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구원에 이른 믿음의 표지(66) "어린아이같이 천국을 받드는 자"
<누가복음>
18:1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8: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I
1. 오늘도 본문을 강론하게 하신 주님 성령께서 가르치려는 바를 배우고 확신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의 한 특성을 가르치셨습니다.
눅 18: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 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공생애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말씀 전부 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고 그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달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백성들로만 이루어지는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완성되면, 그 나라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불순종하거나 거역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이렇게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시고 있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가 서 있다고 할 수 없는가?”
그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그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아니 우주 내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님께서 모르시거나 허락하지 않으셨는데도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 밖에 있는 것이 없다. 모든 만물 중에 하나님께 숨긴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함하여 그 지으신 만물, 우주 만상과 물질세계와 모든 동식물, 영적인 존재들, 천사들, 귀신들, 사람들 전체를 다 아시고 통제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 우리가 그분 앞에 우리의 삶의 결산장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의 왕적인 권위와 권능’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서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왕국)’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그리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존재하게 될 세상 나라의 상태와 조건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고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 자체를 가리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왕이 하나님이시며 그 왕의 다스리심을 받는 백성도 그 왕을 기뻐하고 단 마음으로 순종하는 나라’입니다.
지금 ‘세상’은 어떠합니까?
‘세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 조차 부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것을 부러 잊으려고,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이론을 만들어 그것을 진리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지지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마지막 강황의 말씀을 하신 후에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물론 그 기도는 우리를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요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러합니다.
진실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 진리입니다.
세상은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말도 안되게 만들어낸 가설 ‘진화론’을 정설로 받고 있습니다.
“어떤 새의 주둥이(부리)가 그렇게 생긴 것은 그가 쪼아 먹는 먹이 때문이다. 본래 그런 부리가 아니었는데, 그런 먹이를 먹다 보니 그 먹이에 부합하게 그렇게 진화하였다. 오리의 발이 본래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물 속에서 헤엄쳐 놀다 보니 진화하여 발에 물갈퀴가 생기게 되었다.”
참으로 거짓되고 멍청하고 도발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닭과는 달리 오리를 만드시되, 물에서 먹이를 잡고 헤엄치라고 그런 부리와 그런 물갈퀴의 발을 주신 것이다” - 이것이 정론입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면, 왕따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동대 초대 총장이던 김영길 박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미국에 유학하여 재료공학자로서 훌륭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학문 세계에서 정말 왕따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창조론을 외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학문 세계에서는 그로 인하여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도하시어 ‘성경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 정신으로 대학교’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한동대입니다.
하여간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모든 분야의 연구가 ‘창조론’을 배격하고 ‘진화론’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대로의 하나님은 계시지 않기’를 열망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을 ‘세상은 가장 못난 이들’로 여깁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을 진실로 믿게 되었으면,’ 대번에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좋은 한 사람 못쓰게 되었다, 망하게 되었다’고 수군거립니다.
한국의 인문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이어령 박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그를 조롱하였습니다.
“쯧쯧, 이 박사님, 어쩌다 그렇게 되셨어요.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고 받아요?”
어떤 제자가 와서 이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보셨어요?”
“아니 하나님은 못 보았지. 그러나 마귀는 보았다.”
“예? 마귀를 보셨다고요?”
“그래! 네가 마귀다!”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을 여전히 섭리하시며 다스리시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인간의 역사는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지는 영광의 극치’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정말 ‘인간의 역사’는 진행될 이유와 가치가 없습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그러므로 그렇게 부패한 인간 자체의 존속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공의는 ‘진노하여 심판하시어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을 그냥 소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형벌, 불못에 내어던지시는 것’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어 얼마의 사람들은 그런 악과 부패에서 구원하시어 ‘하나님을 진실로 왕으로 섬기고 경외하고 사랑하고 복종하고 찬미하고 영화롭게 하는 백성으로 만드시려는 뜻’을 정하셨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백성’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도 해가 뜨게 하셨습니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나심과 사심과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과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과 다시 오심’이 인류 역사의 축입니다.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행사는 궁극적으로 딱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그리고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우리 주님께서 심판 보좌에 앉으시고 회개하지 않는 모든 이들과 악한 사탄 마귀와 악한 천사들과 귀신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실 것입니다.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마지막 그 날이 영광의 극치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나 불의나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이 완전하게 거룩한 자들,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부로서 죄에서 구원받아 그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하게 본받아 영화롭게 된 자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새롭게 된 땅과 하늘의 거민이 되어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는 거룩한 영광 - 그것은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의 극치’입니다.
