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29)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는 삶"

베드로전서 4장 1절로 6절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오늘도 주의 말씀 증거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잘 깨닫게 하시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성도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유혹에 바르게 대처함으로 육체의 남은 때를 사람의 정욕을 따라서 죄를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1.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떨어질 수도 없고, 떼어서 생각할 수도 없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시작한 때부터 저와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고, 삶의 모든 국면은 그리스도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 1절로 5절에서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우리는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살리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로마서 6장 10절로 11절에서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의 삶을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의 삶인 의를 행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진 천국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지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과 의를 행하는 삶, 곧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이전, 구원받기 이전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정욕을 추구하는 삶을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이후에는 완전히 성화되어 죄와 상관없는 의로운 삶, 영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이후 천국이 임하는 그 날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이 문제입니다. 영적으로는 이미 칭의의 구원인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나 아직 몸의 구속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이 땅에서의 삶은 영적으로는 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소원하나, 아직 육체가 완전한 성화를 이루지 못하였기에 죄의 유혹을 받는 긴장 속에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육체의 남은 때를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2. 오늘 본문 2절에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라고 하시는데, 우리로 이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는 고난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고 핍박하며 고난을 가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8절로 19절에서는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을 미워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성도들도 자기들과 똑같이 정욕대로 살았으나,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과거에 행하던 죄악의 삶을 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볼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삶과는 다른 성도의 삶을 통하여 정죄를 당하니 화를 내고 고난과 핍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4장 3절로 4절에서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 곧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두 번째 요소는 정욕대로 살라고 미혹하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이 시대의 정신과 원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나 영생을 생각하지 말고 현재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 네가 원하는 삶을 살라고 유혹합니다. 물론 이 세상의 정신과 원리 뒤에는 공중권세 잡은 사탄 마귀가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음녀 바벨론 곧 세상의 정신과 원리를 앞세워서 성도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쾌락을 추구하라고 말하며 영적으로 사람들을 마비시키는 음행을 잔을 마시라고 유혹을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침투한 번영신학은 순종과 헌신이 없는 성공과 번영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도의 참된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헌신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고 누리면 성공했다고 말하나,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과 핍박을 가한다 하여도 성도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삶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삶입니다.

3. 이 원리를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 1절에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고 고난도 이기고 죄의 유혹을 이기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1) 먼저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으나, 그러나 그 고난은 예수님의 죄 때문에 당하신 고난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신대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은 예수님 때문이 아닌, 우리의 죄 때문에 당하신 부당한 고난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부당한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 받고 그 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라고 먼저 부당한 고난을 당하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는 참 의인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단번에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 없는 자로 서게 해 주셨습니다.

②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택한 백성인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무죄하신 참 사람이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니 고난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께서 기꺼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조직신학자 루이스 벌코프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상의 고난’과 ‘비상한 고난’으로 나누었습니다.

‘통상의 고난’이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전체, 나아가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겪으신 모든 고난을 말하는데, 그 고난은 죄 많은 세상에서 의인으로서 겪는 고통, 인간적인 연약함인 배고픔, 피곤함과 사람들의 배척과 비난 등을 포함하는 고난으로서 태어나시면서부터 생애 마지막 전까지 겪으신 삶의 모든 고통스러운 정황을 말합니다. 이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하는 모든 율법의 요구에 완벽하게 순종하여 주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것이 충분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에덴에서 뱀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범죄하였는데,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인하여 낙원이 파괴된 이 세상에서 죄로 인하여 당해야 하는 통상의 고난을 당하시는 중에도 율법의 요구에 완전히 순종하시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완벽한 순종’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또 다른 고난은 ‘비상한 고난’인데, 생애 마지막 단계 즉 겟세마네 동안에서의 고뇌부터 십자가 위에서 겪으신 집중적이고 구속적인 고난을 말합니다. 이 고난은 죄인이 그 죄를 인하여 하나님께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받으시는 사법적 고난으로서 택한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결정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우리 죄에 대한 책임을 대신 받으신 ‘충분한 대속’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셔야 할 모든 죄의 책임에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① 여기서 말씀하는 “마음”은 ‘생각, 사고방식, 태도, 기질’등을 말씀합니다.

성도들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본 받아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사고방식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 속에서 이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하십니다.

② 또한 “갑옷”은 전투에 참가하는 사람이 입는 방어용 무기입니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전장 터에 갑옷을 입지 않고 전투에 나가면 그 몸은 화살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그 몸으로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죄를 짓는 것 대신에 고난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는 것입니다.

3)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를 그쳤다”는 말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성도는 성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성도가 죄를 완전히 그치는 때는 천국에서입니다.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을 때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는 말씀은 예수님께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으로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니, 나도 죄를 짓지 않고 도리어 고난을 받기로 선택할 때 죄의 속박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하여 죄를 멀리하고, 살아가면서 고난과 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죄를 지을 것인가 죄를 짓는 것 대신에 고난을 받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으로 우리가 죄책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할 때, 고난과 죄 중에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고난을 선택함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고 육체의 고난이 올 때, 주님 안에서 죄 대신 고난을 선택하여 죄를 그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삶을 2절에서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는 삶이요, 3절에서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는 삶에 대하여 6가지의 죄악을 열거하며 그 삶은 ‘이방인의 삶’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1)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삶, 곧 죄를 그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소극적으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게 된다고 하십니다.

고난을 각오함으로 죄를 그치는 삶의 소극적인 목적은 “사람의 정욕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육체의 남은 때”라는 표현은 성도에게 허락된 지상의 생활을 말하는 것인데, 동시에 그 시간이 짧다는 것을 말해주는 표현이 “육체의 남은 때”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정욕”대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대로 살지 않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당시 사람들의 죄악상을 말씀하고 있는 3절에서 “사람의 정욕”대로 사는 삶에 대해서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말씀하는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가 바로 “사람의 정욕”대로 사는 삶입니다.

