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24) "두려워 말고 거룩하라"
베드로전서 3장 14절로 15절 상반절
“14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오늘도 주의 말씀 증거할 때에 성령님께서 잘 깨닫게 하시고, 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지난주에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4절 앞 부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1) 저와 여러분 모두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지언정, 죄를 범함으로 고난을 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가 죄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은 절대로 복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이 죄로 인한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구속함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합당치 않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2장 20절에서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 고난을 받고 참으면 아름답다고 하실 때 ‘아름답다’는 말이 ‘카리스’ 곧 ‘은혜’라는 것을 살펴 본 바가 있는데, 고난을 받을 때 참고 인내함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평강의 열매는 맺는 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장 15절로 16절에서도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선과 의를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받는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말씀처럼 사도들은 사도행전 5장 41절에서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24절로 25절에서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주님의 제자인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서 주님보다 높은 대접 받기를 바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집 주인이신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 부른 세상이 예수님의 제자들인 저와 여러분을 핍박하되, 선과 의를 행할 때조차 고난을 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할 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 속한 자이기에 세상에서 이런 고난을 받는 줄 아시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영원히 망할 자들이 아니라, 영생 얻을 자이기에 세상이 미워하는 줄 아시고, 주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베드로전서 3장 14절 하반절로 15절 상반절에 기록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를 두렵게 하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고,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4절 하반절로 15절 상반절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구약 이사야 8장 12절로 13절 말씀을 인용하여 당시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8장 12절로 13절 함께 읽습니다.
“12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사 8:12-13).
이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는 용어를 몇 가지만 바꾸어서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4절 하반절로 15절 상반절에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 선지자가 8장 12절 하반절에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라고 하신 말씀을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 14절 하반절에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라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을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가 8장 13절에서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라는 말씀을 베드로 사도가 인용하되 그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여 오늘 본문 15절 상반절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베드로 사도가 이사야 8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이 목양하는 양 무리들에게 전하는 말씀의 핵심은 두 가지인데, 그 첫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도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곧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그들’ 곧 핍박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 또한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자신이 목양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둘째 교훈은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세상에 대한 두려움 대신에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두려워하며 그 분만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생길에서 때때로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성도가 그리스도를 주로 삼을 때 세상과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주님을 거룩하게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고난과 핍박을 마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성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성도를 대적하는 세상이나, 핍박을 가하는 자들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와 주관자가 되시는 주님이시며, 성도의 삶은 이 세상과 핍박자들을 인하여 두려워 떨며 소동하는 것 대신에, 그리스도 한 분만 두려워하고 그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3.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가 당시 백성들에게 이사야 8장 12절로 13절에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라고 말씀하신 배경은 무엇입니까?
1) 이 배경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배경을 알아야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가 더 분명해지기 때문에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사야 8장의 말씀의 배경은 이사야 7장과 열왕기하 15장과 16장에 기록된 앗수르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얽힌 주변의 네 나라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당시 유대 땅을 포함한 지중해 동쪽 연안의 근동 아시아의 패권은 신흥 강대국인 앗수르의 손에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오자, 팔레스타인 지역의 작은 나라들은 생존을 위해서 앗수르와 싸워야 할지 아니면 앗수르와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쳐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는 아람 왕 르신과 더불어 앗수르가 침략하면 함께 싸우기로 동맹을 맺고, 유다 왕 아하스에게 자기들과 함께 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아하스가 볼 때 작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앗수르를 대항한다고 하여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아하스는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의 왕 르신의 동맹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북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의 연합군이 유다를 먼저 공격하여 아하스를 폐하고 다브엘의 아들로 유다 왕을 삼고 자신들이 세운 그 유다 왕과 함께 앗수르에 대항하여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이사야 7장 5절로 6절에서 “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다 왕 아하스와 모든 백성은 두려움에 몸 둘 바를 몰랐는데, 그들의 두려움을 이사야 7장 1절로 2절에서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사람이 다윗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시어서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나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여호와의 약속을 굳게 믿고 굳게 설 것을 이사야 7장 7절로 9절에서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유다를 보호해 주실 것이니 두려워 말고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 내용을 이사야 7장 10절로 12절에서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스 왕의 이 말은 징조가 없어도 여호와께서 유다를 보호해 주실 것을 믿으니 징조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여 이 위기를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구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겠다는 불신앙의 대답이었습니다.
