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찬양예배 [소요리문답 63문, 대요리문답 122-125문]"제5계명"

출애굽기 20 : 12 - 17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1. 웨스트민스터대요리 제122문에서는 제5계명부터 제10계명의 요약이 무엇인지를 묻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제122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는 여섯 계명의 요약은 무엇입니까?

답 :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는 여섯 계명의 요약은,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우리도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1)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는 여섯 계명의 요약은,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는 부분과 사람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살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사람에 대한 의무를 살펴볼 순서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의무를 마태복음 22장 39절에서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이웃일까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눅 10:29-37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과 상관이 없는 유대인을 도운 것을 칭찬하시면서 우리의 이웃은 ‘친분이 있거나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이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도 도와야 할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같은 유대인들만이 이웃이라고 생각하던 가치관을 깨뜨리시는 일이었습니다. 

  

 2)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우리도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이 말씀은 흔히 ‘황금률’로 불립니다. 이웃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대로 우리도 이웃에게 행해야 한다는 것이 황금률의 요점입니다. 누구도 입으로만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사랑이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해 무언가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이웃 사랑이란 마음속으로 불쌍히 여기는 것을 넘어서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수고를 감수하고 무언가 실제적인 행동(시간, 물질, 노력의 나눔)을 취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앞서 주님은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는 자들 모두가 이웃인 것을 가르쳐 주셨다면, 또한 주님은 여기서는 어떻게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는데, 참된 이웃 사람은 생각과 말에 그치지 않고, 일상 속에서 타인을 향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2.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제63문과 대요리 제123문에서는 제5계명이 무엇인가를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3문 : 제5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하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23문 : 제5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

  

제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바드’는 일차적으로 ‘무겁다’를 뜻합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이차적인 의미가 ‘존경하다’ 또는 ‘순종하다’입니다. 부모는 무거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라는 권위를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히 인륜이나 도덕적 의무가 아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 때문입니다. 부모의 권위를 무겁게 여기고 인정하는 것은 곧 그 권위를 위임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가 됩니다. 우리가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3. 대요리 제124문에서는 제5계명에서 말하는 부모가 누구인지를 묻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제124문 : 제5계명이 말하는 부모는 누구를 의미합니까?

답 : 제5계명이 말하는 부모는 육신의 부모뿐 아니라 연령과 은사에 있어서 모든 윗사람들과, 특히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1) “제5계명이 말하는 부모는 육신의 부모”입니다. 

  

제5계명에서 말하는 부모는 일차적으로 육신적 부모를 뜻합니다(잠 23:22,25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렇다고 해서 제5계명이 육신의 부모에게만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계명은 모든 도덕법의 요약이기 때문에 적용은 광의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6계명을 적용하시면서, 이웃에게 화를 내는 것도 금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 외에도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신 모든 윗사람을 공경해야 합니다. 

  

2) “연령과 은사에 있어서 모든 윗사람들”도 부모를 대하듯이 대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1절로 2절에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모든 연장자는 제5계명의 대상이요, 그리스도인은 부모를 공경하듯 연장자를 공경해야 합니다. 

 또한 은사에 있어서 윗사람도 부모를 대하듯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의 아버지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여기서 요셉이 바로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은사적인 측면에서 윗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통치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아버지처럼 여긴 것은 이 은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곁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탁월한 은사를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은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들이 자신의 은사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나보다 탁월한 은사를 가진 자들을 배척하고 시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행동입니다. 

  

3) “특히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우리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세 가지 신적 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정과 국가와 교회입니다. 이 세 가지 기관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으로서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우리 위에 있는 권위자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①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6절에서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직접 짝지어 주심으로 가정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자녀들은 가정 내의 권위자인 부모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을 요구합니다.

  

②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교회의 영적 지도자(감독자)들이 사람의 뜻이 아닌 성령에 의해 세워졌으며,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는 거룩한 권위를 부여받았음을 명시합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에 순종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③ 하나님은 국가를 만드셨습니다. 

예레미야 18장 7절에서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라고 말씀하심으로 나라와 지도자를 세우시고 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정자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4. 대요리 제125문에서는 윗사람들을 왜 부모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 묻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25문 : 윗사람들을 왜 부모라고 칭합니까?

답 : 윗사람들을 부모라고 칭하는 것은, 그들이 아랫사람들에 대한 모든 의무를 행할 때, 어떤 종류의 관계에 있든지 부모처럼 그들에게 사랑과 부드러움을 나타내도록 가르치기 위함이며, 또한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에 대한 의무들을 수행할 때, 자기 부모에게 하듯이 더 큰 자발성과 즐거움으로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 “윗사람들을 부모라고 칭하는 것은, 그들이 아랫사람들에 대한 모든 의무를 행할 때, 어떤 종류의 관계에 있든지 부모처럼 그들에게 사랑과 부드러움을 나타내도록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의 질서를 위해 부모에게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녀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권위와 의무를 동시에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자녀를 다스릴 ‘권위’가 있다면, 동시에 자녀를 사랑으로 대할 ‘의무’도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합니다(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신 윗사람들은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자들을 대할 때에,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하듯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로 8절에서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라고 말씀함으로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때 자녀를 기르는 유순한 유모와 같은 태도도 성도들을 대하였다고 말씀하였고, 세 구절 뒤인 11절에서는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말씀함으로 바울은 자신이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아비와 같이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애굽의 바로 왕에게 맞서 싸워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시내산 아래서 백성들이 금 송아지를 만들고 범죄 하였을 때 모세는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언정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목숨을 걸고 간구했습니다(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스스로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무거운 짐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품고 가는 것으로 묘사하며 아비의 심정으로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민 11: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성경이 윗사람들을 부모라고 칭하는 이유는 윗사람들이 가정에서 친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고 양육하듯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가정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또 허락하여 주신 교회와 국가에서 책임 맡은 자들은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자들에게 군림하는 자들이 아니라, 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돌보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여 죄와 악에 물들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모에게 자녀에게 요구해야 할 권리가 있다면, 사랑하고 양육하고 바르게 세워가야 할 의무가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또한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에 대한 의무들을 수행할 때, 자기 부모에게 하듯이 더 큰 자발성과 즐거움으로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랫사람들은 윗사람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처럼, 윗사람들의 권위도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영적인 아버지로 소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고전 4:14-16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래서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대할 때에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자발성과 기쁨을 가지고 대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8절에서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라고 가르침으로 부당한 명령을 하거나 까다롭게 구는 윗사람들에게도 순종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윗사람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다소 부당하게 대우하더라도, 그 직분과 권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기본적인 예의와 순종의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는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질서이기에 공경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부당한 명령에 순종할 때에도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윗사람의 지시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거나 명백한 죄를 짓도록 강요할 때, 아랫사람은 인간에 대한 순종을 멈춰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29절에서 권력자들이 복음 전파를 금지했을 때,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인간의 권위가 하나님의 법을 넘어설 때 그 권위의 요구는 효력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윗사람에게 불순종할 때에도, 성경은 교만이나 무례한 반항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신앙 양심을 지키되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바벨론 왕이 두라 평지에 세워진 금 신상에 나팔과 제금이 울릴 때 절하며 경배하라는 명령을 단호히 거부했지만, 폭동을 일으키거나 왕을 모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불순종의 대가로 주어지는 풀무불이라는 부당한 처벌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윗사람의 권위를 존중하고, 더 높으신 하나님의 권세를 존중하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