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27)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신 그리스도"
베드로전서 3장 17절로 22절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오늘도 주의 말씀 증거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잘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 곧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도 고난 가운데서도 선을 행하여 아직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주의 백성과 자녀들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1. 먼저 오늘 본문 17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 여기서 말씀하시는 “선을 행함” 곧 ‘선한 행실’은 오늘 본문 앞 구절인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서 말씀하시는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행위가 ‘선한 행실’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선한 행실)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에게 옳고 그름을 마음속에서 판단할 수 있는 영적, 도덕적 의식을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양심이라는 말이 헬라어도 ‘쉰에이데시스’라는 말로서 ‘함께’라는 뜻의 ‘쉰’과 ‘안다, 보다’라는 뜻의 ‘에이도스’의 합성어로서 ‘함께 보고 함께 안다’는 뜻이 양심이라는 말인데, 누구와 누가 함께 보고 함께 안다는 말이었습니까? 사람에게 양심을 주신 하나님과 각 사람의 양심이 그 사람 자신이 행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인지 옳지 않은 일인지를 함께 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윌리암 퍼킨스는 양심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부재판관’이라고 하였습니다.
2) 범죄 이전의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법을 왜곡 없이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도 부패하게 되어 ‘더러운 양심’이 되었습니다. 이 ‘더러운 양심’을 방치하여 계속적으로 양심을 가책을 억제하고, 죄와 악을 행하면 양심의 감각이 둔화되어 ‘화인 맞은 양심’이 되는데, 이 ‘화인 맞은 양심’은 죄를 지어도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르고,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는 상실한 마음의 상태를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화인 맞은 양심’은 오직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없으면 절대로 죄에서 돌이키지 않게 됩니다.
3) 이 ‘더러워진 양심’이 회복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 대로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더러워진 양심을 씻음으로 ‘깨끗한 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깨끗해진 양심’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선한 양심’인데, 이 ‘선한 양심’을 따라서 행하는 일이 바로 ‘선한 행실’입니다.
2. 오늘 본문 17절 상반절에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선한 양심을 따라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래서 둘째로는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선한 양심을 따라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선을 행할 때, 선을 행한 결과가 때로는 고난인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수하고 잘못하면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마음이 넓은 사람들처럼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조그만 잘못을 행하면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바늘만한 잘못을 몽둥이만한 잘못을 범한 것처럼 과장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깎아 내리고, 고난과 핍박이라는 박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늘 선한 양심을 따라서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하고,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도리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삶,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은 징계로서의 고난입니다. 자신의 실수와 죄로 인해서 치르는 값인데, 여기에는 영광도 없고, 양심의 위로도 없으며 단지 후회와 고통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받는 고난은 주님을 따르고 닮아가는 삶이요, 이 삶에는 평강도 있고, 상급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3. 오늘 본문 18절에서는 선한 양심을 따라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삶,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선한 행실을 실천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오늘 본문 17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 베드로 사도는 18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아야 이유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 구주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선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부당한 고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앞서 베드로전서 2장 20절로 21절에서 하신 말씀을 표현을 바꾸어서 반복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로 21절 함께 읽습니다)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여기 베드로 전서 2장 20절에서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7절의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과 같은 표현이고,
베드로전서 2장 20절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는 말씀은 베드로전서 3장 17절의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라는 말씀과 같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21절의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8절 상반절의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반복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선한 양심을 따라서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고난을 받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8절에서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신 모범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은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게 된다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당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닮게 하시는 부당한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을 인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4. 오늘 본문 18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시기 위한 죽음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여기 “단번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신 사건을 말씀하는데, 예수님의 “단번에” 죽으신 이 일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핵심적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신 단회적인 사건, 곧 역사 속에서 단 한 번 있던 그 죽으심과 부활이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일로서, 이 일을 이루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신약 성경 다른 곳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건을 단번에 이루신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① 로마서 6장 10절에서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은 죄를 범한 죄인 된 우리가 받아야 하는 죄의 책임과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해결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로마서 6장 10절에서도 이 일을 “단번에” 이루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단 한 번의 죽으심을 통한 속죄의 제사를 인하여 완전하고 충분한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셨다는 말씀입니다.
