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찬양예배 [대요리문답 121문] "제4계명(4)"
출애굽기 20 : 8 - 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 웨스트민스터대요리 제121문에서는 제4계명을 왜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제121문 : 제4계명은 왜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합니까?
답: 제4계명이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기억함에서 오는 큰 혜택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날을 잘 지키도록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날을 지킴으로써 다른 모든 계명들을 더 잘 지키게 되며, 기독교 신앙의 요약을 담고 있는 창조와 구원이라는 두 가지 큰 은혜를 계속 감사히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안식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즉 안식일에 대한 우리 본성의 빛은 부족한 반면에, 안식일은 다른 날에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본래적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식일이 오되 이레 중에 단 한번만 오고 그 사이에 많은 세상적 일들이 일어나서, 너무나 자주 우리 마음이 그날을 준비하거나 거룩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며, 사탄도 그의 수단들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안식일의 영광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기억조차 지워 버려 온갖 불신과 불경건에 빠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1) “제4계명이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기억함에서 오는 큰 혜택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말씀의 히브리어 원문은 ‘기억하라(자코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문장의 가장 첫 단어로 쓰인 ‘자코르’는 ‘기억하다’라는 동사의 절대부정사 형태로, 강한 명령과 지속성을 내포합니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떠올리는 수준이 아니라 “늘 의식하고 마음에 새겨 잊지 않도록 하라”는 능동적이고 확고한 명령을 문장의 맨 앞에 둔 구조입니다.
이는 십계명 10개 조항 중 8개는 ‘~하지 말라(히브리어 - Lo)’로 시작하는 부정 금지 명령입니다. 이에 비하여 긍정 명령은 단 두 개뿐인데, 바로 제4계명의 ‘기억하라(자코르)’와 제5계명의 ‘공경하라(카베드)’입니다. 이 중에서도 ‘기억하라’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계명은 제4계명이 유일합니다. 하나님께서 4계명을 주실 때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첫 번째 태도가 ‘금기를 주시고 그 금기를 깬 자들에게 내리시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한 날의 의미를 ‘마음에 지속적으로 품는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4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은 안식일 당일이 되어 허겁지겁 하던 일을 멈추려하지 말고 엿새 동안 성실히 일하면서도 다가올 일곱째 날을 늘 염두에 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일상 속에서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즉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날을 잘 지키도록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안식일을 잘 지키도록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이 안식일인 것을 기억하고 미리 준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출16: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이 말씀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길양식이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일에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안식일 전 날에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아서 미리 준비해야 안식일에 불을 피우고 요리하느라 안식일에 쉴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준비 없이는 쉼이 없다는 것을 안식일에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하라고 하신 것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미리 준비해야 온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거룩(카도쉬)의 일차적인 의미는 구별입니다. 안식일이 거룩하게 구별된 날인 것을 기억하고, 미리 준비하여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3) “그날을 지킴으로써 다른 모든 계명들을 더 잘 지키게”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둘째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다른 모든 계명들을 더 잘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안식일 계명이 단순히 십계명 중 하나(1/10)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성도가 나머지 모든 계명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게 만드는 ‘영적 동력(엔진)’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4계명을 주신 목적이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를 알게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겔 20: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여기서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는 말씀은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과 도덕성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바르게 지킬 때 은혜를 주시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거룩함을 이루는 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잘 지켜서 안식일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다른 계명들도 더 잘 지킬 수 있게 됩니다.
4) “기독교 신앙의 요약을 담고 있는 창조와 구원이라는 두 가지 큰 은혜를 계속 감사히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셋째로 창조와 구원이라는 두 가지 큰 은혜들을 계속 감사히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억하게 하며, 신약의 안식일(주일)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기억하게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창조와 구원을 계속해서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창조 사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창 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신약 시대로 오면서 안식일의 초점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즉 ‘주의 날(Lord's Day, 주일)’로 안식일이 옮겨지고 완성됩니다(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6일간의 천지 창조가 ‘첫 번째 창조’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죄악에 빠진 인류를 다시 살려내신 ‘새로운 창조(재창조-구원)’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부터 오늘날까지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건져내신 구원의 은혜를 매주 생생하게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일곱째 날에 노동을 멈추고 쉬는 것은, 내 삶과 우주를 지탱하는 것은 나의 성실함이나 능력이 아니라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삶의 방식으로 고백하는 행위인데,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기에, 치열한 일상을 살다 보면 내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고 어떻게 구원받았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따라서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나를 지으심(창조)과 나를 살리심(구원)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은혜를 삶의 중심에 끊임없이 재설정하고 감사를 회복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5)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안식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넷째로 우리가 안식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자주 범했던 계명은 제4계명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제4계명을 ‘특별계시’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과 도둑질은 불신자들도 멀리합니다. 그런 것들은 ‘자연계시’로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4계명은 ‘특별계시’로만 알 수 있어서 신자라 할지라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13장 15절에서 “그 때에 내가 본 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느헤미야가 바사로 돌아갔다온 시간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해이해졌습니다. 이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살인이나 강도질처럼 흉악한 범죄로 느껴지지 않고, 단지 ‘열심히 일하는 것’이나 ‘일상적인 삶’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생계와 이익이라는 현실적인 유혹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순식간에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에스겔 22장 26절에서는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에스겔 시대에는 심지어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들조차 안식일을 잊고 범했음을 지적합니다. 안식일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달력의 하루를 까먹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것(하나님께 속한 것)’과 ‘속된 것(세상의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너졌음을 뜻합니다. 특별계시를 붙잡지 않으면 신자라 할지라도 세상의 기준과 속도에 동화되어 주일을 평일과 다를 바 없이 소비하게 됩니다.
