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
고린도전서 15장 35절로 49절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1. 오늘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의 죄를 대신 속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무덤에서 장사되신 후 사흘 되던 날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기록된 고린도전서 15장 1절로 4절에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다시 알게 한다고 하시고, 2절에서는 이 복음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시고 3절로 4절에서 복음의 핵심을 말씀하시는데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 사도가 전한 복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 부활하신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시어서 그들로 부활의 증인을 삼아주셨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12제자들과 그 후 일시에 5백여 형제에게 보이셨고, 육신의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신 후, 맨 나중에서는 핍박자 사울에게도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 주셨는데, 당시 사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을 나사렛 이단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자들을 잔멸하려던 복음의 대적자였습니다. 그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시어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한 두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한다면 환상을 보았을 것이라고 치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부활하신 후 5백여 형제에게 나타나 보이셨다고 말씀합니다. 5백명이나 환상을 보고서 똑같이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자들은 정신과 인격의 혼란을 겪은 자들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현실 속에서 온전히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자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보내주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뿔뿔이 흩어지고, 사람들이 잡으러 올까봐 방에 숨어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두려워 떨던 자들이었는데,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권능을 받은 후로는 모진 박해 곧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초대 기독교 역사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2)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여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는 대로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도 부활할 것을 믿는 산 소망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3.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45절로 49절에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제기했던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자세히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 35절에서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던진 2가지 질문을 사도가 소개하고 있습니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 편에서 던진 두 가지로 질문 중 첫 번째는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①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 일부가 부활을 믿지 않고서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으며, 만일 부활한다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냐’라고 묻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당시 고린도는 헬라 철학의 영향력 아래 있던 도시인데, 플라톤의 이원론으로부터 출발한 영지주의 사상이 당시 철학의 주류사상이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주장은 ‘사람은 영혼은 선하데, 육체는 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니 빨리 죽어서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철학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고정 관념으로 박혀 있으니 몸의 부활에 대하여 사도가 가르칠 때, 그들은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참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왜 다시 육체를 입어야 하느냐’라는 생각으로 부활을 믿지 않았고 부인했다는 말입니다.
② 초대교회 교부 중의 한 사람인 터툴리안은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철학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인성과 철학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는데, 사두개인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이 분명하게 부활을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성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부활을 말씀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시편 16편 10절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 사도도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라고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13장 35절에 시편 16편 10절을 인용하여 “다른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어떤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마태복음 22장 23절로 28절인데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며, 영생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은 주로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 및 왕족출신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연히 내세보다는 현실에 대한 집착,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열망이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신학은 현재 지향적이 되었고, 내세나 영원이나 천사나 영혼, 부활 같은 말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고, 그들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죽는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현재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 기득권만이 유일한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범죄하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멸절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몸의 부활을 믿지 않으려 하였지만, 그들은 영혼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린다고 믿었습니다. 영지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선한 영혼이 악한 육체를 또 다시 입을 필요가 없다는 차원에서 몸의 부활을 부인한 것이지 영혼이나 영생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사두개인들은 죽으면 몸도 영혼도 모두 멸절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 다른 점이었습니다. 이들 사두개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형제가 한 여인을 아내로 맞았는데, 부활의 날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고 묻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마태복음 22장 29절로 32절에서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여기 32절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3장에서 6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만 드려다 보아도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의 몸이 죽을 때 사두개인들의 주장처럼 아브라함의 영혼도 죽어 없어졌다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과거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으며,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그들의 몸과 영혼이 함께 다 죽어서 멸해진 상태라면 그들은 과거의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록 그들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그들도 부활의 몸을 입겠지만, 그들은 영혼으로 낙원인 천국에서 살고 있기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요, 결론적으로 32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을 기다리며 그들의 영혼이 낙원 곧 천국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우리와 함께 주를 섬기던 성도들 부모와 친척과 남편과 아내들이 이 낙원 곧 천국에서 주와 함께 거하고 있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영적인 실상입니다.
