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베드로후서 강론(2) "신기한 능력, 신성한 성품"

베드로후서 1장 3절로 4절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1. 지난 시간에 베드로후서 1장 1절로 2절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배로운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1) 베드로사도가 두 번째 편지를 기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극렬한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그 박해를 잘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여서 베드로 사도는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주후 64년 로마에서 대화재가 발행하였는데, 네로 황제는 민심이 흉흉해지자 희생양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기기 때문에 로마의 신들이 노하여 화재가 난 것이라고 모든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떠넘기고 아무런 힘도 없던 성도들을 무차별적으로 박해하던 시대였는데,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핍박을 당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그 고난을 잘 이기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서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베드로후서의 기록 목적은 교회 내에 침투한 이단들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과 3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전하는 멸망케 할 이단의 가르침이 교회에 침투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심지어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단들까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어야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완성 되는데, 성경의 핵심 교리를 부인하는 이단들이 초대교회 시대에 이미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성도들이 이단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고 바른 믿음에 견고히 설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하여 이 서신을 기록한 것이 두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 후서는 밖으로부터 오는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는 박해와 교회 내적으로는 이단이 침투하여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에서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잘 지키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으로 격려하기 위하여 베드로 사도는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2) 그러면 베드로 사도는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신앙의 박해와 내적으로 파고든 이단의 교훈에 미혹되지 않고 바른 신앙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길은 무엇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영적인 성장이었습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천국을 나의 유업으로 받게 하는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로서 보배로운 믿음에 견고히 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갈 때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박해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의 유혹에 미혹되지 않고, 베드로후서 1장 2절에서 말씀하신대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진 박해와 이단의 유혹을 이기는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핍박과 이단의 유혹 앞에서도 “은혜와 평강”이 넘쳐 남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3)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에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또 바른 신앙을 미혹하는 이단의 교훈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 찾아오는 더 많이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때때로 찾아오는 육체의 건강의 문제입니다. 또한 때때로 사업상으로 가정적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불협화음, 그리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의 병환과 자녀의 사춘기, 진로, 취업, 결혼 등등 여러 가지 문제로 시름하며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우리에게 주신 보배로운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때입니다. 그리스도를 앎으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기는 힘과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 베드로후서 1장 3절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런 보배로운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고, 4절에서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을 1절에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라고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을 말씀하였는데, 오늘 본문 3절에서는 우리가 보배로운 믿음을 갖게 되는 통로와 방편은 우리의 노력과 지혜의 산물이 아니라,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임을 밝혀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자답게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될 때에 5절로 7절에서는 하나님을 닮은 ‘신성한 성품’을 소유하게 될 때에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애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3절에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고, 4절에서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인생의 이런 저런 모든 문제들을 능히 이기고 보배로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고 성장함으로 세상의 모든 시련과 어려움도 이기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오늘 본문 3절에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생명과 경건을 소유한 자들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1) 여기서 말하는 “그의 신기한 능력”이라고 하실 때 “그의”는 바로 앞 구절인 2절에서 말씀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라고 번역하였고, 새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라고 각각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신기한 능력”이라는 표현은 언뜻 보면 마술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이 말씀의 본래적인 뜻은 ‘신적인 능력, 신적인 권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신적인 능력”이라는 ‘디바인 파워(divine power)’라고 번역하였습니다. 4절에 기록된 “신성한 성품”이라는 말씀도 ‘신적인 성품’ 영어로는 ‘디바인 네이쳐(divine nature)’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2) 그러면 구체적으로 “신기한 능력” 곧 ‘신적인 능력과 권능’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자신 곧 저와 여러분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기한 능력” 곧 ‘신적인 능력과 권능’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1장 19절에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된 것은 우리 자신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능력과 권능’을 행사하시어 베드로 사도와 이 편지를 받아 읽던 성도들 모두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고,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능력과 권능’을 행하심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3) 여기서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시어 새로운 생명 곧 영적 새 생명을 주셨다 곧 거듭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① 생명이라는 말은 죄와 그 결과인 죽음과 반대되는 말로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날에 그는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은 참 생명이신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었다는 말입니다. 