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구원에 이른 믿음의 표지(64) "세미한 소리를 듣는 자"

열왕기상 19:1-13

<열왕기상>

19:1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19: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19: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19: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19: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19:9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10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9:1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I

1. 오늘도 본문을 강론할 때 주님의 성령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큰 각성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쁨과 확신에 이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 속에서 구약성경에 소개된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 엘리야를 만납니다.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는 그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록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천 5백여 년 전 부터 시작하여 2천 여 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론할 때는 성경을 강론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지금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2. 오늘 우리가 만나는 엘리야는 그 영혼이 낙담하고 기진하여 더 이상 살 의욕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왕상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 보다 한 장 앞선 열왕기상 18장에 보이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용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 850명을 상대하여 기도로 홀로 싸워 이긴 믿음의 대장부였습니다.

각기 송아지를 잡아 제단에 올려 놓고 자기들이 섬기는 신,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에게 각각 기도하여 불로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자고 합니다.


왕상 18: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18: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18: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18: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이제 엘리야의 차례였습니다.

왕상 18: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18: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18: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18:35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엘리야가 그리 한 것은 아무도 ‘엘리야가 나무 사이에 불을 감추어 두었었다’는 식으로 모함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드렸습니다.

왕상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18: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그 엘리야는 백성 앞과 아합 왕 앞에서 매우 크고 위엄찬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아합 왕에게 권위 있게 말합니다.

왕상 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당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이 심히 곤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온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일은 왕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위 있게 왕 앞에 예언하였습니다.

누가 당시 이 엘리야를 당해내겠습니까?

왕도 그의 권위와 능력과 위엄 앞에 주눅이 들 정도였습니다.

3.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열왕기상 19장에서 만나는 엘리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더 이상 살 의욕을 상실하고 죽기를 하나님께 간청하는’ 심히 곤비하고 낙담한 연약하지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상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열왕기상 18장의 내용과, 19장의 내용간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하여 성경은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석가들은 ‘하루 아니면 며칠의 아주 짧은 기간일거라’고 말합니다.

왕 19: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아합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그 일을 이세벨에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세벨이 자기가 보호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형편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만합니다.

“사람이 정말, 하룻 사이, 아니면 며칠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가? 아침과 저녁이 달라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속담이 적용되는 여느 사람이라면 몰라도, 엘리야 같은 믿음의 대장부가 이렇게 빨리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전날에 그렇게 큰 믿음의 승리를 거두어 하늘의 광채로 충만하던 사람이 그렇게 금세 땅의 누추함을 덧입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가?”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겨지지 않는 상황’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한 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으로 분명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로 가 보지 않더라도 그 가장 현저한 증거를 아담과 하와에게서 발견합니다.

그들은 첫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고 원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아내 하와는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안식으로 충일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그 영광과 그 복락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조건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because you will certainly die during the day that you eat from it.- ESV)

그러나 사탄이 유혹하였습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 영적으로 이전에 보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눈은 사라지고 ‘자기들의 벗은 몸을 보고 수치를 느끼는’ - 죄악성의 성향이 그들에게 금방 찾아 들었습니다. - 영적 죽음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들의 몸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몸은 ‘죽음의 요소가 없던 몸’에서 ‘반드시 죽을 몸’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처음 창조되었던 그 영광의 자리에서 ‘죄와 사망의 자리’로 떨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선악을 아는 나무를 따 먹는 바로 그날’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5. 하물며 ‘전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과 능력으로 충만하고 의기충천하였던 엘리야’가 하루가 지나서 ‘살 의욕을 상실하고 죽기를 간청하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낙담한 사람’이 된 것,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 일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의 이야기만으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우리, 은혜로 충만한 모습을 보이던 우리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누추하기 그지없는 상태’로 추락하는 일이 우리의 내면과 우리의 삶의 실제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경계하셨습니다.

고전 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6. 그러니 사람이 영적으로 넘어지는 일의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엘리야가 그 영광의 수준에서 깊은 침체와 우울의 수준으로 급락한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여기 본문에 그 정답이 나와 있습니다.