3) 사두개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이었기에 천국이 아닌 이 땅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행하는 세상에 속한 일들은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일들이 잘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잘되게 하신 일을 따라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낙심하거나 좌절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환경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자들로 바꾸어 주십니다. 성도의 삶의 환경 이전에 성도를 바꾸어 주시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눈에 보이는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말씀 중심, 그리스도 중심, 장차 들어가 영생을 누릴 천국 곧 위엣 것을 찾는 자들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지 않고, 사두개인들처럼 현실에 두고, 영혼도 영생도 천국도 없고 오직 이 땅 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이 땅에서 원하는 최고의 삶, 곧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고 누리고 소유하고 맛보고 살아가는 최고의 복을 누린다 할지라도 주님이 약속하신 하늘나라의 영광에 비하면 그것을 지푸라기요, 먼지와 방불하며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아침 안개와 같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도 몰랐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삶의 조건이 남보다 좀 나은 자신들의 현실에 안주하여, 죽음으로서 이 땅에서 육체도 영혼도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성경의 진리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4. 첫 번째 질문에 곧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느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사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울 사도는 36절에서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사도는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라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죄를 범한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심을 받은 본래의 상태에서 타락하여 아래로 떨어짐으로 지성이 어두워졌습니다.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인간의 지성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1절로 22절에서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지성의 타락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왜곡되어 양심을 거스르고, 거짓을 더 쉽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무지가 벗어지고 사람이 진실로 총명해질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은혜 가운데 말씀으로 무장되는 길 뿐입니다.
2)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사도의 두 번째 대답은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계에 허락하신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싹을 틔우고 꽃이 피어 열매를 맺고 결실하게 되는 원리를 들어서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는 다시 살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생명의 호흡이 멈추어 버린 몸은 존귀하지도 않고 아무런 소망도 없어 보입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믿음 없는 사람들도 압니다.
그러나 사도는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땅에 뿌려져 그 씨앗이 그대로 있으면 새로운 생명이 나오질 않습니다. 농부는 새로운 곡식을 얻기 위하여 씨앗을 뿌리고 흙으로 덮고 물을 주어서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잎이 나오고 줄기가 솟고 꽃이 피어 곡식이 맺히기를 기대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논과 밭에 떨어진 씨앗이 땅에서 죽는 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투박한 쇳덩이가 쓸모있는 농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풀무불에 들어가 달궈지고 형질이 연해질 때 두들겨 맞아야 농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행사, 곧 부활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씨앗 하나가 자신을 희생하여 많은 열매를 거두는 원리로 부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썩어야 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 속에다 죽어야 사는 원리는 가르쳐 주셨는데, 씨앗이 죽고 그 씨앗에서 새로운 형제가 나와 잎과 줄기와 꽃과 열매가 더 많이 맺히는 피조세계의 질서를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 몸이 죽은 자를 영광스런 몸으로 다시 살게 하시는 영적인 원리도 깨달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시고,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으로 하신 것이지만, 죽어야 다시 사는 원리는 십자가의 대속뿐만 아니라, 신자 개인의 부활에서도 같은 원리입니다. 성도의 몸이 죽어야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5. 두 번째로 고린도교회 신자들이 부활을 불신하면서 던진 또 하나의 질문은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있다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느냐?’는 것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지금과 다른 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느냐라는 질문은 ‘만약 부활한다 하여도 이전과 같이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몸이라면 그런 몸으로 부활하는 것은 다시 죽을 몸으로 사는 것이니, 그런 부활이라면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는가?’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사도 바울의 첫 번째 대답을 37절로 38절에서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느냐? 죽을 때의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면 그 몸은 다시 죽을 것인데, 구지 그런 몸을 입을 이유가 무엇이냐?’ 라고 묻는 자들을 향하여,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를 뿌리지만, 뿌려진 각 종자에게 그 씨의 특성에 맞는 형체를 주시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사람이 처음 보는 씨를 땅에 뿌린다면, 어떤 형체가 나타날 것인가는 더 더욱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씨앗을 창조하시고 그 씨앗 속에 형태를 숨기신 하나님만 아시는 일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죽은 자가 ‘어떤 몸으로 오느냐? 같은 몸, 같은 모양과 같은 크기와 같은 성질로 오느냐? 다른 무엇으로 오느냐?’라고 묻는 말에 대하여 ‘당연히 새로운 몸으로, 더 완전하고 온전한 몸으로 온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죽어서 썩을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면 그 부활은 영광스러운 부활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씨앗이 큰 변화를 일으키듯이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할 때의 몸은 형체가 전혀 다른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는다는 말씀입니다.
