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구원에 이른 믿음의 표지(6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한 자"

골로새서 1:24-29

<골로새서>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I

1. 오늘도 오늘 읽어 드린 본문을 강론할 때 주님의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기름 부으심을 주시어 깨닫게 하시고, 그 믿은 바를 행할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골로새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지금의 튀르키에(옛 터기)의 서남부에 위치해 있던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설립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것은 에바브라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아마 그가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 기간 중에 복음을 듣고 회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그는 사도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늘 사도 바울의 지도를 받았다고 보여 집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와 그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때 골로새 교회의 영적 상태와 그 교회에 밀려온 여러 반 복음적이고 이단적인 여러 교훈들의 도전에 대하여 사도 바울에게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낼 필요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2. 오늘 우리가 강론하고자 하는 말씀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가 항상 적극적으로 구원신앙을 견지하면서 어떻게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주님의 역동적인 일에 동참할 것인지를 성령께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교회의 지체가 된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에서 먼저 결론적으로 이런 교리를 뽑아낼 낼 수 있습니다.

- 구원을 받은 사람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

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대번에 이런 의문을 가질만 합니다.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이라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완성과 극치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19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요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하고 완전한 대가를 지불하는 ‘그리스도의 속량’은 그 선언으로 완성된 것을 우리를 확인 받습니다.

그 속량의 완성을 위하여 치러야 하는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고난’은 끝이 났습니다.

더 이상 ‘속량(구속)의 완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어 온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드렸고, 죽으심으로 자신을 속죄 화목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기에 필요하고 완전하 조건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생애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고 충분한 모든 조건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한꺼번에 다)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의 조건을 위하여 보태야 할 ‘그리스도의 고난’은 없습니다. 더 지불해야 할 값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길이 그리스도 안에서 활짝 열렸습니다.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우리의 속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제출할 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속량의 은혜 말로 우리가 마련해야 더 마련할 ‘공로나 공덕’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4. 그러므로 골로새서 1장 24절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결코 십자가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구속의 완성’과 ‘구속의 효력을 적용하는 일’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완성된 구속의 효력의 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구속의 효력을 택한 백성 각 사람에게 적용하시는 교회론적인 의미의 고난’입니다.

구속론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의 고난’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교회론적인 의미의 그리스도의 고난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택한 백성을 위한 구원의 대가가 완전하게 지불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방식은, 그리스도의 그 완전한 구속의 효력을 ‘한꺼번에 택한 백성 전체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각 시대와 각 지역에 있는 ‘택하신 자들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 그리스도의 피, 그리스도의 의의 효력을 적용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시어 일하십니다.

그것이 인류역사의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여, 교회, 곧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시어 뜻을 이루시는 것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하여 교회를 통하여 그 ‘구속의 효력을 각 백성에게 적용’하시되, 하나님의 정하신 때와 방식을 따라 섭리적으로 점진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하십니다.

그렇게 하시어 ‘택한 백성 한 사람 빠짐없이 구원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이름과 나라와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 신비로운 비밀을 알아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사실 우리 사람의 생각 같아서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완성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들을 한 번에 다 멸하시고 택한 백성을 한꺼번에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더 나을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지혜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고, 하나님을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 모든 원수들을 한 번에 다 멸하시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한꺼번에 다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당신의 권위와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시고 쓰시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식과 법도와 규례와 질서를 따라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발판과 무대로 삼으시기 위하여 인류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그 역사 속에 교회가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이제 종말에 이르렀다’고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이제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어느 날 끝을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임하게 되고 새로운 세계의 역사가 진행될 것입니다.

그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그리고 그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목적은 ‘교회를 위하신 하나님의 뜻’의 완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교회’가 아니면, 인류역사는 진행될 이유가 없습니다.

인류역사의 종말은 ‘택한 백성의 수가 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을 때’입니다.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래서 사도는 선언합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II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사람으로 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피로 사신 당신 자신의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 곧 땅에 있는 택한 백성, 구원받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상에서 자신의 몸으로 제물드려 속량 사신 우리 모두’를 위하여 하늘에서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받아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충만을 입어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믿고 세례를 받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것이 바로 신약적인 의미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사도들이 파송을 받고 복음이 전파되고, 여러 곳에 구원받은 자들이 나타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교회들)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런 모든 일들이 역사 속의 교회를 통하여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바로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연장 선’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잿더미 속에 있던 나라를 세워 세계 10대 강국의 자리에 세운 것은 교회 때문입니다.

2. 교회는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구약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장막,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성전과 거기에 와서 하나님께 와서 제사하고 예배한 자들’이었습니다.

시 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신약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3.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피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 - ‘교회에서의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다’ -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속량의 효력을 가지고 택한 백성에게 적용하시는 일은 설교를 통해서’ 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설교학적으로 말합니다.

“설교 없이는 구원도 없다.”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설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 - 다 같은 ‘교회론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교회를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일’ 전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합니다.


4.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마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의 큰 일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어 피로써 아버지의 택한 백성을 죄에서 속량하시는 일.

(2) 그렇게 속량하신 백성들 각 자에게 그 효력을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그 구속의 효력을 적용하시며 자기 교회를 세워 가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일 전체.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 전체’입니다.


III

1. 그런데 그 그리스도의 일을 ‘고난’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시어 육체로 고난을 받아 죽으신 일은 고난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게서는 천상에 계시는 데 ‘무슨 고난을 받으신다’는 말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신 후에도 자기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그런데 그 일은 아무 저항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정수리를 박살내어 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교회를 방해하고 대적하고 박해’합니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고난을 통하여도 대적하여 죽였습니다. 물론 사탄이 그리스도를 죽인 것 같으나, 사실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으로 사탄이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사탄은 복음의 효력을 적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복음의 역사를 방해하고 대적합니다.