3.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적인 생활을 하시다가 때가 되어 ‘공중 앞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내시기 시작하실 때’ 첫 번째 외치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거대 계획’을 위하여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치심 전체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하셨습니다.
4. ‘구원’은 단순하게 우리가 바라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죄로 인하여 처한 모든 곤궁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죄와는 상관없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하게 본 받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거대 프로젝트(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고, 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입니다.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 ‘구원’을 받는 사람은 영원히 복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살다가 세상을 마감하려면’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는 편이 그 사람에게 더 나을 뻔 한 것’입니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천국’을 들어가는 문제는 ‘우리의 존재 전체를 다 걸어야 하는 대 주제’입니다.
인생에게 이 보다 더 시급하고 더 크고 더 무거운 주제는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구원 영생’과 ‘멸망’은 영원한 현실입니다.
이 문제 보다 다른 것을 더 크게 보이게 우리 마음을 미혹하는 것이 ‘마귀와 세상과 우리 죄악된 본성’입니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 구원받는 것’을 침노에 비유하였습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침노’는 자기 구원의 문제를 위하여 ‘전인적으로 총력을 다하여, 자기 존재와 목숨을 걸어야 할 가치’를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왜 태어났는가? 내가 왜 사는가?’
- 그 답은 오직 딱 하나에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궁휼 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아멘(동의)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 나라 밖 어두운 데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II
1.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진실로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의 한 특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눅 18:1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아기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복되신 구주로 믿고 자기 아기들이 그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하려 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의 그런 자세를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회적인 어떤 일들을 해 가가거나, 모임들을 가질 때에는 주로 ‘성인 남자들’ 중심으로 일을 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서 어린아기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일을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의 태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삼아 예수님이 하시려는 일, 곧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중요한 교훈을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눅 18: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믿음의 한 특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눅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3. 그러면 누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 같이 받아들이는 자’입니까?‘
이 질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복음으로 인하여 옥에 갇혀 있는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습니다.
행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에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그 기적의 떡을 먹은 자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 삼으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그렇게 영생을 위하여 해야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III
1. 그러므로 문제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그렇게 믿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런 참 믿음의 한 특성을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 18:16 . . .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까?
성경해석의 가장 중요한 법칙 중 하나는 ‘성경의 어느 대목이든지 거기에만 매여서 해석하지 말고 성경 전체에 비추어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소지를 가지고 있는가?
성경은 절대로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사망과 멸망의 원리 요소’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는 ‘원죄’라고 말합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어린아이들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라서 그 어린아이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도 그 마음에 죄와 부패와 악독의 씨가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까?
누가 그렇게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 믿음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까?
도를 닦고 힘을 다하여 자신을 연마하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닮기 위하여 애를 쓰다 보면,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됩니까?
물론 예수님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우러러 보는 것은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측에서 애를 쓴 결과로 ‘어린아이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까?’
누가 ‘천국을 침노할 결연한 자세’의 믿음을 가지는가?
성경은 줄기차게 계속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3. 그럼 누가 그 믿음을 가지는가?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마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6: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하신 사람만 성경대로의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딛 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물론 다른 사람이 곁에서 보면, ‘그 사람 자신의 열심과 종교성과 도덕성의 결과로 저 믿음 가지게 되었다’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그 사람의 속에서 일어난 일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그를 복음의 말씀으로 부르시어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이 누구신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알게 된 사람’ - 그 사람만 ‘예수님, 성경이 말하는 대로의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오 나의 구주심’을 믿게 됩니다.
그런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기 같이 받아 들이는 사람’입니다.