6. 어떠한 몸으로 다시 부활하느냐를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두 번째 대답은 ‘부활 때 입을 육체는 지금과 같은 육체가 아니다’라고 39절로 4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먼저 39절에서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라고 하십니다.
사람도 육체를 가지고 있고, 짐승도 육체가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육체가 있고, 물고기도 육체가 있으나 다 다르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몸의 구조와 조직과 탁월한 두뇌와 털이 덮이지 않은 매끄러운 피부 등은 짐승의 것과 분명히 다른 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스리라고 주신 짐승과 새와 물고기의 각각의 조직이 다릅니다. 또한 사람에게 음식으로 주신 그 고기의 맛도 다 다릅니다. 사도가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부활체의 몸이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조직과 형태를 취할 것이란 점’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부활 때 우리가 입게 될 육체가 현재와 같은 육체가 아닌 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 땅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과 사람의 육체가 다르듯이 이 땅에서 입고 있는 몸과 부활 때 입을 몸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40절에서는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는 땅에서만 사는 짐승과, 하늘을 나는 새와,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의 영광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모든 짐승의 왕 사자는 당당한 걸음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자가 사나워도 독수리는 공중으로 날아가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땅에 사는 것과 하늘을 나는 것과 물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의 영광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님 재림의 날에 입게 될 부활의 몸의 영광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의 모습과 너무나 다를 것인데, 이 땅에서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와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탁월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몸과 우리가 부활의 날에 입게 될 몸은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성경은 성도가 부활의 때에 입게 될 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입으신 몸과 같은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에서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로’라고 말해도 되지만, 몸의 변화를 말씀하는 대목이기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라고 말씀합니다. 그 역사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예수님이 부활 때 입으신 그 몸을 입게 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41절에서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고 수많은 별들도 다 각각 그 영광이 다르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부활 때 입게 될 몸은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몸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휫필드가 4번이나 읽었다고 전해지는 매튜헨리의 주석에서 “해와 달과 별들의 영광이 있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여러 영광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해의 영광은 식물이 자라고 낮에 사람들이 활동할 때 필요한 것입니다.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시를 쓰는 시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영광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천국에서 주님이 입으신 부활의 몸을 입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누리게 하실 영광이 각각 다르다하여도 모두가 누리는 그 영광을 인하여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참된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영광을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 어떤 몸으로 다시 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세 번째 대답을 42절로 49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예수님 재림의 날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은 본질적으로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몸과 완전히 다른 썩지 않는 영광스런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의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1) 42절에서 말씀하시는 부활 때 입게될 몸의 본질은 썩지 않는 몸인 것을 말씀하는데,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몸이 죽으면 그 몸을 땅에 장사 지내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을 장사지내나, 그것은 생명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놀라운 영광스런 사실을 어느 철학자나 어떤 시인이 간파한 적이 없습니다. 믿는 성도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 육체는 다 부패하여 흙으로 돌아가 다시는 사람의 형체를 취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죽었던 자들이 다시 살 때에는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다시는 썩지 아니하는 몸을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 43절로 44절에서는 부활 때 입게 될 몸은 영광스러운 몸인 것을 말씀하는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성도의 몸이 “욕된 것”이라면, 부활 때 입는 몸은 영광의 몸이라고 하십니다. 여기 “욕된 것”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티마’라는 명사로서 ‘수치, 불명예’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 성도의 몸이 “약한” 몸이라면, 부활 때 입을 몸은 “강한”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약한 것”이라는 말의 헬라어의 뜻은 ‘연약함, 아픔, 질병’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서 부활 때 입을 “강한 것”이라는 말은 이와 반대되는 ‘힘, 권능,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성도의 몸은 “육의 몸”인데, 부활 때 입을 몸은 “신령한 몸” 곧 “영의 몸”이라고 하십니다. 