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베드로후서 강론(6) "일깨워 생각하게 해야 할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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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1일 주일 낮 예배

 설교자 : 김 태선 목사

  

  베드로후서 1장 12절로 15절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로마의 네로 황제의 핍박으로 인한 고난과,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의 미혹 앞에 선 유혹의 때를 살아가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기록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의 전체 요절의 말씀과 주제는 마지막 구절은 3장 18절인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을 드린 바 있는데,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나라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3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는 대로 성도 개개인이 사도가 전해준 진리로 늘 자기 자신을 일깨우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베드로 사도는 12절에서 그들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13절에서는 자신이 이 장막에 있을 동안 곧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나나기 전, 자신의 목양 아래 있는 성도들을 일깨워 그들로 이미 들은 진리의 말씀이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는 같은 내용을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는 이유가 자신이 장막에 있는 동안 곧 육체를 입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성도들로 하여금 이미 들은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게 함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장막을 벗어날 날이 임박했다는 것을 지시해 주셨다고 말하면서 15절에서는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런 것 곧 베드로 사도가 교훈하고 있는 진리를 생각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살펴 볼 때에 성령님께서 베드로 사도가 장막을 떠나기 전에 부탁한 이 말씀을 잘 깨닫고,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의 말씀, 사도가 가르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일깨워 그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날마다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 먼저 12절에서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에게 생각나게 하려는 것은 ‘이미 성도들이 알고 있는 진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 여기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다고 하시는 이 진리는 무엇입니까?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대속의 구원의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성령으로 감동된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복음의 내용을 기록하게 하신 복음서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서신서를 기록하게 하심으로 계시는 완결되었고, 완결된 계시는 영원히 변치 않는 성경으로 남게 되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도 그 복음 진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진리에 서 있다”는 말씀에서 “서 있다”는 말은 헬라어로 ‘에스테리조’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베드로후서 3장 17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하실 때 “굳센”이라는 단어가 같은 ‘에스테리조’입니다. 

 그래서 ‘서 있다. 굳세다’라는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들을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세우고, 특히 종말의 때에 닥치는 물리적, 도덕적, 교리적 재난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권고할 때 쓰인 단어로서 사도가 전한 복음 그들이 이미 서 있는 복음 진리에 견고히 서 있을 때 고난과 박해라는 물리적 재난이나, 이단들의 미혹이라는 교리적 재난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껏 듣고 배운 것 외에 뭔가 새롭고 강력한 교훈은 없는가를 찾을 필요가 전혀 없고, 다른 것을 찾아서도 안 되며 오직 이미 듣고 배운 진리 곧 십자가의 복음을 견고히 붙들고 그 복음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시고 또 성령으로 우리에게 비추어 주신 복음의 빛, 그 영광이 빛으로 충분합니다. 그 빛 안에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이라면 이미 복음의 진리를 알고 있고 또 성도들이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베드로 사도가 12절 하반절에서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사도는 성도들이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는 것은 사람은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망각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생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도리어 잘 잊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은혜는 흐르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남에게 받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인데, 물에 글씨를 새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자신이 받은 은혜는 빠르게 잊어버리고, 남에게 받은 서운함과 원한은 돌에 새긴 글씨가 쉽게 지워지지 않듯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도록 원한을 품고 앙갚음 하려는 악한 본성을 꼬집는 말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망가졌습니다.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마땅히 항상 기억해야 할 진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은혜와 진리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은혜와 진리에 비추어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2) 그래서 일반은총의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매일 점검을 실시합니다. 

  

 산업현장에 가면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는 아침마다 몸을 푸는 체조를 하고 사고 예방 구호를 제창합니다. 어제도 했는데, 오늘 또 하고, 내일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고 예방을 위해서입니다. 같은 내용을 매일 반복해야 그것이 생각과 몸의 습관에 완전히 새겨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하고 군인으로 자신의 임무와 사명을 되새기는 시간을 매일 갖고 힘든 훈련을 매일 같이 반복하는 것은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허둥대지 않고,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산업 현장이나 군대에서 사고 예방과 자신의 임무 숙달을 위해서 매일 점검하고, 또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사도가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이 복음 진리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 말씀처럼 성도는 그 누구라도 복음의 진리의 말씀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가 이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이 땅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거듭나기 전에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을 잃어버려 영적으로 죽은 자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날 때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입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듭난 새사람의 특징은 총명이 밝아졌고, 정서와 의지가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총명이 어두워서 영적으로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 곧 이 세상만 보였습니다. 이 세상만 보이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만 행하여 마귀의 종노릇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 앞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는 총명이 밝아진 자들입니다. 이 세상과 만물과 인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죄에서 자신을 구원해주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뿐인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이 되었고, 이 땅이 전부가 아니요, 이 세상 너머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곧 우리의 본향이 예비 되어 있음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 바로 총명이 밝아진 사람입니다. 

 또한 거듭난 새 사람은 죄의 낙을 즐거워하던 정서가 바뀌어서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지도 정서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는 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총명이 밝아지고 정서와 의지가 새롭게 된 성도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될 때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교통하심 가운데 총명은 더 새로워지고 정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는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대로 나아가기 때문에 성도는 이미 서 있는 진리의 말씀을 항상 생각나게 하는 것이 꼭 매일 같이 필요한 일입니다. 

