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36)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앞 시간에 오늘 본문 말씀인 7절을 포함한 베드로전서 5장 5절로 7절 말씀을 강론하면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제목으로 주의 말씀을 증거한 바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니,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행하면 때가 되면 높여 주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든 염려를 그치고 겸손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1. 오늘 본문 7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께서 돌보아 주신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1) 먼저 “염려”를 맡기라고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염려”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 “염려”라는 말이 헬라어로 명사형은 ‘메림나’, 동사형은 ‘메림나오’인데, 이 단어는 ‘나누다, 분열시키다’라는 뜻의 ‘메리조’와 ‘마음, 정신’이라는 뜻의 ‘누스’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마음과 정신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갈라지는 상태’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마음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혼란한 상태가 바로 염려’입니다.
성도의 마음의 상태는 시편 57편 7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여기 “확정되다”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쿤’에서 나온 말로서 ‘세우다, 고정하다. 단단히 고정되다’는 뜻인데, 이 말씀처럼 성도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이 항상 확정되고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 고백을 언제 하였습니까?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지은 시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사울 왕이 군사 3천명을 데리고 사울을 잡아 죽이려 찾고 있을 때, 다윗은 염려 대신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것을 기름을 부어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줄을 믿고,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시편 57편 1절에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라고 찬송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 떨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고 하나님 안에서 담대함과 평안을 누리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다윗의 마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고 찬송한 다음 구절인 8절로 11절에서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모든 염려 심지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주님께 맡기고 염려가 아닌 하나님을 향하여 확정되고 고정된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염려”는 모든 “염려”를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염려”라고 단수로 되어 있는데, “염려”라는 단어 앞에 우리말로 ‘모든’이라는 뜻의 ‘파산’이라는 관형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염려” 중의 하나만 주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산란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 같으면 크고 작은 문제를 누가 다 내게 가지고 날마다 찾아온다면 어떻겠습니까? 내 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쁘고 벅찬데 다른 사람의 문제를 매일 다 받아 주고 해결해 줄 능력도 시간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기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자비하시고 당신의 백성과 자녀에 대하여 무한한 책임을 지시는 크고 크신 주님이십니까?
시편 68편 19절에서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이 서신을 받아 보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한 고난 때문에 염려해야 했습니다.
이 편지가 기록되던 시대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던 때로서 이미 베드로 사도는 1장 6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라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는 고난과 핍박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염려하게 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는 머물 곳이 없는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나그네는 이방 땅에서 외인으로서 많은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황제 숭배와 우상숭배를 거절함으로 때로 감옥에 갇히고, 직장을 잃기도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 고난으로 “염려”가 찾아 올 때, 그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로 33절에서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이니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핍박과 고난으로 인한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약속해 주셨고, 또한 성도 자신도 그 약속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필요한 일용한 양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염려”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일용할 양식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염려”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고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성도들이 눈을 세상으로 돌리면 아쉬운 것 투성입니다. 남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데, 나는 가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원과 그 영광을 온전히 깨닫기만 하면 성도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늘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6절로 10절에서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욕심 대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세상 것을 얻지 못할까하는 염려를 그칠 수 있습니다.
또한 물질에 대한 염려가 찾아 올 때 우리는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돈을 사랑하지 않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살아갈 때 필요한 영적인 은혜와 육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휫필드가 말했듯이 구원의 복을 한 달란트 곧 34킬로그램의 금에 해당한다면 세상을 얻는 것을 모래 알갱이 하나를 얻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잠시 머물다 가야합니다. 천국이 영원한 영생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하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는 것과는 아무것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부요와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영원토록 누리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낮아지셨고, 가난해지셨고, 비천해지셨습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높아지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세상적인 욕심을 따라서 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구원받은 자들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영원한 복락으로 충만한 가운데, 주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은사와 물질과 마음을 다 해서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4. 성도가 염려하는 세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는 앞 시간에도 말씀드린 대로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하겠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권자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지 않고, 또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지려 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럴 능력이 사람에게 없기에 염려하고 두려워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1) 구약에서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염려로 마음이 나뉘어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분수에 넘는 일을 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백성들을 불러 모아 블레셋과 싸움을 벌어야하는데,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블레셋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백성 곧 군대로 모인 수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이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의 엄청난 군사력을 보고 위급함과 절박함을 느껴 굴과 수풀과 바위 큼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으며, 또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피난 내지는 도망을 칠 때 사울 왕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두려워 떨더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인 이레가 되었으나, 오지 않자 백성들이 흩어지고 자기에게서 떠나가는 모습을 사울 왕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번제와 화목제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번제를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도착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자신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사울 왕에게 사무엘상 13장 10절로 15절에서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늦게 도착하고 백성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급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라는 책망을 사무엘 선지자에게 들어야 했습니다.