사탄은 교회를 대적합니다.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위하여 매를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2천 년 동안 그런 사탄의 박해를 받았고, 교회는 늘 환난 가운데 존재해 왔습니다.

교회를 잔멸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우리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그를 부르며 무어라 하셨습니까?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우리 주님께서 ‘너는 왜 내 교회를 박해하느냐?’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가 받는 박해와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사도가 된 바울은 오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일은 ‘그리스도께서 속량의 고난을 위해서는 혼자’ 해내셨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하실 때 아무도 예수님을 돕지 않았습니다. 홀로 죽으셨습니다. 아버지께 버림 받기도 하셨습니다.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홀로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자신을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 ‘교회론적인 의미의 고난’은 ‘혼자 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과 연합한 자들, 곧 그리스도의 피로,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 고난을 받으십니다.’

그것이 ‘고난’인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자면, 반드시 그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의 박해와 방해와 대적’을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은 ‘고행’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자신을 드리는 영예에 참예하는 것의 대명사’입니다.

물론 그 ‘고난’에 참예한 자들은 ‘구원의 공력을 쌓는 자들이 아니라 구원받은 은혜 안에 있는 자들로 성령 보혜사의 권능에 붙잡힌 영예로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신약적으로 최초의 순교자 스테반은 ‘고통과 아픔의 애절인 호소를 할 만한데 도리어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을 자신의 최고의 영예’로 여기며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처럼 되었습니다.’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 곧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영예로운 자들’입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러면서도 바울은 자기의 당하는 고난을 ‘내 고난’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어 일하시며 영광받으시는 일에 은혜로 영예롭게 동참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공력’을 얻기 위한 동참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반드시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구원신앙의 대 표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선교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서 2장에서 말한 ‘선한 일에 참예하는 영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엡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V

1.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실제는 무엇입니까?

골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

사도는 사도대로,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집사는 집사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칼빈은 여기서 ‘이룬다(πληρόω, 채우다, 충만하게 하다)를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말씀을 완성한다”가 아니라(그 일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하십니다.) “말씀을 충분히 선포하여 그 능력이 나타나게 한다”- “교회가 복음의 말씀의 사역을 위하여 하나가 되어 집중하여 그 복음의 말씀이 충분하게 선포하여 그 능력이 나타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 말씀 자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목적대로 역사하도록 하는 일에 수종든다”는 개념입니다.

- 이 일은 목사의 일만이 아니라, 모든 직분자들이 다 함께 하는 일입니다. - 축구 선수들이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골을 차고 골문을 지키는 것과 같다. 각 포지션이 있으나 목적은 하나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는 일’의 구체적인 내용은 26절 이하입니다.

(1) ‘말씀을 이루는 일’의 내용’ -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일’은 바로 ‘복음 증거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의 목적’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온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 일이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것’이 자신의 생의 최고의 일로 여기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그 사람 속에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참 믿음의 사람의 최고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의 목적’입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자의 동력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택한 백성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 안에 견고하게 서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며, 성령께서 보혜사로 우리 안에 거하시어 일하십니다.’ -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교회의 동력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임하여 확장 되고, 믿고 구원받은 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영적으로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나아가는 일에 늘 힘써야 합니다.

3.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4. 우리 중심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 중심의 교회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 까지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 주님 오실 때 까지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영예’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두어가지만 말하고 마치려 합니다.

어느 교회 이야기입니다.

어느 신실한 목사님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들을 읽고 은혜를 받고, 성경 중심의 강해설교로 교회를 잘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교회 6년 동안 목회하였는데, 그 교회 장로님들이 단합하여 목사님께 요청하였습니다.

“성경대로 하는 강해설교 더 이상 하지 마세요.”

- 그래서 그 목사님 고민하다가 그 교회 사임하고 개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그 때 목사님 그 교회 사임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은혜받는 성도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난 뒤 1년 뒤에 한 장로님이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 “목사님 정말 저희가 잘못 했어요” -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회 후임자는 ‘목사의 이름만 단 사기꾼’이었습니다. - 복음을 물리친 그 교회에 성령께서 떠나시니 그 장로들과 성도들의 눈이 멀고 이상한 자를 담임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 더 이상 그 교회가 그 지역에 서지 못하여 문 닫고 다른 데로 가 버렸습니다. - 다른 데 가서도 그런 의식 가지면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고 거부하는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거기서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 말씀만 강론하는 담임목사님을 존중하고 기도하며, ‘오직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성경대로 집중하여 말씀대로, 성령을 의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에 집중하는 그런 섬김이 넘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만 첨부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일반적인 일에서도 ‘그리스도를 마음대로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영예’에 비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국민 각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는 믿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마음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나라들의 정치 체제나 주의는 요한계시록에서 다 적그리스도적인 짐승 같은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공평, 평화, 평등, 공생’을 외치나 ‘그 속에 간교한 사탄의 속임수가 들어 있는 정치체제’가 있습니다. 역사상 ‘제국주의, 전체주의, 국가주의, 사회주의’ - 그런 정치체제나 이념은 반드시 ‘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복음 전파를 막고 박해하고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현대나, 근현대사가 그것을 여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들 중에서 예수님을 마음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나라들이 어떤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고 판단하세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완성되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악한 사탄의 세력이 무너지고 택한 백성들의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건설되고, 의가 거하는 새 땅과 새 하늘이 열리어 그 안에서 안식하여 영광을 성삼위께 돌릴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경륜 속에서 오늘도 해가 떴고 해가 질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 속에서 우리 중심교회의 그리스도의 금 촛대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