6) “즉 안식일에 대한 우리 본성의 빛은 부족한 반면에, 안식일은 다른 날에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본래적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섯째로 우리의 본성상 안식일을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살인(제6계명), 간음(제7계명), 도둑질(제8계명), 거짓말(제9계명), 탐욕(제10계명)과 같은 것들은 본성의 빛(양심)으로도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는 본성의 빛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야만 가능합니다(느 9:14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그래서 제4계명은 다른 계명에 비해 더 자주, 더 쉽게 범해집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억하라”고 강조하신 이유입니다.
또한 안식일은 다른 날에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본래적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계명들은 시간의 구분이 없습니다. 월요일에 살인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안식일에 살인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그런데 제4계명은 다릅니다. 노동, 장사, 학업, 오락, 스포츠 등은 다른 날에는 합법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에만 불법이 됩니다. 이처럼 제4계명은 평소에는 합법적이었던 것을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하여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4장 21절에서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7) “또한 안식일이 오되 이레 중에 단 한번만 오고 그 사이에 많은 세상적 일들이 일어나서, 너무나 자주 우리 마음이 그날을 준비하거나 거룩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여섯째로 안식일이 일주일 중 단 한 번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안식일이 이틀에 한 번씩 돌아온다면, 누구라도 안식일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은 7일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안식일과 안식일 사이에 6일이라는 간격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과 관심은 반복되는 주기가 길어질수록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엿새라는 시간은 일상의 일들에 푹 빠져 영적인 긴장감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히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안식일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지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안식일을 준비하고 지키는 일에 소홀해집니다. 그래서 아모스 8장 5절에서는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돈을 벌고 먹고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월삭과 안식일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고, 또 어떻게 곡식을 재는 단위인 에바와 저울의 무게를 다는 세겔을 속여서 돈을 벌까에만 관심이 있다고 그들의 악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8) “사탄도 그의 수단들을 동원하여 필사적으로 안식일의 영광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기억조차 지워 버려 온갖 불신과 불경건에 빠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일곱째로, 사탄의 방해 때문입니다. 제4계명이 이토록 자주, 이토록 쉽게 범해지는 것은 사탄의 역사와도 관계되어 있습니다. 만약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키고자 한다면, 제4계명을 공격하면 됩니다. 전쟁에서 적군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식량과 무기가 전달되는 보급로를 끊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주일 안식일은 공적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일주일간 세상을 이길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날이 아니라 안식일에, 공적 예배에 참여하며, 거룩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성도 개개인을 직접 공격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것보다, 이 ‘영적 보급로’인 제4계명을 무너뜨려 스스로 힘을 잃고 영적인 굶주림에 빠지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만약 한 성도가 안식일을 어기기 시작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것이요, 성도의 교제로부터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그 성도의 영적 상태는 심각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타협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공급하시는 은혜가 중단되고 성도들은 성도의 교제라는 보호막으로부터 이탈되어 세상의 가치관이 그 심령에 침투하게 되어 성도의 영적인 상태가 연약해진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17장 21절로 23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을 드나들며 세상의 경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거룩한 쉼을 거부한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다. 안식일을 거부하는 행위는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거부하는 영적인 교만과 불순종이라는 말입니다.
사탄 마귀는 성도로 하여금 제4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만약 제4계명을 지킬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일이나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이것은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 영혼을 병들게 하려는 사탄의 방해로 알고 힘을 다해서 제4계명 곧 주일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함을 다해야 하고 그 날에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한 주간을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