  

 4. 또한 오늘 본문 13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이 장막에 있을 동안 곧 주님이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곧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너희가 이미 받은 복음 진리와 그에 합당한 삶을 다시금 일깨우는 것이 옳은 줄로 안다고 반복하여 말씀 하였습니다.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 이 말은 베드로 사도가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성도들로 하여금 이미 받은 복음 진리를 일깨우는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모든 설교자들의 책무도 이미 성도들이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는 자들을 다시 “일깨워 (값없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복음의 영광으로 충만케 하고 그들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증거 되는 메시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한 정보 전달과 논평도 아니고, 잘 알지 못하는 정치나 이념이나 철학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어야 하며, 또한 사회의 불의와 악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음을 전하는 것이어도 안 되고, 오직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만을 항상 가르치고 증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 진리의 말씀이 성도를 바꿀 때 성도 자신과 성도의 가정과 직장과 성도가 속한 모든 곳에서 거룩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신약에서 사도 베드로만 성도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도록 편지를 쓴다고 한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항상 가르쳤고, 요한 사도도 그리스도만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1절로 2절에서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도 어디에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만 증거한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1장 1절 이하에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라고 말씀하면서 오직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신앙생활은 그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서 9절로 10절에서는 “9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라고 오직 “그리스도의 교훈” 곧 복음과 그 복음에 합당한 삶만을 강조하였습니다. 

 

 복음의 토대위에 서 있어야 주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항상 복음만 전하고 복음만 충만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지역의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 모인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증거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잘 살 수 있다는 성공주의와 기복주의 메시지를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면, 주님의 참된 교회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5.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주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 대표적인 말씀이 신명기 6장 4절로 9절 말씀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여기서 모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마음에 새기고, 새긴 그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너와 네 자녀로 하여금 여호와를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방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여 골무 형태의 가죽 상자에 넣어 가죽 끈으로 연결하며 이마에 둘러 표를 삼았습니다. 머리에 차는 그 경문(성경구절)을 ‘테필린 셸 로쉬’라고 불렀습니다. 

 또 손에도 경문(성경구절)을 만들어 팔뚝과 손에 가죽 끈으로 감았는데 이것은 ‘테필린 셸 야드’라고 불렀습니다. 이마에 말씀이 기록된 경문을 가죽 끈으로 두르고 다니는 것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기 위함이며, 손과 옷 술에 경문을 차는 것은 모든 행동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문설주에 말씀을 기록하여 붙이는 것을 ‘메주자’라고 불렀는데, 대문과 각 방의 오른쪽 문설주 어른의 눈높이에 비스듬히 기울인 각도로 못을 박아 부착하였습니다. 집이나 방에 드나들 때마다 말씀을 기록한 이 ‘메주자’를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기억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문 인방과 설주는 출애굽이 있던 밤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말씀을 기록하고 집의 대문과 각방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그 말씀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신앙적으로 볼 때 매우 권장할 만한 복된 행동이었습니다. 

  

 2) 또한 출애굽기 34장 10절로 24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범죄 함으로 언약을 깨뜨린 후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백성과 다시 언약을 맺으시면서 다시는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34장 10절로 17절에서는 내가 다시 너희와 언약을 세운다고 하시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을 다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옆에 있으면 그들의 우상숭배에 참여하게 될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우상을 다 파괴하고 그 땅의 사람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과 또 그들의 딸들로 며느리는 삼음으로 우상숭배에 미혹되지도 말고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질투는 남이 가진 것을 탐을 내는 죄악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이 질투는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창조주와 구속의 주님으로서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나만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실 정당한 권리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그 백성들에게 독점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그들을 내 소유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그 소유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세큘라’인데, 보물과 보화를 말합니다.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왕궁의 보물 창고의 보물과 보화로 그 백성을 여기시니 그 백성은 하나님만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어기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할 때 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

 언약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져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받지 않고 언약 백성답게 사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출애굽기 34장 18절로 24절에서 “18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 그 절기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 19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23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①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는 백성이 되기 위해서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로 무교절 곧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인방과 설주로 바름으로 어떤 재앙도 당하지 않고 애굽에서 나올 수가 있었는데, 그 어린 양의 피는 택한 백성 곧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를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라는 말은 신약이 용어로 바꾸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9절에서는 모든 초태생은 내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장자가 죽지 않았으나, 애굽 사람들은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모든 것이 죽었습니다. 처음 난 장자는 모든 자녀의 대표로서 죽은 것입니다. 유월절에 죽은 어린 양은 이스라엘 백성과 짐승들의 장자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면서 처음 난 장자를 위하여 대속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속전으로 은 다섯 세겔을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 지파에게 주라고 하셨고, 정결한 짐승들을 제물로 드렸고, 나귀와 같이 부정한 짐승을 목을 꺾으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죽은 어린 양은 택한 백성을 위하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되 내가 죽어야 마땅했는데, 나를 대신한 어린 양 곧 그 양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내가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언약 백성은 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② 22절에서는 칠칠절 곧 오순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칠칠절의 다른 말은 맥추절이요, 구약 시대 처음 오순절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과 율례의 말씀을 주셨고, 신약의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였습니다. 성경의 원 저자는 성령임이십니다. 그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 순종하게 하시는 일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받은 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 위해서는 늘 성경을 상고하고, 성령의 조명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③ 22절에서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수장절은 다른 말로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광야 40년간 초막에 거할 때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수장절은 농사를 짓고 추수한 후 곡식을 창고에 모아들이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추수 곧 예수님의 재림으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서 지키게 될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예표 하는 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까지 광야와 같은 이 땅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를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요, 예수님 재림으로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 마지막으로 21절에서는 엿새 동안 일하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주일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주일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늘 기억하며 감사로 예배하고, 장차 다시 오실 주님과 천국에서 누리를 영광을 늘 생각하고 그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만 사랑하고,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언약 백성의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예배와 삶의 모습입니다. 

