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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35)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전서 5장 5절로 7절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1.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장로들의 목양 아래 있는 젊은이들을 향하여 장로들에게 순종할 것을 말씀하고 또 모든 성도들에게는 서로에게 겸손하라고 권면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 구절인 베드로전서 5장 1절로 4절에서 사도는 고난에 직면한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목양하는 장로들에게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고하였는데, 장로들이 ‘양 무리의 본’이 되기를 힘쓸 때에 장로의 목양적 돌봄을 받는 교회 안의 젊은이들은 그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하고, 또 모든 성도들은 서로 간에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성경의 인물 중에서 겸손하기 어려운 사람을 꼽으라면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1) 구약의 모세는 그의 출신 배경과 그가 가진 능력이 그로 겸손하기 어렵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애굽의 바로 왕의 핍박 시대에 태어나 석 달 만에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 띄워졌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바로의 공주가 물에서 건져내어 양아들을 삼아 양육함으로 모세는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행 7:22)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나이 40에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아볼 마음이 생겨서 이스라엘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하자 그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였고, 다음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 그들을 화해시키려 하였으나,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행 7:27-28)라고 말하자 애굽인을 죽인 것이 들통이 나서 미디안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를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하시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 3절에서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신약의 사도 바울도 겸손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웠고,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성령의 충만과 은사를 넘치게 받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을 볼 때에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서 ‘네 발로 일어서라’고 말하여 일으켜 걷게하였고, 빌립보에서는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으며,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는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셋째 하늘 곧 천국을 직접 보고 오는 영적인 경험까지 한 바울은 학문과 영성이 최고조에 달한 인물로서 겸손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겸손케 하시기 위하여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이라고 사도 자신의 입으로 고백을 하였는데, 고린도후서 12장 4절로 7절에서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쓰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모세에게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광야의 학교에서 그를 겸손케 하셨고,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를 주시어서 겸손하게 하시어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3. 오늘 본문 5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시대나 젊은 사람들은 힘도 있고, 나이 많은 분들 보다 학식도 많고 학벌도 좋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날의 예를 든다면 외국에 나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좋은 직장을 얻어 더 많은 일을 하고 수입을 많이 거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하여 성경에 대한 지식도 있고 교리체계를 머릿속에 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남보다 많이 알고, 능력이 출중하면 겸손하기 어려워집니다.

1) 그런데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베드로 사도는 ‘젊은 자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 “순종하고”라는 헬라어는 ‘휘포타쏘’라는 말인데, ‘∼ 아래’라는 뜻의 ‘휘포’와 ‘일정한 곳에 두다. 일정한 곳에 놓다’라는 뜻의 ‘타쏘’의 합성어로서 다른 사람의 권위 아래 자신을 ‘굴복시키다. 복종시키다. 따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에게 순종하고”라는 말은 ‘장로들의 목양의 섬김 아래 자신을 두라’는 의미이기에 우리 말 성경에서 “순종하라”라고 번역했지만, 이것은 장로들의 권위 아래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을 말씀하는 것이기도합니다.

2) 젊은이들에게 순종하라 곧 겸손하라고 하시면서 “이와 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와 같이”라는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 3장 1절에서 “아내들아 이와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할 때 사용한 표현입니다. 7절에서도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가 “이와 같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성도들은 정부와 위정자에게 복종하고, 종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주인 뿐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들에게도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 후 “이와 같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백성은 정부와 위정자에게 복종하고, 종들은 주인에게 복종하고, 아내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같은 원리로 “이와 같이”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와 질서에 순종하는 성도의 합당한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4.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1) 첫째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 비해서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37편 25절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노년이 된 다윗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인생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하여 다윗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간 사람들이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의인에게 은혜를 주시고, 악인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 섭리를 아는 지혜, 젊은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오랜 시간의 신앙의 연단 속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2) 또한 젊은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하여 머리 회전도 빠르고, 학식도 많고, 학벌이 좋고, 또 성경 지식도 뛰어나고 교리체계를 잘 안다 하여도 지식으로 아는 것이 곧 바로 그 사람의 전인적인 신앙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아는 것이 많고, 또 무엇을 행할 힘이 있다는 것을 인하여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앞서 겸손하기 어려운 사람 중의 하나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신약의 사도 바울이라고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나바와 함께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려 할 때 1차 여행길에서 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중간에서 돌아간 바나바의 조카 마가 요한을 바나바는 데리고 가자고 하였고, 바울은 중간에 포기하는 충성되지 못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사역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다투다가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함께 제2차 선교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젊은 날 사도 바울은 맺고 끊는 것이 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나이를 먹은 후에는 마가 요한을 가까이 두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기록한 빌레몬서 1장 24절에서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한 골로새서 4장 10절에서도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과 마가가 함께 있다는 것을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순교를 앞두고 기록한 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젊은 날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일에 대한 열정이 불같이 타 올라서 앞뒤와 좌우를 가릴 새가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그의 신앙과 인격은 더욱 성숙되어 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몸에 허락하신 육체의 가시를 통하여 사람이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고, 바울도 연약한 사람을 돌보아주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다려 줄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 속에서 모세와 바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손한 일꾼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신앙과 인격이 젊은 사람들보다 성장한 존경 받는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하고 그들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이 삶으로 이어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성도를 연단하심으로 성숙한 일꾼으로 세워가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5. 또 사도는 오늘 본문 5절에서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합니다.