5.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한다고 합시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죄가 내게 있도다’라고 생각한다 합시다.
그런 생각을 마음으로 하고 있는 자는 ‘거듭난 자인가?’라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회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그가 거듭났다고 할 충분한 증거는 되지 못한다. 거듭나지 못한 일반인들도 자기 양심으로 그런 정도의 뉘우침과 부끄러움은 가질 수 있다. 가룟 유다는 자기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판 것이 정말 잘못되었음을 알고 깨달았다. 그래서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에게 도로 가져 갔다. 마태복음 27:3,4의 말씀을 들어 보라.”
마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27: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잘못은 뉘우쳤고 예수님을 의로운 자로 인정은 했으나 구주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가리켜 ‘멸망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거듭난 자만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기의 오직 유일한 구주로 믿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6. ‘어린 아이 같이’ - 이 말은 어린아이의 무죄성과 순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여기 본문에서 ‘어린아이’가 어른에 비하여 가지는 특성 하나를 가리키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무죄성이 아니라 의존성’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전부’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를 먹여주고 품어주고 지켜 줄 엄마 아빠에 대한 ‘절대 의존, 절대신뢰’를 가집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는 ‘엄마’가 있으면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장난감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엄마’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없으면 엄마를 찾아 울고, 엄마가 보이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웃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특성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실 때, 그 어린 아기의 모습을 연상하셨음에 분명합니다.
어린아기에게 엄마가 그런 존재이듯이, ‘거듭난 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절대의존의 대상’이 됩니다.
그 사람이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절대 의존’하듯이, ‘하나님께서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은혜와 구원과 영생을 절대로 믿게’ 됩니다.
그 사람만 구원받습니다.
이것은 ‘적은 믿음, 큰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적용의 분량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 들이는 자,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 같이 받드는 자’라고 할 때는 ‘예수님을 믿는 자의 절대의존 신앙’을 가리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이 나의 구주로서 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다시 하셨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그분이 다시 오시어 나를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살게 하시고 영원히 살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 참된 구원신앙을 가진 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구주되심과 구주로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것’이 절대로 자기의 영원한 보장이요 영원한 근거요 가치입니다.
사람이 성령님으로 거듭나게 되면, 그 사람은 성경을 믿고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눈을 떠서 절대로 믿게 됩니다.
(1) 그가 드디어 눈을 떠서 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심과 그분의 속성과 성품을 배우게 됩니다.
(2) 그가 자기의 죄인됨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하나님 앞에서 지옥 형벌 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에 갖지 못하던 전혀 새로운 두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오호라 나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고, 죄인일 뿐이며, 나는 이대로는 반드시 지옥에 가게 되었다”는 의식이 그에게 생깁니다. 그래서 그는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절망의 조건에서 건져내랴! 내 스스로는 불가하다’
(3) 그런 그에게 성령께서 빛을 비추시어 성경대로의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받게 하십니다.
고후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성령께서 성경의 예수님을 그대로 받게 하실 때 ‘그 사람은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 품으로 파고 드는 것 같이’ 뛰어들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같이 받아 들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는 아무도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7. 다시 강조합니다.
어린아기가 엄마를 ‘자기의 전부’로 여기듯, 거듭난 자에게 전부가 무엇인가?
(1)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속량)의 은혜,
(2) 성부 하나님께서 그 은혜 안에서 안에서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를 물려 받게 하시는 사랑과,
(3) 자기 속에서 늘 계시면서 위로하시며 능력을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
- 그것이 거듭난 자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 - 그 사람이 ‘어린아이같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받아 들이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시 131: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131: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8. 여러분이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고 배불러 만족하여 잠든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것이 참된 구원신앙의 한 표지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의 믿음은 심판 날, 죽는 날에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고 외식에 찬 껍데기 믿음으로 판명나서 불못에 던져 질 것입니다.
‘내 믿음이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 믿음 주십사’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믿음이라면, 더 ‘어린아이 같이 절대 의존성으로 예수님을 믿기’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베드로 사도는 말하였습니다.
벧후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눅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