왕상 19: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전날 갈멜산의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엘리야는 ‘악녀 이세벨의 위협과 그 악독한 정치 세력과 이 형편을 보고’(ESV에서는 Elijah was terrified<너무 무섭고 공포스러워>)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 물론 이 엘리야는 죄로 말미암아 영광의 사람에게서 사망과 비참의 사람으로 떨어졌던 아담과는 다릅니다.

엘리야는 ‘그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가 이런 낙담에 처하여 있어도 ‘하나님의 구원을 상실하거나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박탈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자녀답지 못하게 행하는 상태의 사람’의 문제를 고치시고 다시 견고하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구원받은 사람이 보이기 마련인 한 가지 중요한 특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여,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사람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상 사람은 ‘영적인 침체와 낙담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어 삼킬 자를 바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 지옥, 하나님의 진노의 지옥 무저갱에 언제라도 떨어질 수 있는 절박한 멸망의 사람’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침체와 우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지금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받은 사람,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녀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수도 없이 겪는 일의 해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구원받은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배웁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보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반드시 위로를 받고 각성 받고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낙담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 구원받은 사람이나 ‘영적으로 깊은 우울과 침체와 낙담에 빠졌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므로 그런 상태에 처하여 있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녀를 그런 상태로 오래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죽기를 청하는 엘리야’를 새롭게 하십니다.

다시 묻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다가 ‘믿음의 장부’로 있다가 하루 만에 ‘이렇게 죽기를 청하는 연약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는 데서 자기를 바라보는 데로 시선을 옮기고, 자기의 처한 형편을 주목하고 거기서 자기의 안전 문제를 계산하는 데로 영적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자기의 생명의 보호자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중단하고, 자기를 죽이려는 이세벨의 악독과 위협을 집중하여 살피고 기가 질리고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잘 풀어 놓은 책이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영적 침체(Spiritual Depression)」입니다.

그는 영적 침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 영적 침체와 낙담의 원인이요 경로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Have you realized that most of your unhappiness in life is due to the fact that you are listening to yourself instead of talking to yourself?”

(인생의 대부분의 불행은 자신에게 말해 주는 대신(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들려주어 하나님을 바라 보게 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말을 듣는데 기인한다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그는 이것을 시편 42편의 기자에게서 발견합니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II

1.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 영생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영적 침체와 두려움과 낙담의 늪에서 건지시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방식, 성령의 인도하심의 요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우러르게 하시는 것,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대속의 은혜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우러르게 하는 것’ -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궁극적인 방식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영적인 침체와 낙담과 공포’를 이기고 다시 소생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요점으로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호렙 산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뎀 나무 밑에 있는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시고 밥을 먹고 기운을 돋우시고 기운을 차리고 40 일의 길을 가서 호렙산 –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던 그 산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왕상 19: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19: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19: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19: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2)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호렙산 굴 속에 거하는 엘리야를 불러 나오라 하신 두 가지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왕상 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두 대조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바위를 부술 만큼의 크고 강한 바람, 땅을 진동하는 지진,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을 보여 주십니다.

‘바람, 지진, 불’은 위용차고 권능 있고 압도하는 강한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미한 소리’ - ‘잔잔하고 미세하고 고요하게 들리는 소리’를 듣게 하십니다.

2. 그 아주 대조되는 그 두 ‘현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엘리야로 하여금 무엇을 배우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택이 어디서 나타나는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는지’를 엘리야로 하여금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엘리야를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 다른 말로 하여,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어 그 사랑하시는 택한 백성들에게 은혜와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시 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그런 의미에서 ‘큰 바람, 지진, 불’도 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는 표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바람과 지진과 불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한 것입니까?

그 일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에 계시어 백성에게 은혜와 인자를 베푸시어 구원하시는 행사를 보이시지는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11:6의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히 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것은, 철학자들이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의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되, ‘그 사랑하시는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약속하시고 성취하시어 은혜를 베푸시어 구원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자비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냐?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과 계획과 뜻이 어디에서 성취되어 백성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게 하시느냐?’ - 엘리야로 하여금 그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엘리야 앞에서 지나가시며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을 일으키시나 ‘그 가운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바람과 지진과 불 뒤에 세미하고 잔잔하고 고요하여 인자한 소리를 듣게 하시고 거기에 함께 계심’을 엘리야로 하여금 배우게 하셨습니다.