1) 여기 “다 서로”라는 말에서 “다”는 헬라어로 ‘판테스’라는 말로서 ‘모든 사람, 각각의 사람’이라는 뜻이고 “서로”라는 말은 ‘알렐로이스’라는 말인데 ‘서로, 피차, 각각’이라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장로들에게 순종하라 곧 겸손하라고 말씀한 다음에 모든 사람에게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장로들로 젊은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도 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겸손하게 대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2) “겸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타페이노프로수네’라는 말인데, ‘비천한 낮은’의 뜻을 가진 ‘타페이노스’와 ‘이해, 생각, 지혜’의 뜻을 가진 ‘프렌’이라는 말의 합성입니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헬라어의 뜻은 자신에 대해서 높여 생각하지 않고 ‘낮추어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인 “겸손”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은 겸손은 우리 구주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서 주님은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젊은이들 앞에서 어른의 권위를 버리고, 젊은 사람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하고 어른이 먼저 겸손하게 섬긴다면, 세상은 이상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상한 것이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습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 자체가 겸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완전한 순종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주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해 주심으로 우리를 위한 충분한 대속의 값을 지불해 주심으로 가장 낮고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겸손하게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지옥 형벌을 면하고, 의롭다 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라는 존귀한 신분을 얻고, 장차 천국에서 주의 영광에 참여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이 존귀함의 은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낮아지시고, 비천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대신 당하신 그리스도의 겸손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부요함을 주시기 위하여 가장 비천한 자리까지 낮아지신 겸손의 주님이셨습니다.

4) 또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하셨는데,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은 ‘천을 몸에 달아매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시 노예들이 자유민과 구별하기 위하여 하얀 앞치마나 스카프를 옷 위에 별도로 매단 것을 보고서 하는 말씀이었는데, 성도들은 어떤 행동을 하던지 항상 겸손하게 행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노예들이 항상 그 몸에 앞치마를 두르고 섬겼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겸손의 앞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5) 마음이 겸손하신 예수님은 친히 겸손하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밖에서 손님이 오시면 손님의 발을 씻어 준 후에 식자 자리에 앉는 것이 관례였는데, 마지막 유월절 만찬 때에 제자 중에서 그 아무도 주님의 발을 씻어 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 다음 자리는 내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먼저 나서서 발을 씻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친히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차례대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베드로 차례가 되었을 때에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요 13:6)라고 말할 때, 주님께서는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섬김의 모습이 영혼 깊이 새겨졌던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 무엇보다 교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오늘 본문 5절 하반절에서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시니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1) “교만”은 무엇입니까?

한글 사전에서 “교만(驕慢)”은 ‘잘난 척하고 뽐내고 건방짐’이라는 뜻인데, 이 “교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페르파노스’인데, 이 말은 ‘∼위에’라는 뜻의 ‘휘페르’와 ‘자신을 나타내다. 자신을 나타내 보이다’라는 뜻의 ‘파이노’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이 “교만”이라는 말은 ‘실제 보다 자기를 더 높이고 드러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잘난 척하고 뽐내고 건방짐’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 말 “교만”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2) 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① 첫째로 “교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신명기 8장 11절로 14절에서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일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신명기 8장 17절에서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교만”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집과 땅과 가축과 은과 금이 모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인데,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마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인 줄 생각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이 “교만” 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구절인 신명기 8장 1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소유한 건강도, 명예도, 물질도 그 무엇보다 구원의 모든 복락이 하나님이 다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7절에서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질문하였습니다.