  

 6. 오늘 본문 14절로 15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가 육체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했다는 가르쳐 주셨다고 말하면서, 내가 힘써 이 서신을 기록하고 너희를 가르치는 것은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내가 전한 이런 것 곧 복음 진리를 생각나게 하려 함이라고 세 번째 반복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복음서에서 이미 말씀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21장 18절로 19절 말씀인데요,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여기 18절 하반절에 기록된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라는 이 말씀이 베드로가 순교하게 될 것이라고 19절에서 설명해 주시고 있는데,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주님께로부터 순교하게 될 것을 이미 말씀으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4절에서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라는 말씀은 더 구체적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가는 곳 마다 핍박이 있을 것을 성령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게 해 주셨고, 사도 바울이 기록한 마지막 성경인 디모데후서 4장 6절로 8절에서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는 바울 사도가 순교하기 전에 주님께서 그의 순교의 때 곧 전제와 같이 피를 흘리고 순교하게 될 것을 가르쳐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경우에는 요한복음 21장과 오늘 본문 외에 그가 순교하게 될 것을 분명하게 기록한 성경 구절은 없으나, 그러나 베드로 사도도 주님께로부터 이 땅을 떠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는 말씀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죽는 날이 가까이 왔음을 깨달았을 때, 그의 마음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목양 아래 있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복음 진리를 다시 일깨워 그 복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충성된 자들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은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먼저 복음 진리로 항상 깨어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성도들을 일깨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그 복음 진리에 깨어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원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이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먼저 항상 복음의 진리로 깨어 있어야 하고, 그 후에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이 복음진리로 일깨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오늘 본문 15절에서는 “내가 떠난 후에라도”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떠난”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엑소돈’인데, 이 단어가 누가복음 9장 30절로 31절에서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말씀할 때 사용된 “별세”도 똑같은 ‘엑소돈’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밖으로’를 뜻하는 ‘엑스’라는 단어와 ‘길, 대로’를 뜻하는 ‘오돈’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길 밖으로, 탈출, 장소를 옮김’이라는 뜻이 있는데, 출애굽기의 영어 이름이 이 단어와 똑같은 ‘엑소도스’입니다. 

 우리말로는 ‘떠난다’는 말과 ‘별세’라는 말은 육체의 죽음을 말하나, 이 ‘엑소돈’이라는 단어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긴 것과 같이 성도는 이 땅에서 죽고, 죽어서 망하고 끝이 아니라, 성도의 육체의 죽음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 본향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 가는 것이란 점을 말씀해 주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로 인한 저주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 영원불멸의 영광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로 장소를 옮겨 들어가는 것이 육체의 죽임이라는 말입니다. 

  

 3) 우리가 옮겨 가게 될 나라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로마서 8장 17절로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는 고난을 당하나 장차 들어갈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로 18절에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장차 들어가게 될 나라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인 것을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7. 이것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육체의 남은 때를 우리 스스로를 일깨워 이미 알고 있는 복음 진리에 견고히 서야하며, 또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일깨우는 일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남편과 아내와 형제와 자매와 자녀와 손주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일깨우는 일을 해야 하며, 친구들을 만날 때, 지인들을 만날 때 직장에서도 우리가 먼저 복음에 깨어 복음의 말씀대로 살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과 삶으로서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1)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당시 성도들을 향하여, 또한 오늘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항상 생각하게 하려”는 복음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베드로후서로만 국한을 시키고 또 베드로후서에 지금까지 가르친 교훈으로 말씀을 드리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복음 진리를 믿는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로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보배로운 믿음 위에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더하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고, 그 것을 날마다 더하여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음으로 영적 소경이 되어 멀리 바라보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살아감으로, 눈앞에만 보고 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지 않고, 하늘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감으로 옛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로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신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 실족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우리를 위하여 예배된 상급을 바라보고 이 땅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2)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앞서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마와 손목에 매고 살았고, 대문과 방문에 말씀을 붙여 놓고 생활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주께서 베푸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함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드리는 것처럼 아침이 되면 오늘 하루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주시는 힘과 은혜로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저녁이 되어서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신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렇게 살지 못한 연약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새 힘과 은혜를 주시어서 내일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 답게 살아가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함으로 하루를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날마다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