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강해 제 12문] "창조하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창세기 2장 15 - 25절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1.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절정인 인생에 대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구원의 경륜을 세우셨습니다. 그 구원의 경륜은 작정과 섭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작정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미리 계획하신 일이데, 만물을 지으실 것과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타락할 인생의 구속을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작정을 이루시는 방편이 바로 창조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창조하신 만물과 천사들과 인생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인생에 대해서 가장 거룩하고 지혜롭고 선하고 자비롭고 능력 있게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사람에게 품으신 뜻은 거룩하고 지혜롭고 선하고 자비로우며 능력으로 보존하시고 통치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향한 뜻이 무엇인지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2문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12문 : 사람이 창조받은 지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여 섭리하시는 중 어떤 특별한 일을 행하셨습니까?
답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모든 창조의 절정이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고의 절정은 태양과 달과 별들이 아닙니다. 바다의 가장 큰 동물인 고래도 아니고, 지상의 코끼리나 용맹한 사자나 호랑이가 창조의 절정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며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으며,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어 육체만 아니라, 영혼까지 창조하여 주신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이라는 말입니다.
2. “사람이 창조받은 지위에 있을 때”는 타락 이전의 상태를 말씀합니다.
타락 이전의 사람의 거주지는 에덴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 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에덴’이라는 히브리어의 뜻은 ‘기쁨, 즐겁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에덴’이라는 말의 어근이 아랍어에서는 ‘부드러움, 사치의 쉬운 삶’이라는 뜻이 되었고, 팔미르어에서는 ‘유리한 운명’이라는 뜻이고, 고대 아람어에서는 ‘번성하고 풍성하게 하고, 풍요를 베푸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구약신학사전(TDOT)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단어의 뜻을 통해서 에덴이 어떤 곳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듯 에덴은 기쁨의 장소요, 즐거움의 장소입니다. 그곳의 삶은 부드럽고 사치하며 살 수 있는 곳이었고, 모든 것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데 유리한 곳이 에덴이었습니다.
① 그곳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복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의 최고의 복지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범죄한 이후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범죄 이전에는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는 자들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쁘게 교제하던 복을 누리던 자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닐고 그 면전에서 교제할 때의 복은 젖먹이 어린아이가 어미 품에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② 또한 에덴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이 보존을 위하여 수고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에덴을 낙원이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참된 생명의 교통 뿐 아니라, 수고하지 않아도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사람의 육신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 주셨습니다.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은 사람들의 죄로 인한 결과물들입니다. 오늘도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공급하시는 모든 음식으로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굶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3. 그러나 에덴은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씀하는 대로 무엇인가를 행하는 곳이었는데, 여기 ‘경작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그 뜻은 ‘섬기다, 경작하다’입니다. 그래서 이 ‘아바드’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다’라는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또 ‘지키다’는 단어는 ‘사마르’인데, 구약에서 이 두 단어 곧 ‘아바드’와 ‘사마르’가 함께 쓰인 것은 15회 정도인데, 10번은 하나님을 섬기고(아바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사마르)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5번은 성막에서 봉사(아바드)하며 지키는(사마르) 제사장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15절의 아람어 역본에서는 “율법 안에서 수고하고 그것의 계명들을 지키도록” 동산에 거했다고 제사장적인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낙원 곧 기쁨의 장소에서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으로서 에덴에 죄와 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며, 또한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창 1:28)리라고 ‘문화 대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범죄 이전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감당하는 것은 땀을 흘리고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모든 일을 감당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노동 환경이 바뀌고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노동 환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창조의 절정인 사람에게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할 신성한 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할 때 참된 만족과 삶의 의미가 충만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에덴에서 사람에게 결혼제도를 통하여 가정을 주셨습니다.
결혼제도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실 때 아담이 하와를 보고서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첫 가정이 탄생할 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 2:24)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목표를 향하여 더 힘있게 나아갈수 있게 하는 것이 결혼제도라는 말입니다. 또한 가정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해야 “땅에 충만”할 수 있고, 또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기에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결혼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가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함께 기초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다른 가정의 사람들과도 어울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도록 하신 곳이 에덴의 복된 삶이었다는 말입니다.
5. 에덴에서 하나님은 제 7일 안식일을 제정하여 주심으로 하나님과 온전히 교통하며 예배하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타락 전에도 안식일을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 왕’의 사명을 감당할 때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혜를 주셨지만, 제 7일 안식일을 허락하여 주심으로 온전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통 속에서 나머지 6일을 대리 왕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신 것입니다.
범죄 이후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주일 안식일을 얼마나 더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까? 요즘 어느 회중교회에서는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서 한 달에 두 번만 주일에 모이기로 결정했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일 성수냐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서 봉사하는 것도 예배의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규정하여 주신 원리입니다. 주일 안식일에 바르게 예배할 때 한 주간의 모든 염려와 영적인 낙담을 이기고 은혜로 충만하여 또 한 주간을 주의 뜻대로 살아갈 힘과 은혜를 공급받게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뵈올 때까지 주일 안식일에 예배하고 예배 가운데 주시는 은혜를 항상 누려야 하겠습니다.
민수기 6장 24절로 26절에서는 구약시대 성전에 제사하러 나온 자들에게 제사장들은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런 은혜를 오늘 제 7일 안식일에 해당하는 주일 안식일에 주 앞에 나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6. 이처럼 하나님께서 범죄 이전에 에덴이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을 뿐 아니라, 결혼제도를 통하여 가정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를 주시고, 안식을 주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그런 복된 상태에 있을 때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생명의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시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1) 이 생명 언약은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는 먹게 하셨으나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원하는 모든 일을 행할 수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었지만, 오직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금지되었는데,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물론 이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 뿐 아니라, 영적인 죽음 곧 하나님과의 단절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금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창조주이시니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존재인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을 계속 누릴 수 있었기에 생명언약이라고 부르는데, 그 순종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었기에 행위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생명언약은 단순히 죽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삶이요, 행복이요, 영광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복된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으로서 창조의 목적에 걸맞는 이런 순종의 삶을 살 때 사람은 참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뜻대로 순종할 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대신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며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맺으실 때 아담을 인류의 대표와 머리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왜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도 없이 아담을 인류의 대표로 삼으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신 것이냐고 말한다면, 우리는 로마서 9장 20절로 21절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나님께 반역한 아담의 후손은 공평과 불공평을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주권이 있고, 그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실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은 행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날마다 지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을 계속해서 누릴 것이란 자비로운 언약이었습니다. 아담에게 이 언약은 무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무거운 것이었다면 처음 지으심을 받았을 때부터 이것은 지키기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죄 없이 지으심을 받은 아담에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주셨고, 그 길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셨기에 생명언약 또는 행위언약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사람은 생명언약을 지키지 못함으로 에덴의 복락을 상실하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반역에 대하여 해결책을 마련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죄와 사망을 가져왔는데,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택한 백성 곧 새 인류의 대표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체결이시면서(눅 22:20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동시에 새 언약의 종결자이십니다(요19: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첫 언약의 결과는 죽음이었고, 새 언약의 결과는 천국 백성을 얻음이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보다 더 좋은 곳입니다. 천국에서는 범죄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에덴이 아니라, 우리가 완전히 성화를 이루어 들어가는 곳으로서 악이 조금도 없고, 타락할 마음도 가능성도 조금도 없은 곳에서 주와 영원토록 영생을 누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아무런 값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새 언약의 머리되신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으심이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죽음인 것을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미하고, 새 언약의 머리가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 예수님을 날마다 찬양하고 주 안에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