① 여기 “음란”이라는 말은 결혼관계를 벗어난 성적인 불결을 말합니다.

② “정욕”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죄의 욕심을 말합니다.

③ “술취함”은 온전한 상태가 아닌 취해 있는 상태로 술과 약물과 어떤 특별한 일에 중독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편지는 네로의 핍박이 시작되던 시대에 기록된 서신인데, 네로 황제와 네로 전임자인 칼리큘라 황제가 여러 가지에 취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④ “방탕”은 중심이 없이 여기 저기 헤매고 흔들리는 삶을 말합니다.

⑤ “향락”은 쾌락에 매여 사는 것, 또는 쾌락에 자신을 맡긴 것을 말합니다.

⑥ “무법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당시 사람들이 행하던 악한 일이었는데, 당시 우상숭배는 국가가 주도하기도하고, 상업 조합이 주도하여 자신들의 섬기는 신의 신전에서 우상숭배와 함께 음행을 벌이는 일들을 함께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이 우상숭배의 일은 자신들의 신을 바르게 섬겨서 바른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섬기던 신들을 이용해서 부귀와 명예를 얻겠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우상숭배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삶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고하십니다. 이 말은 이제 악한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쁜 짓은 행할수록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성도는 내가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즉시 그 악을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죄의 낙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부당한 고난을 당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즉시로 죄의 낙을 즐기던 삶을 멈추고 주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하던 삶이 “지나간 때로 족”한 줄을 아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삶, 곧 죄를 그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소극적으로는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제 적극적으로는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진 나그네로서 천국 본향을 바라보고 선한 행실에 힘을 쓸 뿐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부당한 고난을 기쁘게 여기고 당하는 삶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볼 때에는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죄를 지어야 하느냐, 죄를 짓는 대신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는 선택의 순간에서 죄와 고난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로 죄를 버리고 고난을 기꺼이 선택하는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이 선택을 날마다 바르게 하는 성도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눈을 뜨면 죄의 낙을 위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부당한 고난을 받을 것인가라는 선택의 순간에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따라서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고” 부당한 고난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늘에 소망을 둔 참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를 하면서 ‘여호와만을 섬기든지 아니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을 섬기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라고 말하였고, 엘리야 선지자도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하면서 당시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하는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가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라고 선택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의 낙을 선택할 것이냐 그리스도를 따라서 부당한 고난을 받을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저와 여러분 모두는 천국에서 주와 더불어 누릴 영생의 삶을 바라보고 부당한 고난을 선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요, 이런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5.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하던 과거의 죄악 된 삶 곧 “사람의 정욕을 따르”던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의 삶을 버릴 때, 세상 사람들은 “이상히 여겨 비방”한다고 4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성도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악을 행함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방을 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그러나 더 이상 그들과 같은 죄를 짓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것은 영광스런 일입니다.

여기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다는 말은 ‘방탕의 홍수로 달음질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방탕의 홍수로 달음질할 때 그 홍수 속에서 죽는 줄 모르고 열심히 달려갈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과 같이 행하지 않는 성도들을 보고서 “이상히 여”긴다고 말합니다. “이상히 여”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여 “비방”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총독 베스도는 바울에게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라고 비방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바울 사도는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행 26:25)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도의 옳은 행실을 볼 때 세상 사람들은 칭찬 대신 비방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방을 당한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서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6. 그러나 자신들과 같이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지 않는다고 성도들을 “이상히 여겨 비방하”는 그들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자신들의 죄악을 “고하리라”고 5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신 후, 모든 사람들을 “크고 흰 보좌”(계 20:11)에 앉으시어 심판하시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전히도 여전히 “극한 방탕”의 삶인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에 달음질하면서, 그런 삶을 더 이상 살지 않는 성도들을 “이상히 여겨 비방하”는 자들은 예수님 재림하시는 최후 심판의 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와 악에 대하여 하나도 숨길 수가 없어서 자신의 모든 죄를 빠짐없이 직접 사실대로 고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밖에 있는 어떤 악인이 이 땅에서는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심판은 없다고 큰 소리를 쳤다 할지라도 그가 죽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들어갈 뿐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에도 우리는 받을 심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모든 죄와 허물에 대한 심판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시선은 이 땅만이 아니라, 이 심판의 날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 이 심판을 넘어서서 육체의 남은 때를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주님 재림하시는 날이 심판의 날이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영광의 날인 그 날을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당하는 고난과 비방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고난 다음에 주실 영광을 바라볼 때 모든 고난과 비웃음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끝으로 6절에서는 이 약속을 바라보고 살아간 성도들은 이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으나,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따라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여기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씀은 죽은 후에도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들을 때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후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살아있을 때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따라 살아감으로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는 삶 곧 고난과 비방을 사람들에게 받았지만, 그러나 복음을 따라서 살다가 죽은 후 지금은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소멸이 아닙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은 지금 하나님과 함께 영광 중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당했던 모든 고난과 이상히 여김과 비방을 당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오늘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기에 우리가 죄책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의롭다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를 위하여 그 육체로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때 죄를 짓거나 고난을 받아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주님을 닮아서 기꺼이 고난 받기를 선택함으로 죄를 그치는 삶, 곧 죄와 결별하는 삶을 선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불순종한 날들은 지난 간 날들로 충분합니다. 성도들을 비방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악에 합당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따라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고 고난을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이 소망을 따라서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을 때까지 선한 양심을 따라서 선을 행하며, 선을 행하다 당하는 고난을 인하여 낙심하지 말고, 죄와 고난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고난을 선택하여 죄를 그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