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25)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베드로전서 3장 15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오늘도 주의 말씀 증거할 때에 성령님께서 잘 깨닫게 하시고, 본문의 말씀대로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하신대로 소망에 관한 이유가 분명하고 충만한 가운데 순례 길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1. 앞 시간에 베드로전서 3장 14절 하반절과 15절 상반절 말씀을 통하여 “14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1)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을 받는 이유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자들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8절로 19절에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벧전 3:14)라고 하였습니다.

① 그러면 성도들은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는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봐 또한 이미 얻은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데, 성도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비결은 마태복음 6장 30절로 32절에서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② 성도들이 또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성도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것은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에게 가하는 고난과 핍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을 핍박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0장 29절로 31절에서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성도들은 핍박하는 자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③ 세상과 세상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로 근심에 빠지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4절 하반절에서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근심하지 말”라고 하실 때, “근심하다”는 말은 헬라어 ‘타라쏘’라는 단언인데, 그 뜻은 ‘폭풍으로 바다 물결이 뒤 흔들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다 왕 아하스가 북이스엘과 아람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하러 올 것이란 소식을 들을 때에 ‘왕과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더라’고 하였는데, 두려움으로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근심하는 상태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는데, 폭풍이 불어와 물결이 일어나서 바다가 뒤흔들릴 때 두렵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두려움으로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십니다. 만물과 인생의 주재권은 오직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두렵게 할 때 우리는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으시기 원합니다.

2) 저와 여러분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마음에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에서 “거룩”이라는 말은 헬라어 ‘하기아사테’인데 명령법, 능동태, 2인칭 복수형으로서 ‘너희는 거룩하게 하라’는 뜻이고, 거룩하게 하는 대상은 ‘퀴리온 톤 크리스톤’으로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는 장소는 ‘너희 마음들 안에서’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 곧 왕으로 모시고, 그 분만 두려워하고、 그 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이미 거룩하신 주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 두려워하고 주님만 섬기는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분이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주시오, 임금이신 예수님을 거룩하게 하는 삶입니다.

3) 주님을 거룩하게 하는 이 삶은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삶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앞서 1장 16절에서 레위기 11장 45절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거룩하신 주님을 마음에 주, 곧 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한 분만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거룩해 지는 길입니다.

2.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5절 하반절에서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을 위협하고, 또 고난을 가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주님을 거룩하게 섬기며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성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1)그러면 성도에게 곧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는 묻는 자들은 누구이니까?

일차적으로 성도 곁에 있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로서 자신과 가까운 관계인 이 사람이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때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유익이 있기에 이런 고난을 받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때에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가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다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해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때가 전도의 문을 여는 때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는 분명한 이유로 충만하고, 그 이유로 인하여 지정의가 새로워진 삶, 곧 성도가 지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원을 복음을 아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정서가 세상 것을 사랑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성도의 의지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누가 성도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입니까?

믿는 성도들에게 직접적으로 고난과 핍박을 가하는 박해자들의 행동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을 핍박하는 그들이 성도를 향하여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 굳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을 수도 있으나,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하여도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향한 그들의 핍박 곧 선과 의를 행하는 성도에게 악을 행하고 욕을 하는 그들의 행동들이 성도들에게 ‘이런 고난과 악행을 당하고, 욕을 먹으면서도 왜 예수님을 믿느냐 것이냐?’라고 묻는 일로 다가온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앞 선 구절인 3장 9절에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였고, 3장 11절에서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하였으며, 오늘 본문 앞 구절인 14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선과 의를 행할 때 우리를 핍박하는 핍박자들의 그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의 길을 가기를 소원한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대로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세 번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이냐?’ 라고 스스로에게 물보고, 소망에 관한 이유로 충만한 가운데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① 분명한 이유를 알고 가는 길과 이유를 모르고 군중에 휩쓸려 가는 길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이 길을 가는 이유를 알고 있어야하는 이유는,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 길을 감으로 우리의 신앙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환난과 핍박을 능히 이길 수 있고, 천국 본향을 향하여 가는 나그네 길을 힘 있게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이유와 확실한 목적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기고 꾸준히 갈 수 있는 반면에 이 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이 길을 가는 동안 당하는 어려움들로 인해서 마음은 낙심하게 될 것이고, 그 발걸음은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② 또한 만약 이 길을 가는 어려움과 고난에 비하여 길의 끝에서 주어지는 결과가 그동안 겪은 어려움과 고난의 값과 비슷하거나, 그 고난에 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굳이 이 고난의 길을 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들인 정성과 노력과 비용에 대비하여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결과가 주어진다면 그런 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하러 수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얻으려고 고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 길을 반드시 가야 합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입니다. 첫째는 이 길을 따르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기 때문이며, 둘째는 이 길을 가는 성도에게 약속하신 복락이 영원한 영생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장 28절로 32절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말씀해 주시면서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1) 여기 28절로 30절에서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에게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비용이 있는지 계산하라고 하십니다.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여기서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망대를 세우기에 충만한 비용, 곧 그 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인지 따져 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결심하고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였는데, 고난 때문에 바른 신앙의 길을 타협하고 물러선다면, 그것은 신앙의 길을 간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과 영광과 상급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끝까지 완주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락을 온전히 깨닫는다면, 또한 이것을 깨달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의지할 때, 이 믿음의 길을 힘있게 갈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31절로 32절에서 전쟁을 앞둔 한 임금이 적과 싸워서 이길지를 헤아려 보라고 하십니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한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내가 가진 1만의 군사로 대적이 거느리고 오는 2만의 군사를 맞아 싸워 이길 수 있는지를 헤아리고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면, 대적이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힘든 고난의 길인 것을 알았으면 처음부터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전쟁을 앞둔 왕에게 대적과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있을지를 먼저 헤아리라는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하여 청교도 주석가 매튜 폴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시대 전쟁은 자신에게 불리하다 생각되면 동맹과 연합군을 의지하여 함께 싸우듯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성도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나를 도우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예수님을 따를 확고한 결심을 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길에서 포기는 영원한 멸망뿐이니 고난과 핍박과 환난이 있다 하여도 절대로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4. 그러면 성도는 그 마음속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소망에 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이 소망은 일차적으로 베드로 사도가 1장에서 말씀한 천국에 대한 산 소망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로 5절에서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3절에서 말씀하시는대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셨고, 우리 주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으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4절에서 그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는 것인데 이 유업은 “곧 너희(곧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5절에서는 이 구원은 말세, 곧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에게 주실 것인데, 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있는데, 그 방식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은혜를 주심으로 이 산 소망이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영생의 현실이 되게 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천국의 소망은 내일 태양이 다시 뜰 것이란 말보다 더 확실한 약속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면 지금처럼 태양이 매일 뜨는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의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님을 마음에 주 곧 왕으로 삼아 그리스도만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 뜻대로 순종함으로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며, 또한 우리 자신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거룩하게 하고, 또한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이 삶은 천국의 산 소망을 가진 자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2) 둘째로 우리에게 주신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상급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하는 이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 곧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기 위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소망일 뿐 아니라, 고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상급에 대한 소망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두 가지라고 말씀하는데, 그 하나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살아계신 오직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죄를 가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섬기고, 또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의 삶인 선과 의를 행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4장 7절로 8절에서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천국에서 주실 상급의 소망을 가지고 선과 의를 행하며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우리에게 주신 이 소망은 천국에서 주와 더불어 살 영생의 소망입니다.

