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60문, 대요리문답 117-118문] "제4계명(2)"
출애굽기 20 : 8 - 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60문과 대요리 제117문에서는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0문 :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하는 것을 그날 종일을 거룩하게 쉼으로 할 것이니 다른 날에 합당한 여러 가지 세상 일과 오락까지 그치고 그 시간을 공사간에 예배에 바쳐 사용할 것이요, 그 외에는 사세 부득이한 일로 자선 사업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7문 :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 :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죄악 된 일들뿐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들과 오락을 그만두고 온종일 거룩하게 휴식을 취하되, 부득이한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하고 절제 있게 정리하고 또한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들을 더 자유롭고 적절하게 이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안식일 혹은 주일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죄악 된 일들뿐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들과 오락을 그만두고 온종일 거룩하게 휴식을 취하되...”
‘안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샤바트’는 하던 일을 ‘그치다’ 또는 ‘중단하다’를 의미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죄악 된 일들과 오락을 중단해야 합니다(사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더불어 다른 날에는 합당한 일도 중단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 출애굽기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만나로 출애굽 백성들을 곡식도 야채도 자랄 수 없는 빈 들판인 광야에서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매일 들로 나가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출 16:25-28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그 날 만큼은 자신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쉬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게 하신 것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결코 굶주려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표징이었습니다. 대신 안식일 전날 두배로 거두게 하시고 다른 날 거둔 것을 다음날 아침까지 두면 썩거나 벌레가 생겼는데, 안식일 아침에는 전날 거둔 것이 썪지도 벌레가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필요한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광야 백성과 후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되 단순한 육체적 쉼을 넘어서서 평일에 나를 위하여 행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그 행사를 생각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그 날을 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세상일과 오락을 멈춘 대신에 하나님을 향한 공적인 예배, 가족 및 성도와의 영적 교제, 그리고 주님이 본을 보이신 ‘선한 일과 구제’가 채워져야 비로소 참된 거룩한 안식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2) “부득이한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① 먼저 안식일에도 “부득이한 일(Works of Necessity, 필수적인 일, 불가피한 일)”은 행할 수 있었습니다.
부득이한 일에서 부득이(不得已)는 아니 불(不-부), 얻을 득(得), 그칠 이(已)로서 ‘그만두는 것을 얻지 못하다’ 즉 ‘하고 싶지 않거나 원칙에 벗어나더라도 그만둘 수 없다’는 뜻이요, 필수적(必須的)이라는 말은 반드시 있어야 하거나 치러야 한다는 뜻이요, 불가피(不可避)한이라는 말은 부득이(不得已)한과 비슷한 말로서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에는 어떤 일을 행하는 것들이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 부득이라고 필수적인 일입니까? 마태복음12장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는데도 예수님이 그들을 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이삭을 잘라서 껍질을 손으로 비벼서 먹는 행동이 곡식을 추수하고 탈곡하는 노동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행동을 막으시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득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부득이 한 일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레위기 12장 3절에서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율법은 사내아이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반드시 할례를 받도록 규정했습니다. 만약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과 겹칠 경우, 안식일 노동 금지보다 언약의 표징을 행하는 법이 우선하기에 안식일에도 피를 흘리는 외과적 수술(노동)인 할례를 행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두고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아니하려고 안식일에도 사람이 할례를 행하기도하고 받기도 한다’고 부득이함을 인정하셨습니다(요 7:22-23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가축을 외양간에서 풀어 물을 먹이는 일도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엄격한 바리새인들조차 안식일에 자기 집의 소나 나귀를 굶겨 죽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앓던 여인을 고치시며 (눅 13: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매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에게 기초적으로 필요한 수분의 갈증과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일상적인 돌봄은 안식일이라도 멈출 수 없는 불가피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한국 교회의 경우 우리 교회처럼 주일 오전 예배를 한번만 드리는 경우 대개는 시간이 11시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것을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인데, 미국 선교사들도 그들의 신앙의 뿌리인 영국 교회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 주일 오전 11시 예배였습니다. 영국의 경우 목축이 주를 이루던 농촌에서 젖소의 젖을 짜거나 가축에게 여물을 주는 일은 생명을 돌보는 ‘부득이한 일(필요한 일)’로 인정되었습니다. 젖소는 아침 5시에서 6시경 젖을 짜지 않으면 유선염에 걸리거나 고통을 겪기 때문에 주일이라도 새벽 노동을 건너뛸 수 없었습니다. 소와 양을 키우는 사람들은 새벽 5시경 일어나 가축을 돌보고 외양간을 정리한 뒤, 몸을 씻고 ‘주일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마차나 걸어서 교회당까지 1~2시간씩 걸려 이동해야 했기에,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교회에 도착하면 대체로 오전 10시에서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정돈하고 11시에 예배로 모였다고 전해집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뉴잉글랜드로 이주하면서 이 생활 방식은 광활한 북미 대륙의 지리적 환경과 결합하여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18~19세기 미국 전역의 농촌에서도 젖소의 젖을 짜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고 말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두 시간 씩 가야 했습니다. 눈이나 비가 오면 이동 시간은 더 길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성도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무사히 교회에 모일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인 시각이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였습니다.