② 둘째로 교만의 모습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십니다.

사단 마귀는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지으신 존재였는데, 하나님과 비기려는 교만으로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그 존귀한 자리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다니엘 4장에 보면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한 꿈을 꾸었는데, 땅의 중앙에 있는 하늘에 까지 닿는 큰 나무에 관한 꿈이었는데, 그 나무는 느브갓네살을 상징하였는데, 왕이 교만하게 될 때 그 나무가 베어지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게 될 것이라는 꿈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에게 공의를 행하여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이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고 겸손하게 될 때에 왕의 평안함이 장구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후 열두 달 곧 일 년이 지난 후 느브갓네살이 바벨론 왕궁 지붕을 거닐면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이루었다고 교만하게 말할 때 왕 좌에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고 일곱 때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 4장 30절로 32절에서 “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들 판에서 소처럼 풀을 먹는 신세로 전락한 후 일곱 때가 지난 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맑은 정신을 다시 주시자, 회복한 뒤에 다니엘 4장 37절에서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③ 셋째로 교만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함으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시편 10편 4절에서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교만의 또 다른 모습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이 교만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려 하는 것이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 능력이 스스로에게 없으니 걱정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1장 12절로 13절에서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인생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나, 그 결과로 자기보다 조금 힘이 센 인생, 곧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고, 풀 같이 속히 사라질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모든 두려움의 뿌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이 그 두려움과 염려의 뿌리입니다.

7. 그래서 오늘 본문 6절로 7절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고 하시면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교만한 자 곧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기를 의지하고, 높이고, 자랑하는 교만한 자는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나 스스로 해결할 힘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일이 잘 되면 한도 끝도 없이 교만해집니다. 그러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한 없이 염려하고, 낙망하고 좌절하고 비굴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의 다른 얼굴이 염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겸손할 것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히 행하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는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잠언 3장 34절에서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였는데, 베드로 사도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서 4장 6절에서도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역시 잠언 3장 34절 말씀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①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 일은 성경에 너무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탄 마귀의 타락도 자신을 하나님과 같이 높이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그 영광스런 자리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일곱 때를 소처럼 풀을 먹고 왕좌에서 쫓겨난 이유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권세인 것을 잊어버리고 교만할 때였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된 헤롯 왕 곧 헤롯 아그립바 1세가 화려한 왕 복을 입고, 백성들 앞에 연설을 하자, 아첨하는 자들이 ‘이것을 신의 소리요 사람이 소리가 아니라’ 말하며 그를 신처럼 높일 때, 사도행전 12장 23절에서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②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이라도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우상숭배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 왕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시어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라고 하시자, 아합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왕상 21:27)녔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다시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왕상 21:29)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악한 왕이었던 아합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모습을 보시고, 재앙을 늦추어 주셨습니다.

2) 그래서 우리는 6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할 때에 “때가 될 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① 여기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는 말씀에서 “겸손하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부정과거 수동태 2인칭 복수형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스스로를 낮추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낮추시는 환경 속에서 그 낮아짐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너희는 낮추시면 기꺼이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②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높여 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신 손, 능하신 손입니다. 출애굽기 3장 19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바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서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는 당신의 손을 “강한 손”, 다른 표현으로 ‘능하신 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강하고 능한 손은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애굽에서 고난 받던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말합니다.


③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 전능하신 손으로 겸손한 자를 높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는 내가 원하시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를 말합니다. 고대 헬라어에서 흐르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불렀고, 의미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낮아지심의 시간, 고난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짧게 지나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통과할 때 겸손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최고의 유익을 주실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때까지 고난을 허락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할 때 “때가 되면” 곧 우리로 고난을 통하여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겸손의 훈련과 그리스도를 닮게 하심으로 성화를 이루어가게 하시는 영혼을 복을 주시는 “때가 되면” 우리를 높여 주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는 육신의 부모가 없다고 하시면서 하늘 아버지께서는 구하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절대로 쓸모없는 고통과 고난의 때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55편 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짐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다 여호와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붙드시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을 다 주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가운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은혜를 달라고 간구하며 하루하루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을 더 복되게 하시어서 주님과 생명의 교통이 충만하게 하시고 진리를 위해서 살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을 내어 주신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영혼과 육체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부어 주실 줄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염려를 그치고 하나님이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히 행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