요한일서 3장 2절로 3절에서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이라는 말씀은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 저와 여러분 모두도 부활의 몸을 입으신 주님과 같은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라는 말씀은 그 주님을 뵙는 일 곧 그 주님과 영광의 몸을 입고 주와 더불어 영원토록 생명의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입으신 거룩한 몸을 입고, 주님과 영원한 교제에 참여하는 영생의 삶을 소망하는 자마다 이 “소망에 관한 이유” 때문에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 소망, 곧 천국을 후사로 물려받게 하시는 천국의 소망과 그 천국에서 주실 상급과 또한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누리게 될 영생의 삶인, 이 산 소망을 따라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5.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대로 소망에 관한 이유를 따라서 이 땅을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이 모세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24절로 26절에서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모세는 하늘에서 주실 상급의 산 소망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높은 신분과 지위를 포기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늘의 산 소망 때문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이미 누리고 있던 그 지위를 포기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좀 더 높은 자리, 좀 더 힘 있는 자리, 좀 더 영광스런 자리를 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불철주야 애를 쓰는데, 모세는 이미 얻은 영광스런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거절하였습니다.

2) 그 대신 모세가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주실 상급이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 보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모세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길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금보다 더 귀한 이 믿음을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믿음의 내용은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라는 말씀처럼 하늘에서 주실 상을 바라보는 하늘의 산 소망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믿음 때문에 “죄악의 낙”과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렸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받는 자에게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죄악의 낙”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상급을 주신다는 산 소망이 없으면 불가능한 삶입니다.

3) 이 모세는 지금 하늘에서 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 위해서 포기한 “죄악의 낙”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재물로 여”긴 삶에 걸맞는 하늘의 복락 가운데 거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지옥 형벌만 면해도 영광 중에 영광입니다. 십자가상에서 회개한 강도와 같이,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복중의 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며, 이 소망을 따라서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삶으로 주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또한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감으로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예비하신 복락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영광의 복락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모세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모되셨을 때, 구약의 성도를 대표하여 엘리야와 함께 산 위에서 주님과 더불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심으로 이루실 진정한 출애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6. 저와 여러분 모두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순례 길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이 구원 곧 산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으심으로 완성하신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은 지옥 형벌을 면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장차 하늘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이을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믿음으로 수고한 일에 대해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며,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사랑의 풍성하고 충만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영원한 지옥 형벌뿐입니다.

1)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준비하되 “항상 준비하되 온유”함으로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여기 “온유”로 준비하라는 말씀은 불신자들이 우리에게 있는 소망에 관해서 물어볼 때 “온유”함으로 대답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루테스’인데, 그 뜻은 ‘성격이 나약하거나 우유부단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강력한 힘’을 말합니다. 본래 이 “온유”라는 단어는 야생마를 잘 훈련시켜서 주인의 의도대로 부릴 수 있는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강력한 힘과 감정 모두를 하나님의 권세 아래 두는 능력이 “온유”입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에게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당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참고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바보 같은 삶을 살아가느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내가 주님께 받은 구원과 사랑, 장차 누리게 될 하늘에서 주신 영광의 기업과 상급과 주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인하여 나는 기쁨으로 이 길을 간다’라고 그 사람 입장과 처지를 고려하여 부드럽게 대답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의 태도가 남의 허물과 악함을 드러내어 정죄하거나,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를 인하여 온유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온유함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증거 할 때 오직 죄인 괴수인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온유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2)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두려움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두려움”은 하나님을 향하여 갖는 태도입니다. 이 “두려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포보스’인데, 그 뜻은 ‘두려움’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어볼 때,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 말고 온유함으로 말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우리의 소망을 말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죄인된 나를 구원하신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잘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고(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권세자들에게 겸손하고(베드로전서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겸손해야 하며(벧전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박해자들과 우리 신앙의 이유와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도 온유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게 복음을 증거하며, 하늘의 산 소망을 따라서 우리가 가진 소망에 걸맞는 거룩한 삶,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