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구원에 이른 믿음의 표지 (61)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바라보는 사람"
고린도후서 5장 6절로 10절
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I
1. 오늘도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의 참된 표지 하나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기름 부으심을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말씀대로 믿고 행할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성령께서 사도 바울에게 역사하시어 믿고 소망하고 확신하게 하신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택한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와 그 진리와 비밀’을 받고 증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은 그 비밀을 하나님께 받아 증거하고 만 사람이 아니라, 그대로 믿고 소망하고 확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런 믿음과 소망과 확신은 그 사람 개인의 것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대로 믿고 소망하고 확신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 전체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의 본문에서 계속 주어를 ‘나는’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 1인층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우리’를 계속 씁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오늘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고백을 하였는데, 그 신앙고백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참된 것이라면,’ 우리 각자도 사도 바울이 말하는 ‘우리’의 수에 들어 있습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 점을 먼저 지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오늘의 설교를 들으면서 ‘오늘의 본문 말씀의 기록은 사도 바울 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나 같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우울과 연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의 고린도후서 5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고 그 영광의 소망의 확실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와 같이 그런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사도는 말합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 그리스도의 심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이라도 우리 마음은 긴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하여도 일단 거부감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누가 나를 판단한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더구나 ‘근거도 없이 억지를 쓰며 나를 오해하고 판단하고, 그 자기 나름의 오해를 진짜인 것 같이 떠들어 다른 이들이 듣게 선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참기 힘든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경우에는 할 수 없이 일의 진상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판단’에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나 존재의 의미가 결정되거나 변경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말하였습니다.
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이런 고백을 하던 다윗의 처지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수많은 악인들이’ 그를 판단하고 억지를 부려 불의한 자로 몰아가고 심지어 그를 함정에 빠뜨리고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정황에서 다윗은 말하였습니다.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그의 그런 마음의 ‘평강과 담대함’은 오직 한 가지 근거,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구원의 은혜로 늘 두르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구원의 은혜 받은 자만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안다)
다윗은 ‘자기의 생명의 원천과 영원한 보장과 자기 존재의 의미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것과 다윗이 믿은 것이 같습니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므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에게 무엇이라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대하여 무어라 하시며, 그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판단하시느냐’였습니다.
저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모태에서 조성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는 그 하나님이십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우리로 하여금 우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소망 있게 하시고 담대하게 하시고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의 고린도후서 5:10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말할 때 ‘궁극적으로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려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다만 이 말씀이 우리로 긴장하게 하는 것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소망과 담대함과 확신이 그냥 확신(육신의 생각에서 나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에 합당한 거룩한 소망과 거룩한 담대함, 거룩한 확신’을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거룩함’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께 영원히 거룩한 존재로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 ‘거룩함’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그 존재의 가치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던 대제사장 아론의 이마에 하나의 중요한 패를 붙이게 하셨습니다.
출 28: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28: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28:38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3. 그래서 오늘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말한 것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마땅하게 견지해야 하는 중요한 표지 하나를 기억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러므로 교리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사람은 그 마음에 늘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다. -
만일 저나 여러분이 모든 행보 속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생각하는 일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르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합당하게 말씀을 따라 행할 바를 생각하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따르게 됩니다.
지상에서 우리의 믿음의 행보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그리스도께 듣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환난과 박해 중에 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강하게 권면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20세기 최대의 강해설교자요 신실한 목회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 누가 물었습니다.
“목사님께는 지상 생애의 행보 속에서 늘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요?”
“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의 저의 행보가 그리스도 앞에서 어떤 판단을 받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다시 본문을 읽습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의 성화 생활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날 그리스도 앞에서 내가 어떤 자로 평가될 것인지’를 바라보고 그에 맞추어서 믿고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 ‘저와 여러분 모두 서야 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정황’을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로 알게 하셨습니다.
계 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날에, 아담 이후 모든 인류 각 자가 몸을 입고 부활한 채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자기 몸을 입은 채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 그것을 가리켜 성령께서는 ‘둘째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사망은 모든 이들의 몸의 사망이요, 부활한 몸으로 불못에 던져지는 형벌에 처해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 하신 것입니다.
II
1. 여기까지 말씀을 들어온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복잡하고 우울한 생각이 밀려 올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그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데, 내가 그날 어떤 자로 판단될 것인가? 내가 먹는 마음의 생각들과 행한 일들이 그리스도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을 터이고, 그 책에 기록된 내 행위대로라면 나는 정말 불 못에 던져질 것이 틀림없구나. 정말 큰일 났네! 어쩌면 좋을까?” 이런 두려움의 정서가 밀려오고, 그 정서를 따라 ‘내가 그날에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까?’하는 궁리가 여러분 속에 나올 수 있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편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겠지 않아요?’라는 반문이 나올 만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한 것을 지워내기 위한 선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불쑥 밀고 들어 올 수도 있습니다.
“내가 행한 악을 일을 지워 버릴 선한 일을 만들어 내야지” 하는 양심의 발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2. 그래서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천주교의 ‘보속(補贖)의 교리’입니다.