오늘날은 직장인들인 공무원이 주일에 당직을 서고, 또 회사에서 꼭 필요한 일로서 당직을 서야하는 일들이 그런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인 일이지 매주일 마다 반드시 출근하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합당하지가 않은 일입니다. 수입이 줄어든다하여도 성도는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나그네 삶에서 영적으로 유익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쉼을 누리는 길입니다.
② “자비를 베푸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도 안식일에 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라고 하시면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마 12:7-10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 “11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1-12)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질병에 사로잡혀 신음하던 자들을 해방하여 하나님께서 창조 때 말씀하신 온전한 안식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비를 베푸는 일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더불어, 병든 이웃을 방문하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일들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날이 주의 날 곧 안식일입니다.
③ “공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락과 노동을 그치는 것만으로 안식일을 제대로 보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을 그치고 중단한 이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사 66: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공적으로는 교회의 모임과 예배에 참여해야 하고, 사적으로는 평소에 소홀히 했던 기도와 성경 읽기에 힘써야 합니다.
안식일에 노동과 세속적 오락을 멈추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해야 할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닙니다. 노동과 세속적 오락을 멈춘 자리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교제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안식일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교회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낮잠을 자라고 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오락이나 다른 일을 행함으로 안식일을 규례를 범하지 말라는 극단적인 방어책일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여야 하는 본래의 목적은 빠져버린 모습입니다.
청교도 목회자이지 신학자인 조지 스윈녹은 “안식일(주일)은 영혼의 장날(The market-day of the soul)로서, 영혼이 다가올 한 주간 전체를 살아갈 영적 양식을 비축하는 날입니다. 장날이 마을에 중요한 날이듯, 안식일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러한 날입니다. 이 날에 영혼은 하늘의 보화를 두고 하나님과 영적 교역을 하며, 영적 기근의 때를 대비하여 양식을 넉넉히 저장해 두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마을 장날이 일주일에 한번 열려서 주민들이 한 주 동안 먹고 살 식료품과 생필품을 장만하는 활기차고 분주한 날이었는데, 스윈녹은 주일에 하나님의 은혜의 장터(말씀 선포, 성례, 기도, 성도의 교제)로 나아가 한 주간 세상에서 영적으로 메마르지 않고 살아갈 은혜와 양식을 넉넉히 비축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청교도 시대의 성도들은 토요일에 주일에 필요한 식사 준비도 미리 하였고, 주일에 증거 될 말씀과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주일에는 온 가족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함께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들었고, 점심을 나눈 오후에는 교리 공부를 하였고, 저녁에 귀가한 후에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오늘 목사님이 전한 말씀의 대지가 무엇인지,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묻고 낮에 들은 마음을 심비에 새겼습니다.
