 최고의 신은 창조의 신으로 여기는 브라흐마인데, 이 브라흐마가 때로는 유지와 보호의 신인 비슈누로 또는 파괴와 재생의 신인 시바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브라흐마는 연못 속의 연꽃에서 태어나 우주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브라흐마가 연못 속의 연꽃에서 나왔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런 견해로는 만물의 기원과 인간의 타락과 구원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기에 윤회설을 말하게 될 뿐입니다. 

 근대와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인간의 타락을 부정합니다. 어떤 이는 기독교 신앙을 감정으로 치부하면서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하였습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아담의 타락이 성경의 의견일 뿐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 자들이니, 성경의 기록된 말씀도 의견일 뿐이라고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성을 부인하는 악한 자의 견해입니다. 또 어떤 이는 아담의 타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 민담으로 폄하하였습니다.   

 오직 성경에서만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으로 창조된 세계에 죄가 들어와 타락과 파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부정한다고 해도 인간의 범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대로 육체가 죽음에 굴복하고 또한 생명의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는 영적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증거대로 모든 아담의 후손은 태어나는 순간 육체의 죽음을 향해서 달려갈 뿐이고, 또한 영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으로 죽은 자로 출생할 뿐입니다. 

  

 9. 사람이 범죄하여 타락한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을 말씀해 주셨고, 말씀하신 대로 메시야를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속을 이루어주시고 계십니다.   

 1) 죄인의 구주로 이 땅에 보내실 것을 말씀해 주신 구약의 메시야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아담에게는 여자의 후손을 통한 원시 복음의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으신 참 사람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습니다. 

 3) 아브라함에게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아브라함의 씨로 오실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4) 모세에게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실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모세가 죄악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주었고, 또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 땅 입구까지 인도하였다면,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신 그리스도는 모세를 능가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히브리서 3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섬겼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아들로서 섬겼다고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수준이 아니라, 모세가 보여준 예표적인 사역을 완성하시는 참된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죄악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당신의 피로 구원하시어 천국 백성을 삼아주신 진정한 출애굽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율법을 받았다면 예수님은 모든 계시의 완성자이시며, 뿐만 아니라 모세가 천국의 상징인 가나안 땅 입구까지 인도했다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믿는 우리 모두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여 영원토록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5) 다윗에게는 네 왕위가 네 후손을 통하여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영원무궁합니다. 

 6) 이사야 선지자에게는 메시야께서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셔서 그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신 대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 하나님의 아들께서 참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성육신 하시고, 내가 지켜야하는 모든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시고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 값을 다 지불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 주사,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자들 곧 저와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삼위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