‘보속의 교리’- 죄가 용서된 이후에도 남아 있는 죄의 ‘잠정적 형벌’(temporal punishment)을 인간이 어떤 행위로 보충하거나 갚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주교는 말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책은 사면되지만, 잠정적 형벌은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행하는 행위가 보속이다.”
보속 교리는 중세를 거쳐 체계화되었고,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공식 교리로 확정되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을 주장했습니다.
“죄 사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회개한 자는 죄로 인해 손상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어떤 만족(satisfaction)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죄 + 인간의 선행’의 형식입니다.
그리고 ‘보속 교리는 연옥(purgatorium) 교리’와 긴밀히 연결됩니다. “이 땅에서 ‘보속을 다 하지 못한 경우’ 죽은 후에 연옥에 들어가 깨끗하게 하는 고통을 통해 남은 형벌을 치른다.”
그래서 그런 교리적 연장선에서 면죄부(indulgentia)를 사서 교회에 헌금하면 ‘연옥교리에서 말하는 잠정적 형벌을 경감하거나 면제가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천주교의 교리는 ‘인간의 종교성과 도덕적 양심의 가책을 서로 연결시켜 완화시켜 주는 인간이 만든 기가 막힌, 그러나 거짓된 교리’입니다. 성경은 ‘연옥’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리가 중세 교회사 천년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1517년 루터,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나게 하신 칼빈을 통하여 종교개혁(Reformation)을 하게 하시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1) 오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2) 그 말씀에 따라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행위로가 아니라 (3)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다. (4) 그 은혜를 가지고 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어 구원하신다. (5) 구원받은 사람은 오직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사나 죽으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 천주교의 보속 교리‘는 아주 비성경적인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인간의 선한 행위’로 극복하겠다는 발상이니 그 자체가 잘못입니다. 사람의 ‘선행은 아무리 커보여도’ 그 안에 ‘죄의 오염’이 묻어 있어 하나님께서 죄 사함의 공로로 인정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의 잘못에 대한 책임, 곧 정죄를 하나님 앞에서 지워내는 일이 ‘우리의 선행, 계명을 어긴 것을 회개하고 계명을 이제부터 잘 순종하고 지키는 것으로 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우리의 잘못한 것을 용서하실 때 ‘우리가 잘 하는 것, 우리의 선행을 보시고 용서하시는가요?’
하나님께서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베바를 취한 것을 용서하실 때, ‘그의 회개의 눈물과 그 크게 뉘우치고 통회하는 것을 공로 삼아서 용서하신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고, 죄를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의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그가 부르짖었습니다.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바울이 ‘스테반을 죽인 일과 교회를 잔멸하려는 악을 행하였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것이 ‘그가 회심한 후 사도의 역할을 다하고 그의 헌신과 선행과 박해의 고난을 참고 당한 것을 공로에 근거한 것인가요?’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4. 그러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우리의 구원,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고 영생을 얻은 것의 오직 유일한 근거는 오직 하나 –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 효력 -에 있음’을 강력하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로마서 3:20-24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확증하여 말합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이미 끝났습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III
1. 그러므로 사도가 여기 고린도후서 5:10에서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말한 것은 ‘그 날에 내가 몸으로 행한 바를 따라 주시는 영생을 얻으려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 모두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바를 따라 받으려 함이라”는 말씀 속에서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바를 따른다’는 말은 ‘우리의 도덕적 행실’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의 가장 기본은 어떤 부분을 해석할 때, 그 부분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본문의 근접 문맥,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교리 체계에 비추어 넓게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의사가 어느 부분을 수술할 때, 그 부분만 집중하여 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중요하게 ‘몸 전체의 생명의 체계’를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그 연관 속에서 ‘그 부분’을 수술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선악 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하는 말씀 속에는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착했는가, 아닌가를 보는 그런 행위적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차원에서 ‘선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악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식의 차원에서의 ‘선악’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선과 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 - ‘아버지의 뜻이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은 그 하나님의 듯을 거역하고 받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선한 뜻’은 무엇인가요?
마태복음 7장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너희를 모른다’는 말을 들을 거짓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 대속의 은혜만’으로 옷입고 그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행하 바’를 자랑하는 자로 나타납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이들은 다 자기 행한 바를 자랑하고 있다)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성령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하시어 중생하게 하시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믿는 우리 속에 내주하십니다. 그것이 참 믿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뜻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 대속의 은혜’만을 의존하고 자기의 행위를 전혀 보태어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우리 위하여 그분 행하신 것만 자랑합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2.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그 즉시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무서움과 비참’의 심판대가 아니라, ‘영광과 소망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은혜에 합당하게 행한 일에 대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칭찬의 상급의 심판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빌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3.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몸으로 행한 일을 따라 받는 상급도 ‘공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바라보며 ‘담대함과 거룩한 두려움’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서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행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을 결코 헛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잘했다 하시는 칭찬과 상급’이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24장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씌워주신 면류관을 보좌 앞에 벗어 던집니다.
계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바울은 육신을 벗은 후 영혼이 누리게 될 하늘의 아버지 집과, 최후의 그리스도의 심판날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체와 같은 몸의 부활과 그 소망을 인하여 기뻐하며 거룩한 담대함으로 말합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5: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