3)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세상일을 미리 부지런하고 절제 있게 정리하고 또한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들을 더 자유롭고 적절하게 이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4계명은 안식일 하루에만 관계된 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4계명을 말씀하시면서 6일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함께 명하셨습니다. 6일 동안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안식일에 하나님을 섬기는데 집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6일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주일에 밀린 과제를 하게 됩니다. 직장인이 6일 동안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주일에 밀린 업무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제4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6일 동안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는 미리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몸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조는 이유의 상당수는 영적 문제라기보다 전날 밤늦게까지 사람을 만나고 취미 생활에 너무 열심을 내거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미디어에 무절제하게 시간을 쓰고 주일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토요일 저녁부터 불필요한 약속을 줄이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맑은 정신으로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주일 예배 때 설교를 들으며 조는 성도들을 향해 종종 다음과 같이 직언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졸거나 영적으로 메마른 것을 두고 ‘마귀가 시험 한다’거나 ‘목사의 설교가 지루하다’며 영적인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귀의 장난이 아니라, 토요일 밤늦게까지 세상일을 벌여놓고 육체를 혹사시킨 여러분의 무절제 때문입니다. 주일 아침의 은혜는 토요일 밤을 어떻게 잠자리에 드느냐 에서 이미 판가름 납니다.”
주일에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한 주간 성실히 일하고 특별히 주일 전날 주일에 예배하는 일을 위하여 잘 준비하는 것이 주일을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제함으로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가장 복된 날이 되는 것입니다.
2.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제118문에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특별히 가정의 가장들을 비롯한 윗사람들에게 주어졌는가에 대해서 묻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18문 :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특별히 가정의 가장들을 비롯한 윗사람들에게 주어집니까?
답 :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특별히 가정의 가장들을 비롯한 윗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통솔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 안식일을 지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 자신의 일로써 아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끔 종종 방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특별히 가정의 가장들을 비롯한 윗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제4계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 모두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장들과 윗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출 20: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나님은 특별히 가장들과 윗사람들에게 이 계명을 명하셨습니다.
2) 이렇게 명하신 것은 “그들 자신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통솔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 안식일을 지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 자신의 일로써 아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끔 종종 방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들과 윗사람들에게는 자식과 종과 가축과 손님이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부과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도하고 통솔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도 제4계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일한 자들을 엄히 경계했던 것입니다(느 13: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지금은 율법의 시대가 아니라, 은혜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구원받은 성도는 의식법으로서 율법은 지킬 필요가 없으나 은혜 받은 자로서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인 도덕법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율법 이전에 창조 때 주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시내산에서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 창조 때에 인류의 대표인 아담에게 주신 것으로서(창 2:1–3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타락 이전 죄가 없던 상태에서 제정된 질서이므로, 한시적인 구약 제사의식과 달리 영구적인 도덕적 의무에 속합니다. 제4계명은 십계명이라는 도덕법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제4계명은 제1계명에서 제3계명(예배의 대상·방식·태도)과 제5계명에서 10계명(인간에 대한 도덕적 의무)을 연결하는 핵심 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의식법(레위기 제사법, 정결법 등)과 철저히 구별하여 돌판에 친히 새겨 주셨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는 제4계명을 지키는 방식과 관련해서는 의식법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거나, 안식일을 어겼을 때 돌로 쳐 죽이던 규례는 이스라엘 신정 국가에 속한 ‘시민법’이자 성막 제사와 결합한 ‘의식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의식법이 성취됨으로 제4계명의 의식법으로서의 모든 요소가 다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죄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참된 영혼의 안식이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의식적 안식일은 더 이상 신약 성도들을 얽매지 못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7항에서 “일반적으로 정당한 부분의 시간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성별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임같이 하나님은 그의 말씀에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를 지우는 적극적, 도덕적, 영구적인 명령에 의하여 칠일에 하루를 안식일로 특별히 정하시어 그들에게 거룩히 지키게 하셨다. 이 안식일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일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후부터는 일주일간의 첫날로 바뀌어 성경에서 주의 날이라고 칭하는데 그리스도교 안식일로 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