칼빈과 델리취는 “육의 몸으로 심고 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도 있느니라”에서 “육의 몸”은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라면 “신령한 몸” 곧 “영의 몸”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몸이라고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매튜헨리는 “육의 몸”이 먹고 마셔야 하는 육신적인 욕구를 따르는 몸이라면 “신령한 몸” 곧 “영의 몸”은 동물적 욕구에서 해방된 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비교를 해도 오늘 우리가 입고 있는 낮은 몸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런 몸을 부활의 때에 입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45절로 49절에서는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이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여기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라고 말씀하고,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생령”이라는 말은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씀이나, “살려주는 영”이라는 말은 ‘죽은 것을 살리시는 전능하신 능력이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도 이 땅에서는 낮은 몸 곧 아담 안에서 “육의 사람” 곧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있습니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었고, 우리는 아담 안에서 그의 몸의 형태에 따라서 육체적이고 썩을 몸을 받았습니다. 아담은 우리의 육체의 원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아담이 흙으로 돌아감 같이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있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러나 재림의 날에는 다릅니다.
인류의 또 다른 머리인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신령한 사람” 곧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신령한 몸’ 곧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레온 모리스는 이 사실에 대하여 “이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습관적으로 아담의 형체를 지녔듯이 내생에서 우리는 주님의 형체를 지닐 것이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8. 오늘 우리는 고린도 교회 성도 중에서 당시 헬라 철학의 교훈인 영지주의의 교훈을 따라서 ‘한번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질문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나느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사도 바울의 교훈을 살펴보았습니다.
1) 우리는 사도가 증거 한 대로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도가 증거한 대로 땅에 뿌린 씨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져 죽은 씨에서부터 아름답고 열매가 풍성한 식물이 자란다는 영적인 교훈을 마음에 항상 새겨야 하겠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덧입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굼벵이가 딱정벌레가 되기 위해서 그 허물을 벗는 변태의 과정이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이,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기 전에 육의 몸 낮은 몸은 먼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 성도에게 주실 영광의 부활의 몸을 생각할 때 성도는 육체의 죽음도 은혜요, 더 큰 복락을 주시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욥기 14장 7절로 9절에서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 속에서 늙고 죽은 것 같은 데서 새 생명이 뻗어 나오는 신비 속에서 사람의 몸이 죽으나,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사는 영적인 진리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일은 말씀으로 온 천지를 6일 만에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요, 반드시 이루실 일입니다.
2) 또한 어떤 몸으로 다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사도는 현재의 낮은 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때 입으신 영광스런 몸을 입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몸은 늙고 병들어 죽어 썩을 낮은 몸을 입고 있으나, 예수님의 재림의 때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은 예수님 부활의 때에 입으신 영광스런 몸으로서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본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령한 몸,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따라서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 곧 영의 몸을 입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찬란한 영광으로 충만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3)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입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결된 자들만이 이 몸을 입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언약의 두 머리인 첫 사람 아담 안에 있든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태어날 때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데,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지 않은 상태는 태어난 본래 그대로의 상태의 사람이라는 뜻에서 영어로는 ‘내추럴 맨’, 우리 말로는 ‘자연인’이라고 부릅니다. 거듭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다음에 영광스런 부활의 몸이 아니라, 지옥에서 그 죄 값을 영원토록 몸과 영혼으로 받기 위해서 합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사람 곧 사도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인 것을 깨달은 사람 곧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나를 대신하여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믿고, 나의 죄가 구주를 죽게 했다는 죄의 대한 애통으로 슬퍼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밖은 나의 죄를 미워하고, 내가 죄를 지어도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때문에 지옥에 가지는 않으나, 선한 일을 위하여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신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하여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주님과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에 교제할 산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이 주님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 이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입고 주와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은혜와 소망으로 주의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 모두를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