아하스가 실제로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 일에 대하여 열왕기하 16장 7절로 8절에서 “7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스가 이사야 선지자를 만나기 전에 앗수르에 도움을 청했는지, 아니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니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이후에 앗수르의 도움을 청했는지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그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하신 이후에 앗수르에 도움을 청하였다면 그는 정말로 악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아하스를 책망하시는 말씀이 이사야 7장 13절로 17절입니다.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기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후손인 아하스가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는 불신앙을 책망하시면서도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결국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 14절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하실 분은 동정녀 마리의 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시나, 당시 아하스와 이사야 둘 다 알만한 여인이 출산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여인이 낳은 아기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의 나이인, 5세에서 6세가 되는 5년에서 6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 다스리는 땅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서 황폐화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4절로 15절에서 베드로 사도가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 8장 12절로 13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유다 왕인 아하스와 백성들에게 “12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4.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유다의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에게 주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셨고, 베드로 사도가 당시 성도들에게 이사야서에 기록된 이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 이 말씀은 2가지 뜻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1) 첫째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근심하지 말라)”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① 이사야 시대의 두려움에 떨던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이사야 8장 12절에서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근심하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보면 두려워 떠는 자들은 백성 중에서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 “반역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케셰르’인데, 이 단어의 뜻은 ‘음모, 공모, 반역’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라는 말을 ‘이 백성이 반역(또는 음모, 공모)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서 반역(또는 음모, 공모)가 있다고 하지 말라’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역, 또는 음모와 공모는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서 성경학자들은 당시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를 말하나, 이사야 7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말한 대로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려 하고, 또 그들이 다브엘의 아들 중에서 왕을 삼고 앗수르와 더불어 싸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여기서 말씀하는 반역 곧 음모와 공모에 가장 잘 맞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라는 말씀은 ‘이 백성 중에서 음모(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침략하여 유다를 공격하여 아하스를 폐하고 다른 왕을 세운다는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고 그들(곧 유다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는 북이스라엘 왕과 아람 왕)을 두려워하는 자들같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라가 공격을 받아 전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인간 세상에 가장 두려운 일은 전쟁에 패하여 나라가 망하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살아 남은 자들은 노예로 끌려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입니다.
② 이 말씀을 베드로 사도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모두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히 2:15)하는 자들입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남보다 뒤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세상 것을 갖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따라 살아가는 삶, 곧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엡 2:2)를 따라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엡 2:3) 행하며 이 세상을 얻고자 하는 자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이미 가진 것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을까하는 염려로 두려워하며 근심한다 해도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주권자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창조주 여호와의 것입니다. 시편 50편 10절에서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죽을 위기인 곤고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그 죽을 위기를 벗어난 후에 지은 시편 34편 10절에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성도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찾을 때 주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고, 궁극적으로 그의 영혼에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둘째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근심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베드로 사도 시대에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4절의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의 헬라어의 “그들이”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우톤’이라는 단어로서 대명사, 3인칭, 복수, 속격으로서 핍박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들이 두렵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근심하지 말’라고 바꾸어 읽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선과 의를 행할 때 핍박하며, 부당한 고난을 가하고 또 성도를 해 칠 수 있는 자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근심”에 해당하는 말은 헬라어 ‘타라쏘’인데 그 뜻은 ‘뒤흔들다, 요동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말은 마치 거센 폭풍이 바다에 불면 큰 물결이 일어나 요동치듯이, 두려움이 찾아올 때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두려움을 인하여 평강이 깨지고, 놀람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도가 이런 두려움과 근심으로 곧 마음이 뒤 흔들리는 공포와 불안감으로 평강이 깨어지고,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마음에 불안의 물결이 요동치지 않으려면,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 두려워하고, 그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5. 성도가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8장 13절의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라고 하신 말씀을 축약하여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 15절 상반절의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만군의 여호와”라고 하였는데, 베드로 사도는 “만군의 여호와”대신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라고 바꾸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여호와라는 용어를 그리스도로 바꾼 것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여호와라는 용어가 성부 하나님 뿐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라고 하셨는데, 세례 요한이 바로 구약에서 말씀하신 “여호와의 길”의 곧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오실 그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예레미야 23장 5절로 6절에서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였는데, 여기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이름을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에 순종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완전한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실 공의 곧 여호와께서 난 의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신약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은 바로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부를 것이란 말씀입니다.
