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22)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

베드로전서 3장 13절로 14절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에 성령께서 잘 깨닫게 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오늘 베드로전서 3장 13절로 14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향하여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시면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 이 편지는 받아 본 초대 교회 성도들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는 말씀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라는 이 말씀을 받아서 읽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 편지를 받아 보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늘 우리와 같이 자유민의 신분으로 신앙의 자유와 물질의 풍요를 누리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의 성도들은 사환 곧 노예의 신분이었고, 노예가 아닌 자유민이라도 기독교를 믿어도 되는 공인된 종교로 인정하지 않던 로마의 통치 아래서 고난과 핍박 곧 박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대다수가 노예의 신분으로 또한 고난과 핍박이라는 신앙의 박해로 인한 어려움 속에 살고 있던 성도들에게 ‘현재는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이 어려움은 언젠가는 지나갈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선을 행할 준비를 하고 있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과 폭풍이 몰아치는 박해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열심으로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 그러면 사도 베드로는 왜 고난의 현장 속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열심으로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열심으로 선을”에서 “열심”이라는 말은 명사, 주격, 복수형으로 그 뜻은 ‘열심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요, “선”이라는 말은 ‘선한, 착한, 좋은’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그래서 “열심으로 선을”이라는 말은 ‘선한 일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선하다는 말이 구약에서는 ‘토브’라는 단어요, 신약에서는 ‘아가토스’인데, 성경에서 ‘선하다’라는 이 단어는 본래 하나님께만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이 ‘선하다’라는 말이 사람에게 사용될 때에는 아담의 후손들 곧 본성의 원리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대속의 은혜로 구원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선하다’는 말입니다.


3) 그래서 이 ‘선하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시는 말씀입니다.

“열심으로 선을”이라는 말이 ‘선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은 성도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선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들’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열심으로 선을’ 행하여야 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선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들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선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의 삶을 마땅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삶은 지난주에도 살펴 본 바와 같이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가르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4) 구약에서 ‘선하다’는 말인 ‘토브’라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과 말씀 곧 율법을 주신 일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일을 말씀하시면서 그 일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먼저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일이 선하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창세기 1장 4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에서 여섯 번이나 말씀하셨고, 사람을 지으신 여섯째 날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선한 것인데, 모든 창조를 이루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창조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 곧 선한 것이라면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재창조는 더 선한 일입니다.

② 그래서 재창조를 상징하는 애굽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여 내신 일이 선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8장 9절에서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라고 말씀할 때 “은혜를 베푸사”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알 콜 하토바’인데 ‘모든 좋은 것을 인하여’라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모든 좋은 것은 바로 이어지는 말씀인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신 출애굽의 은혜를 말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한 일’입니다.

③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한 일은 율법을 주신 일입니다.

신명기 30장 15절에서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생명과 복과”에서 “복”이라는 말이 ‘토브’라는 말인데, ‘선한 것’, ‘좋은 것’을 “네 앞에 두었”다고 하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결정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신 ‘율법’입니다. 율법대로 사는 자에게 그 율법은 생명과 복 곧 ‘선한 것’이요, 그 율법대로 살지 않는 자들은 ‘사망과 화’를 면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대로 순종할 때 그 생명과 복 곧 좋은 것, 선한 것을 누리는 복을 가나안 땅에서 대대로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④ 네 번째로 그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신 일이 ‘선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민수기 10장 29절로 32절에서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말할 때 “복을 내리리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디벨 토브’라는 말로서 ‘좋은 것을 약속하셨다’는 말을 ‘복을 내리리라’라는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좋은 것은 바로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일,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속하신 일, 언약백성에 율법을 주신 일, 또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민이 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행하신 선하신 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길을 잃은 양 무리의 선한 목자로 오셨는데, 그 백성에서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양들을 위하여 내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선한 목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곧 선한 일로 지으신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입니다.

5)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또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선한 삶이 우선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핍박과 고난이라는 박해 아래 있다 할지라도 그 박해를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제일가는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라 하더라도 인생 최고의 목적은 여전히 동일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인 선한 일을 행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고난과 핍박이라는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에게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시고,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도, 그렇게 사는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고난과 핍박이라는 박해 이외에 성도들로 하여금 ‘선한 일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도로 하여금 선한 일에 힘쓰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 요소는 타락한 본성의 소욕 곧 욕심에 미혹되어 죄악을 따라 살아갈 때 선한 일에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의 고통 하는 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2절에서는 “돈을 사랑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3절에서는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다고 하시고, 4절에서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고 하시며, 5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시고, 6절에서는 그 시대가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된 시대라고 하시고, 7절에서는 욕심에 끌린 자들은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시대가 말세의 고통 하는 때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자극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을 추구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 이 세상과 세상 정신입니다. 이것을 요한 계시록 17장에서는 큰 음녀 바벨론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라도 타락한 본성의 소욕에 굴복하여 탐욕에 빠지거나, 죄를 범하게 되면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삶, 곧 ‘선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 삶에 무감각하게 되고, 선을 행할 열심이 사라지고 또 선을 행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3. 그러면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시는 선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의 백성을 삼으신 은혜를 높이고 찬미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선한 일 중의 하나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일이 선한 일인 것을 살펴보았는데, 구원받은 성도가 추구해야하는 선한 일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가를 더욱 더 깨닫고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인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높이는 예배가 선한 일입니다.