② 히브리서 7장 27절, 9장 12절, 26절, 28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사가 “단번에” 드려진 제사인 것을 이렇게 여러번 강조하시는 것은 구약시대 성전에서 수 없이 반복된 동물제사와 구별되는 참 제사인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성전에서 드려졌던 모든 제사는 범죄한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이니 동물로 아무리 많이 제사를 반복하여 드려진다 해도 그것은 항상 예표일 뿐이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참도니 제물과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수님께서 단번에 드리실 참 제사의 예표일 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절로 7절에서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세시대 처음 성막의 제도를 주셨는데, 그 때가 주전 1400여 년 전입니다. 예수님 시대까지 1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막과 성전에서 드려진 황소와 염소의 수많은 제사는 예수님께서 그 몸으로서 드리실 참 제사의 예표였습니다.
그래서 4절 말씀대로 예수님 당시까지 성막과 성전에서 드려졌던 수많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면, 히브리서 10장 1절 하반절로 2절에서 “1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라는 말씀이 반대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구약 율법의 한 부분으로 주신 의식 법에서 규정한 성전의 제사 제도, 곧 동물제사는 사람의 죄에 대한 진정한 속죄의 제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 말씀은 다윗의 지은 시편 40편 7절 말씀으로서 다윗은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 제사와 예물 보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 곧 구약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를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은 오실 메시아께서 온전히 구약을 성취하실 분이신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두루마리 책 곧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러 오셨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구약의 예언의 핵심은 바로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속죄를 완성하심으로, 당신의 피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을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히 10:14)신 것임을 히브리서 10장 7절 다음 구절인 8절로 14절에서 말씀해 주시시고 있습니다.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여기 8절에서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신 말씀과 9절의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라는 이 말씀도 시편 40편 6절과 8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시편 40편 6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7절에서 인용한 시편 40편 7절에서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한 구절 앞에 있는 시편 40편 6절의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라는 말씀을 히브리서 10장 8절에서 인용하여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라고 인용하여 설명을 하고 있고,
또한 히브리서 10장 9절에서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라는 말씀은 시편 40편 8절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귀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실 때, 다윗은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는데, 여기 두루마리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구약 성경을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어서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장차 오셔서 메시야께서 이루실 일을 예언하는 메시야 시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가 아니라, 장차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을 두루마리 곧 구약 성경에 기록하여 놓으셨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이루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일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0장 9절에서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 구절인 10절에서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7절에서는 구약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의 핵심이 바로 예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인데, 8절에서 그 일을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가 아니라고 하시고, 9절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데, 첫째 것 곧 구약의 제사 제도를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신 후 10절에서 그 일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계시는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이루신 바로 그 일은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또한 완벽하게 단 한 번의 제사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는지를 히브리서 10장 11절로 12절에서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11절에서는 구약의 제사로는 완전한 속죄가 불가능하기에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는 제사였으나, 12절에서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참 제사장이시고, 참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택한 백성의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십자가의 제사는 ‘죄를 위한 한 영원한 제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백성인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더 이상 드릴 제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드리실 한 영원한 제사의 예표의 제사가 구약의 모든 제사들이었는데, 그래서 참 제사장의 예표인 구약의 제사장들은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려야 했으나,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을 참된 제물로 삼아 단번에 한 영원한 참 제사를 드리셨기에 더 이상 우리의 죄를 위해서 드릴 속죄의 제사가 남아있지 않기에 모든 제사장의 제사 임무를 마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 10장 13절에서는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두실 때가 이르는 날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예수님 재림의 날에 다시 이 땅에 임하시어 모든 원수들을 심판하실 때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의 효력이 어떠한지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에 대한 책임과 심판과 저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드리신 단번의 제사로 완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베드로전서 3장 18절의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3)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제사는 히브리서 13장 15절로 16절에서 말씀하시는 두 가지 제사만 남아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에게 남은 첫 번째 제사는 15절 말씀대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아들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받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드려야 하는 “찬송의 제사”입니다.
이 찬송의 제사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하시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찬양과 고백입니다.
뿐만 아니라 “찬송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이 믿음을 고백하고, 신앙고백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찬송의 제사”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두 번째 제사는 16절에서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라는 말씀대로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않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이런 선을 행하고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근거하여 받은 사랑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5. 또한 오늘 본문 1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죽음이라고 말씀합니다.