스가랴 12장 10절에서는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문맥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은 스가랴 12장 4절에서 “여호와가 말하노라”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도 오실 메시야를 여호와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부 하나님도 여호와, 성자 하나님도 여호와라고 말씀합니다. 영광과 권능이 동등한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사 구속을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 두려워하고, 그리스도만을 주로 삼아 거룩한 삶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6. 성도들은 이 세상이나 핍박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1) 우리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28절로 33절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여기 28절에서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하셨는데,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이 세상에 속한 자들 곧 사탄에게 속한 악한 자들을 말씀합니다. 반면에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던져 멸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2)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심판의 권세를 그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과 27절에서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그리스도에게 모든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하신 대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 던져 멸하시는 대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나 그들이 성도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실을 29절에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절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고, 30절에서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귀하다고 하시면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악한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마음대로 해치고 죽이도록 주님께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3) 성도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그 존재의 영광과 성품의 영광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과 무한히 구별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두려움 곧 세상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거나 전전긍긍하지도 말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고난과 핍박을 가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도 근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성도를 지켜 주시고, 주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미움과 핍박으로 인해서 두려움의 공포가 큰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이 요동할 때,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두려움으로 놀라고 평강이 깨어지고 근심이 찾아올 때, 오직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거룩과 능력과 사랑을 묵상함으로 두려움과 근심을 이겨내고 오직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핍박하는 자들이 두려워서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고, 당당히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시인하는 자. 이런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의 편입니다.
7.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두려움 곧 세상을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거나 전전긍긍하지도 말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고난과 핍박을 가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도 근심하지도 말고, 오직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는 것을 우리의 노력으로 주님의 거룩하심에 부족한 것을 채워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이미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위해서 할 일을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미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거룩하신 분’을 ‘거룩한 분으로 높이고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그 방법은 거룩하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가장 높은 보좌에 주님 곧 왕으로 모시고,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분으로 알아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며 주님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는 삶은 그분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자신에게 두려움과 근심이 찾아 올 때에도 엎드려 은혜를 간구하며, 믿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2)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두려움과 우리를 핍박하는 세상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나의 주 곧 왕으로 삼고 살아갈 때 주님의 통치 속에서 우리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이 세상과 핍박하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8장 13절에서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강력한 왕권으로 나라를 통치하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제 나라가 어떻게 될까를 염려하고 두려워하던 때에 성전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하였습니다. 강력한 인간 왕은 죽었으나 이 세상은 그런 왕으로 인해서 나라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그 백성을 붙드시고 구원하시는 분은 성전에 임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변화산 위해서 변모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뵙고 그 영광에 압도되어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 라고 고백하였는데, 누가복음 9장 33절에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그가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압도되어 무아지경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을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의 항복을 받아 내시고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그들을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서 심판하셨으며, 광야 빈들에게 40년간 만나를 주시고 반석을 쪼개시고 물을 주시어서 먹여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들을 풍요의 상징인 우유와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 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고기 2마리 떡 5개로 5천명을 먹이시고 남은 것을 12바구니를 거두게 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 주셨고, 또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인생과 성도를 핍박하는 핍박자들은 먼지와 같을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하여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시어 우리를 구속하신 그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능력을 생각할 때 세상은 어떤 두려움의 대상도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 기도하며 위기를 이겨낸 바 있습니다.
시편 27편은 그 내용으로 보아서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지은 시라고 학자들은 말하는데, 1절로 5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하는데 내 생명은 원수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고백입니다.
2절에서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고 노래하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붙드시니 다윗을 죽이려는 대적들이 번번히 실패한다는 고백입니다.
3절에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지키심을 확신하는 다윗은 전쟁이 일어나 대적이 자신을 대적하고 치려할지라도 자신은 여전히 태연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에게 그런 평강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는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라고 말씀하는데, 전쟁이 일어난 순간에도 다윗의 소원은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나, 빨리 전쟁이 끝나는 것이 자체가 아니라, 여호와의 집 곧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사는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담대히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소망할 수 있는 것은 5절에서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라고 노래하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사모하는 예배와 교제의 복된 거룩한 삶을 사모한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만 바라보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나, 우리도 다윗처럼, 이사야와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의 시선을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향하여 그분의 존재와 성품의 영광을 묵상하되, 창조와 구속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그 성품을 주목할 때,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얻지 못할까를 염려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 것을 걱정하고,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마음에 평강을 잃어버리지 않고, 또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의 핍박과 부당한 고난과 악행을 인하여서도 두려워하여 근심함으로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창조와 통치와 심판과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리스도 한분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 곧 왕으로 삼아 왕 되신 그리스도만을 사랑함으로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이 성도가 두려움 대신 이루어야 할 일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시고 있는데,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더 알게 하시고 의지하게 하시어서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