생명을 주셨다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자 곧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자들을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자로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요, 거듭남이요, 영생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생명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구지 생명을 주셨다고 말씀하는 것은 생명의 가진 자의 특징은 성장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의 성장하는 삶의 모습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그래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② “경건”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εὐσέβεια)’인데, 이 말은 ‘좋은, 바른, 올바른’의 뜻을 가진 ‘유(εὐ)’라는 단어와 ‘경배하다, 숭배하다. 깊이 존경하다’는 뜻의 ‘세보마이(σέβομαι)’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이 “경건”이라는 말의 뜻은 ‘올바르게 경외함’을 말하는데, ‘마땅히 공경해야 할 대상을 합당한 태도와 방식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는 삶을 경건한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말씀하는 영적인 예배 곧 이 세대를 본 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이 바로 경건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신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잘하는 능력을 주신 것도 아니고, 직장인들에게 다른 사람보다 승진을 빨리하는 능력을 주신 것도 아니고, 사업하는 분들에게 매출을 많이 올리는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곧 생명과 경건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③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생명의 반대말은 죽음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받지 못했을 때는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의 말씀과 같이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권세 잡은 자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인 사단 마귀를 따라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 곧 죄와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여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곧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 마땅한 죽은 행실만 행하던 생명이 없던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신 것이 바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경건한 삶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경건한 삶을 미워하고, 경건한 삶의 원리를 따라 살지 않는 자들은 생명을 얻은 자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로 베드로후서 2장에서 말씀하는 경건한 삶이 아닌 호색과 탐심을 따르는 이단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거듭난 성도 곧 생명을 얻은 성도들도 때로 건강한 사람이 감기가 들어 기침도 하고, 열도 나고, 몸살 기운으로 고생하는 것처럼 죄의 유혹을 받기도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으면 죄를 이기고 경건한 삶의 원리를 다시 붙들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 또한 예수님께서 가지신 “신기한 능력” 곧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방식이 “자기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1) “영광”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독사(δόξα)’라는 말인데 그 뜻은 ‘영광, 영예’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의견을 밝히다’라는 ‘도케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형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존재적 영광과 행하신 사역의 영광을 본질을 드러내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이고 영예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사랑과 율법을 완성하시는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2) “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레테(ἀρετή)’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덕, 덕성, 품성의 탁월함’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기쁘게 하다. 환심을 사다’라는 뜻의 ‘아레스코’라는 단에서 온 명사형입니다.

그러니 “덕”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환심을 사는’ 품성의 탁월함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베드로 사도에게는 변화산 위에서 변모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여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 사랑과 은혜의 영광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앞서 “덕”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환심을 사는’ 품성의 탁월함을 뜻하는 단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죄인인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가장 가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 덕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모든 구속의 사건을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사건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일이 “영광과 덕으로서 부르”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이 놀라운 대속의 구원의 영광을 우리에게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그 대속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고 복된 것인지 우리의 심령과 영혼에 찬란하게 비춰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은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인데, 사람이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은혜와 복중에 가장 큰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남보다 돈을 많이 버는 능력이나, 특출한 운동 능력을 주시어서 많은 인기와 연봉을 수백억씩 받고, 경제의 흐름을 예측하는 지혜에 있어서 투자를 할 때마다 최고의 수익률을 거둔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찬사를 듣고, 인생은 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밤하늘에 잠시 빛을 내고 사라지는 유성과 같고, 불꽃놀이의 섬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제 밤에도(2026년 9월 5일) ‘2026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여의도 한강에서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불꽃놀이를 보신 분들이 여기에 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펑하는 폭죽소리와 함께 화려한 형형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을 때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큰 소리로 웃으며 좋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에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뿐이고, 불꽃놀이가 끝나면 깊은 어둠에 빠질 뿐입니다. 불꽃놀이는 잠시 지나가는 섬광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이 땅에서 잠시 빛나고 사라질 세상에 속한 명예와 물질과 권세와 세상 영광이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어서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신 것이 훨씬 더 귀하고 복된 것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4. 저와 여러분 모두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서 우리를 부르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 곧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수록 저와 여러분 모두는 2절에서 말씀하신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 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갈수록 영적인 생명력은 더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며, 그렇게 할수록 세상이 박해와 이단의 유혹 뿐만 아니라,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능히 이기고 기쁨으로 천성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되 항상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라고 부르짖을 때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에 떨어져 있을 때,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신 완전한 순종과 또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대속의 값을 지불하신 충분한 대속으로 구속을 이루셨고, 그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믿을 때 우리의 모든 죄를 값없이 용서하시고, 예수님의 의를 우리 것으로 여겨 주시는 은혜로 베푸신 구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나를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영광만 자랑해야 합니다.