1) 하나님의 공의대로만 하면 모든 죄인들은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형벌은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 중에서 구원할 자를 택하셨고, 그 구원의 방법은 죄인의 죄를 대속하시는 방식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셨고, 마가복음 2장 17절에서는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이 세상에는 죄인 편에 서는 자는 없습니다.
로마서 5장 7절로 8절에서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죄를 범하지 않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의인에서 더 나아간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자가 혹 있을 수 있거니와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이 땅에서는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어주는 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사랑 때문인 것을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서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의롭고 선한 일에 찬사를 보내고, 의롭고 선한 일에 지갑을 열고, 의롭고 선한 명분을 위하여 전쟁도 하고 싸움도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인 괴수인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 복음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6. 또한 오늘 본문 18절에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들인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1) “불의한 자” 곧 ‘의가 없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습니다.
잠언 12장 28절에서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의가 없는 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곧 의가 없는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설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생존권이라고 말씀입니다.
2) 그러나 로마서 5장 18절에서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이 한 의로운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실 때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8절에서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휘장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1년에 오직 한번 대속죄 일에 속죄소에 뿌릴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로 죄 씻음을 받은 구원받은 백성들은 아무 때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10장 20절에서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몸이 못과 창에 찢기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지성소 앞의 휘장을 찢으시고 길을 열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육체를 찢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휘장을 찢어 주시고 예수님께서 먼저 들어가셨기에 우리도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6장 19절로 20절에서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 동산인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내쫓으시기 전에, 범죄함으로 죄가 상징하는 어둠에 처한 그들은 빛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워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고,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치마로 그 수치를 가릴 수 없어서 동산 나무 사이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에서 추방하시는 것 이전에, 먼저 그들이 죄를 범하여 어두워짐으로 빛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였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한 공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의 수치를 가릴 수 있는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주셨는데, 그 가죽은 그들의 죄로 인한 수치와 죄의 책임을 가려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수치와 죄의 책임을 대신 담당해 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죽 옷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은 자만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막혔던 문인 휘장이 열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오늘 본문 18절에서 마지막으로 이 일을 이루시는 방식이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심으로 이루신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그 “영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그 “영”이라는 말은 성령으로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으나, 그러나 육체로 죽으셨다는 말씀과 대비를 이루기 위하여 하신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신성의 능력으로 죽음 가운데 살아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와 똑같은 교훈을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 3절로 4절에서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3절의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말씀은 육체를 입으신 참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4절의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할 때 “성결의 영”이라는 표현도 성령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지신 신성을 의미한다고 칼빈은 증거하였습니다. 요한 사도 역시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에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말씀함으로 신성을 가지신 성자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단번에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인데, 그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시고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 바로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는 표현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바울 사도와 요한 사도처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으신 참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참 사람을 입으셔야 했고, 또한 택한 백성 모두를 위하여 대신 고난을 받으실 때 무한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내시고, 사망의 권세에 몰락되지 않으시고, 대속의 값을 온전히 지불하시기 위해서는 신성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죽임을 당하시고, 신성으로 죽임을 죽이시고 부활하심으로 참된 의인이신 주님께서 불의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8. 이 놀라운 대속의 사건은 의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부당한 고난을 받으심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놀라운 구원 곧 부당한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선을 이루신 사실을 인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도 주님을 닮아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그 고난을 기뻐하는 자들이 되라고 베드로 사도가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받는 고난은 그 결말에 은혜를 주십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죄를 짓자고 유혹할 때 굴복했다면 누명을 쓰고서 바로의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을 것이나,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범죄하지 않고 선을 행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인하여 그는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온 땅의 사람들이 가뭄으로 인한 기근으로 고통받을 때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정착시키고 보호하는 큰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선을 행하여도 고난이요, 악을 행하여도 고난을 받으나 두 고난은 같은 고난이 아닙니다. 악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은 쓸모없는 것을 불에 태우는 것과 같아서 고통과 불명예 외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할 때 당하는 고난은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뜨거운 풀무불에 금을 연단하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또는 주님처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합니까?
이미 앞서 살펴본 대로 9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욕을 하는 자들에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에게 악을 행한 사람에게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으나, 보복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모든 원망을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하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 같이 악을 행하는 자들을 위하여 복을 비는 그리스도를 닮은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사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신 그리스도를 닮아서 우리도 부당한 고난에도 선을 행함으로 아직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악인에게 행하는 최고의 선은 그들에게 말과 선한 행실을 통하여,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빎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