2) 또한 선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율법 곧 계시의 말씀을 주신 것이 선한 것이란 것을 살펴보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진리 곧 말씀의 바른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사람 각자가 생각하는 선은 진정한 선할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에 서서 그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선입니다. 기준과 진리가 없으면, 자기 혼자 선하고 착한 것입니다. 악인들도 가족에게는 선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말하는 사람 중에서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장 선한 행위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기준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참된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인 말씀을 주셨고, 또한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시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는 선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베드로 사도가 본 서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추가해야 할 선한 행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6절 이하에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그리스도인의 선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라의 국민으로 왕 곧 권세자에게 순종하는 삶이 선한 삶입니다. 사환 곧 종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순종하고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순종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에서 순종하는 것이 선한 일이며, 남편들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또한 믿는 형제를 향하여서는 마음을 같이하고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겸손히 행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불신자들이 악을 행하고 욕을 할 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 곧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선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3) 특별히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에는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지난 시간 살펴 본 11절 말씀에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따르”는 일 이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악에서 떠나는 것이 일차적인 일이요, 그 다음에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로 15절에서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사귈 수 없습니다. 의와 불법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죄악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셨는데, 선하신 하나님을 닮은 백성과 자녀로서 우리도 악을 떠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악은 악한 영 사탄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악에서 떠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을 행하려면 반드시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악에 거하면서 행하는 선은 선이 아닙니다. 도둑질한 돈으로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1장 10절로 13절에서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4. 오늘 본문에서는 “선을 행하”되 “열심으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여기 “열심”으로라는 말이 헬라어로 ‘젤로타이’라는 말인데, 이 말의 어근은 ‘부글거리다. 끓다. 흥분하다’라는 ‘제오’에서 온 단어로서 “열심(젤로타이)”이라는 말은 ‘열심이 있는 자, 사모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 “열심(젤로타이)”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제자중의 하나인 ‘셀롯인 시몬(Simon the Zealot)’을 소개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셀롯’이라는 말이 “열심(젤로타이)”라는 말인데, 이 ‘젤로타이’라는 단어에서 영어로 열심당원과 광신도를 뜻하는 ‘젤러트(Zealot)’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셀롯인 시몬’이는 말은 ‘셀롯’이라는 지역 출신의 시몬이라는 말이 아니라, ‘열심당원인 시몬’이라는 말입니다.

이 “열심(젤로타이)”이라는 단어에서 영어의 ‘질투’를 뜻하는 ‘젤러스(Jealous)’라는 단어도 나왔습니다. 이 열심당원들의 행한 일 중에 가장 유명한 일은 로마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맛사다라는 높은 요새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960여명이 최후를 맞이하였는데, 이들이 열심당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인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은 ‘선을 위하여 열심 내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인데, 선을 행하기 위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오직 선을 행하는 것에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직 그 일만 이루고자 하는 질투심으로 선을 행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도 ‘선한 일을 위하여 열심 내는 자’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5. 이렇게 선을 행할 때 아무도 그들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할 때 아무도 그들을 괴롭게 하거나 선을 행하는 것을 욕하고 비방하는 자가 없을 것이란 말씀이 아닙니다. 바로 다음 구절인 14절에서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선을 행할 때 고난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16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17절에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여기 13절에서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곧 너희는 해할 자가 없다는 말씀은 2가지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데, 첫째는 이 땅에서는 선을 행하는 자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는 있으나, 그런 어려움들이 궁극적으로 믿는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 곧 믿음에서 떠나게 하지 못한다, 곧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하늘의 산 소망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을 꺾을 수 없다는 말씀이요, 둘째로는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자들을 어느 누구도 이 땅을 떠난 후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6. 그러면 우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해야 ‘선한 일을 위하여 열심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선한 일에 대하여 열심 내는 자’로 살아야 하는데, 열심(Zeal)이라는 단어는 열심당원들을 설명하던 단어였는데, 이 열심이라는 말은 뜨거운 열망을 뜻합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열심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을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있을 때입니다.

뜨거운 열심은 결심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결심으로는 잠시 잠깐의 열심은 낼 수 있을 뿐입니다. 오직 끝까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선을 행하려면 우리의 심령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구원의 기쁨의 샘이 터져야만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39절에서는 ‘그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 이 땅에 보내 주신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내주하십니다. 우리 심령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에 은혜로 저와 여러분 모두를 충만하게 하시고,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인하여 우리 심령 속에서 생수의 강, 곧 구원의 기쁨과 감격의 샘이 날마다 충만히 솟아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우리 수준의 선과 의를 행한다 하여도 갚을 수 없는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인 것을 온전히 깨닫게 하시어서,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 받아야 마땅한 자에게 영원히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신 은혜를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로 믿는 형제가 때로 우리를 서운하게 하는 100데라니온의 빚을 탕감해 주고,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를 핍박하는 부당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선한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 둘째로 우리가 ‘선한 일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로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위해서 고난과 수많은 유혹을 능히 이기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재창조의 가장 큰 선하신 일을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 같이 힘써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의 내용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 후에 주님은 유대 군병들에게 잡히셨고, 고난을 받으셨으나, 능히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이기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아서 고난과 핍박이라는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또한 세상과 사탄의 미혹에도 넘어지지 않고, 주 안에서 이기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도우심을 입어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 모두의 심령 속에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주시는 힘과 은혜로 ‘선한 일에 대하여 열심 내는 자’로 지으심을 받은 성도로서, 우리가 받은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되, 권세자에게 순종하고, 부당한 고난을 당해도 부당한 고난을 먼저 받으시고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신 예수님을 닮아 부당한 고난을 참고,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 온 자의 삶인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로 살아가며, 아내는 남편에서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귀하여 여겨 사랑하고, 믿는 형제를 사랑하며,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욕하는 자들에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 곧 ‘선에 대하여 열심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