2) 또한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장차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와 더불어 누릴 영광은 이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더 깨달아 가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이 장차 들어가 누리게 될 천국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나 기쁨의 범주를 초월하는 곳으로서 지금의 지성과 감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곳임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1장 3절로 4절에서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여 주신 천국은 눈물을 흘릴 일이 없는 곳입니다. 사망도 없고, 애통도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5. 오늘 본문 4절에서는 우리를 당신의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구원하시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서 또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1) 여기서 말씀하시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는 말씀은 가장 귀한 보배를 지극히 큰 약속으로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보배는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지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는 말씀은 지금 당장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가 받을 것이고, 장차 누릴 가장 귀한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바로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영적으로 성장함에 따라서 점점 더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갈 것이며, 천국에서는 “신성한 성품에 (완전한 모습으로) 참여하는”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2)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면, 먼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이유 항상 부패한 상태에 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의롭고 진리를 추구하며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셨는데, 죄를 범하여 타락함으로 지.정.의 모든 면에서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에서는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의 삶의 방식이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 영생을 거두는 삶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에서는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함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은 세상 풍조와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타락한 존재들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거듭나기 이전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거듭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기한 능력” 곧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를 그런 자리에서 구원하사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신 것을 알고, 이제는 이런 삶을 거부하고, 이런 삶에서 떠나야 합니다.

오늘날도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이것이 선한 일이고, 거룩한 일이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인가?’를 생각하거나 묻지 않고,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이 원하는 바를 따라서 ‘이 일이 내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즐거운 일인가?’에 대해서만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먹을 수 없는 고기를 구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도 되는 고기는 굽이 갈라져 있고, 되새김을 하는 동물인 소와 양과 염소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셨고, 굽은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을 하지 않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을 굽은 갈라져 있으나, 되새김을 하지 않는 돼지고기에는 독이 있어서 사람에게 해롭기 때문이 아니라, 굽이 갈라진 짐승의 고기를 먹으라고 하신 것을 죄악 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되새김질을 하는 짐승의 고기를 먹으라고 하신 것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고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물고기의 경우에도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것을 먹으라고 하셨는데, 비늘이 상징하는 세상의 오염과 악으로부터 항상 자신을 방어해야 하며, 지느러미가 상징하는 것을 세상의 악한 조류에 떠내려가지 말고 지느러미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악한 세상의 조류를 거스르는 삶을 살라는 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서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는 말씀대로 항상 깨어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삶, 오늘 본문 4절에서 말씀하시는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렇게 할 때 4절 하반절에 말씀하는 대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신성한 성품”은 앞서 말씀대로 ‘신적인 성품’ 영어로 ‘디바인 네이쳐(divine nature)’인데,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이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성한 성품” 곧 ‘신적인 성품’에 참여한다는 말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똑같은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부께서 창세전에 낳으신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성자 예수님과 예수님 안에서 양자로 받아들어진 저와 여러분은 근본적인 차이,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이 때에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을 닮은 완전한 거룩을 이룬 영화로운 자들로 만들어 주실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신성한 성품” 곧 ‘신적인 성품’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 안에 심겨진 거룩한 생명의 원리이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본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의롭게 창조하시고 진리를 추구하며 살게 하시고 거룩한 자로 만드신 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게 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로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본성을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5절로 7절에서 말씀하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6. 오늘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지혜와 노력과 결심으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죄에서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유일한 방식인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기한 능력” 곧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서 가지신 ‘신적인 능력과 권능’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인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을 바라보고 믿게 하시는 그 은혜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은혜로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신적인 능력과 권능으로 우리를 세상에서 유명한 자 곧 원하는 만큼의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세상 영광을 잠시 누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통하는 생명의 구원을 주시고, 비록 이 땅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곧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닮은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부르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속한 찬란해 보이는 모든 것들은 밤하늘을 잠시 수놓은 불꽃 놀이의 섬광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영광은 주님 오시는 날 시작되어 영원무궁토록 계속될 영원한 최고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자인 것을 온전히 깨닫고 감사하고 기뻐 하게 하시고, 또한 장차 완전히 성화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닮되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량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여 영원토록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의 삶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잠시 불꽃놀이처럼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세상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들이 아니라, 오직 이 땅에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삶, 곧 하나님을 따라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일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