왕상 19: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3. ‘그 세미한 소리’를 들은 엘리야는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인식하고 그 앞에 서게 됩니다.

왕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의 세력은 몸을 떨리게 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엘리야의 심령을 그 침체와 낙담과 공포의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미한 소리를 들은 엘리야는 거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인식하고 영혼이 소성함’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의 ‘영적 시선을 장악하는 것은 이세벨의 위협과 그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고, 오직 ‘세미한 소리로 자신의 임재의 영광을 나타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코 나가 굴 어귀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이제 엘리야는 ‘살 의욕까지 잃고 낙담하고 공포스러워 죽기를 간청하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다시 서게’ 된 것입니다.

III

1. 여기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은혜의 방식’을 따라서 순례길을 행할 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행보를 보일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관통하는 ‘은혜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기 ‘호렙산’은 율법을 상징하고,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은 하나님의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율법의 공의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 전날 갈멜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본보기로 ‘거짓 선지자들을 그 공의의 척도로 심판을 시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완전한 시행과 악인을 멸하시는 집행의 날’보다 더 앞 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구원하시는 은혜의 일’입니다.

그 일이 다 이루어지기 까지 ‘악의 세력의 준동은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한도 내에서 한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악인은 반드시 멸망할 날을 맞게 됩니다.

그런 차원에서 엘리야가 ‘이세벨의 악독’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녀의 멸망은 정해져 있었고, 그녀의 피를 개가 핥을 것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악한 이세벨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공포스러해서 되겠는가냐? 네가 항상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이겨야 한다.”

왕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9: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어라 하셨습니까?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2.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특별하게 당신의 은혜와 임재의 영광을 어디서 나타내셨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성전에 계셨습니다.

시 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합 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3. 구약시대의 ‘성전과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바로 신약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서 은혜를 주시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예표 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 제도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 속량의 은혜’의 그림자였습니다.

여기 엘리야에게 호렙산에서 보여주신 ‘바람, 지진, 불’은 모세의 율법과 그 공의와 그 진노 아래 있는 자들에게 베푸실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은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로되, 그 율법 자체 속에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한 것입니다.

롬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세미한 소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어 당신의 백성을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III

1. 그러면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복음의 은혜와 진리’를 그렇게 ‘세미한 소리’로 나타내셨는가?

우리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적에 ‘죄인들과 함께’ 하신 모습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하지 않으시고 율법의 공의를 들이대시어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께서 ‘죄인들 속에 늘 온유와 자비하심으로 함께 계시며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회개하는 강도에게 죄용서와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눅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에 대하여 17세기 청교도 경건하고 유명한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말하였습니다.

“이 세미한 소리는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자비의 목소리, 혹은 ‘은혜의 보좌(시은좌)에서 흘러나오는 위로의 음성’이다. 율법의 천둥소리가 죄인을 두렵게 한다면, 세미한 소리는 죄인의 용서하시고 구원하시어 마음에 평안을 주고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의 영광이다”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신 그 위로의 방식을 주목하라. 그를 다그치지 않으시고, 영적으로 완전히 고갈된 엘리야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이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신뢰하고 계신다는 사랑의 증거였다.”

2.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며, 성령님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세미한 소리 같은 부드럽고 온유한 모습으로’ 우리를 품으십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냐?’

성경을 통하여 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그 사랑을 확인하고 배우고 확신하며 순종하는 사람’ -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 세상을 이기는 복음의 세미한 소리’를 듣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의 요란하고 부산하고 혼란스러운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의 영광과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순종하는 자’ - 그 사람이 그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미한 소리’를 듣고 세상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말씀인 성경이 ‘세미한 소리’입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 – 그 성령을 힘입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견지하는 사람, 그 사람이 ‘세미한 음성’을 듣고 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견지하던 하나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