만일 사울 왕이 인간적인 염려를 그치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선지자를 기다리고 여호와를 신뢰했어야 마땅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이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라는 여호와의 책망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수많은 군대 앞에서도 사울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원하셨으나, 그 모든 것 위에서 통치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당장 펼쳐지는 눈앞의 두려운 상황만 보고서 염려하였고, 그 염려를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왕 벨사살을 달아 보셨던 하나님의 저울은 벨사살만 달아 보신 것이 아니라, 사울 왕도 달아 보셨는데, 사울 왕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을 때, 사울 왕도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2) 사울 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하였기에 전쟁의 날에 염려하다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순종 대신에 번제와 화목제만 드리면 무조건 옳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평소에서도 사울 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자기 힘과 자기 지혜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전쟁의 날을 대비하여 전쟁에 능한 자나 힘 있는 자들을 계속 불러들여 자기 곁에 두었습니다. 이런 사울 왕의 모습에 대하여 사무엘상 14장 52절에서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센 사람이나 용맹한 사람을 보면 모두 불러모았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왕인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방의 왕들처럼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계산에 넣지 않고, 아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하기보다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곧 교만인데, 그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습도 보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센 사람이나 용맹한 사람을 보면 모두 불러모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하니, 아말렉을 친 후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고, 소와 양떼의 좋은 것을 남겨 놓았는데, 사무엘이 왜 남겨 놓았느냐고 물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하여서라는 구차한 변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사울은 많은 일로 염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염려를 그치는 일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5. 사울과 비추어 볼 때 그 다음 왕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탁하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왕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가 처음 역사에 등장하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에 그는 물맷돌을 가지고 홀로 골리앗에게 나아가면서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서 “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말하고 나가서 싸워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골리앗과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소년 다윗은 실제 전투에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은 없고, 오직 양을 치는 목동에 불과했지만, 블레셋의 대장군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내려놓고 여호와를 의지하여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라고 골리앗에게 말하고 나가서 맞서 싸워 이겼습니다. 다윗은 모든 염려와 자신의 안위와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였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자신의 양 때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사 “사자와 곰도 치고” 양떼를 지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누리고 살았기에 이스라엘 모든 군사들과 사울 왕까지 벌벌 떠는 골리앗 앞에서도 모든 염려를 그치고, 자신의 안위와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혈혈단신으로 물맷돌만 가지고 골리앗을 맞아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날에도 다윗은 평소와 같이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6. 그러니 이제 우리는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1)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방법은 주 앞에서 겸손하게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나의 모든 문제를 주님의 뜻대로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맡길 때 그 다음 구절인 빌립보서 4장 7절에서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모든 지각”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판타 눈”인데, ‘판타’는 ‘모든’이라는 말이고 ‘눈’은 ‘마음, 지성, 사고능력’을 뜻하는 말로서 “모든 지각”이라는 말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위에 속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위에 속한 것’을 뛰어 넘는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평강이 성도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곧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2)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염려를 맡길 때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 쉬워 보이는 것도 주님께 맡기고, 어려워 보이는 모든 일도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니, 나의 염려, 나의 생각, 나의 헤아림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그 물에서 나오려고 힘을 쓰고 몸부림을 칠수록 더 물속에 빠져 들어가고 물이라도 한번 먹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누가 빨리 와서 건져주지 않으면, 큰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물에 몸을 맡기고 긴장을 풀고 뒤로 누우면 얼굴이 뜨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염려할 일을 만났을 때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우리가 모든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삶은 죄 사함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자녀 됨의 복을 누리듯이,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인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것 같이, 우리가 내 마음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모든 것, 내 마음과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것도 다 주님께 맡길 때에 주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긴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겼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를 시험하는 사람입니다.
① 잠언 21장 31절에서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여호와께 맡기고 전쟁을 위해서 마병을 예비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바입니다.
②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의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복음의 씨가 심령에 뿌려진 자들에게 물을 주는 일 곧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때,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영적으로 자라나도록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서 ‘씨가 싹이 잘 날까? 또 병충해에 해를 입지는 않을까? 가뭄이나 태풍으로 농사를 망치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염려는 다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물과 비료를 주고 하나님께서 추수의 은혜 주시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7.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라고 하시는 것은 오늘 본문 7절 하반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이는 그가 너희를(곧 우리를)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여기 “돌보신다”는 말은 헬라어로 ‘멜레이’인데, 그 뜻은 ‘돌보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다. 염려하다’라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드릴 때, 주님이 돌보신다고도 읽을 수 있고, 또 주님께서 우리가 맡겨 드린 우리의 염려들을 주님이 어떻게 하실 지를 생각하신다라고도 읽을 수 있고, 주님께서 우리가 맡겨 드린 우리의 염려들을 주님께서 염려해 주신다는 말씀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께 맡겨드린 모든 염려들에 대해서 우리의 생각과 능력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복된 결말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온갖 좋은 모든 것들을 먼저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환경을 완벽하게 조성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 부모도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완전한 준비를 끝마치신 후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성도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온 우주를 움직이는 손길이 바로 ‘우리 아버지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이 우리 대신 염려해 주시되, 전지전능하신 주님,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께서 내가 맡겨드린 염려의 문제를 내가 염려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복된 결말을 주실 줄 믿고,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돌보심 속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누가 주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염려를 내가 끌어안고 고민하지 않고, 주님께 담대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주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윗이 늘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갈 때,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 두려워하던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사울 왕이 군사 3천을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확정된 마음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주장하시는 일만 내게 일어난다는 확신 속에 두려움이 없는 고정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을 묵상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며,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의 충만한 교제 속에서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과 교제 속에 살아가는 성도는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염려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참된 평강을 누리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