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21) "부르심에 합당한 삶"

베드로전서 3장 9절로 12절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 지난 시간에는 오늘 본문 앞 구절인 8절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형제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 다른 말로는 형제 사랑의 몇 가지 방식을 말씀해 주시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1) 구원받은 성도들이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다른 성도들을 대할 때에도 우리가 주께 받은바 원리를 따라서 대해야 한다는 것을 베드로 사도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차원에서 형제를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요, 또한 전에는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으나 이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온 자의 삶은 형제를 사랑하는 삶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원리를 형제에게 적용하는 것은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벧전 3:8)게 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행하는 것입니다.

2) 지난 시간에 살펴본 형제 사랑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교회 안팎의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가르쳐 준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와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온 자로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는데, 특히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욕하는 자들에 대해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먼저 오늘 본문 9절에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바로 이런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 이 말씀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먼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 주는 자가 되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에 순종하여 완전한 공의를 이룸으로 자신이 행한 그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3장 10절로 12절에서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시는 대로 율법을 행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없고, 모든 인생이 죄만 행하는 무익한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13장 23절에서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절대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선과 의를 행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오직 대속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향하여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아감으로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시려는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부르신 부르심의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지으심을 받은 목적, 곧 구원받은 목적을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씀은 원론적인 말씀이요,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가 가르쳐 주시고 있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은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선한 일”로 지으심을 받은 성도들의 삶의 실제적인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3) 여기서 ‘선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아가토스’인데, 이 단어는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선하신 하나님과 선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닮아서 선을 행할 수 있는 자들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말씀하는데, 이 삶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택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죽어 가시면서 행하신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로 24절에서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을 살펴본바 있는데,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물과 피를 흘리시며 생명의 기운이 꺼져가는 그 순간에도 말로라도 범죄하지 않으셨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으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친히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사 저주를 받으시고, 죽어가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9절에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라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자로 살아가야 하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답게, 예수님을 닮아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라는 말씀입니다.

3. 우리는 이 삶을 살기 위하여 주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1) 그리스도인 모두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추어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 삶은 주님께서 마태복음 18장에서 1만 달란트 빚진 종을 용서해 주신 임금께서 그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았으나, 형제의 100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은 자에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 18:33)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은혜가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것이라면, 누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욕을 한다 하여도 그것은 100데나리온에 불과한 것이란 말씀입니다.

2) 그런데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형제가 나에게 빚진 100데나리온의 빚을 용서하지 못하고 늘 넘어지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주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은 결심과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하루아침에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때때로 저에게 있고,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화의 삶도 은혜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기에, 우리가 날마다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형제의 100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 주는 삶,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 수 있기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은 거룩의 방편인 말씀과 기도로 주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3절로 5절에서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라고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성도가 거룩해지는 방편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만 거룩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하여 육신의 양식을 먹고 마시듯이 영적으로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은혜를 공급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기도로 호흡하며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주께서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가 이 은혜 안에 거할 때만이, 오늘 본문 9절이 가르치는 대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절감할수록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려 은혜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늘 예배의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일을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4.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받은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우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렇게 사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심으로 도리어 복을 비셨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복음 14장 27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고, 욕을 하는 것에 대하여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는 것이 우리 몫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이 길을 먼저 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2) 우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0절로 11절에서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시면서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게 되는데, 나를 사랑하여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15장 10절로 11절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할수록 신앙생활이 힘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우리가 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구원의 현실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죄에 대하여 산자요, 의에 대하여 죽은 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예수님께 돌아온 성도의 삶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를 고친다는 어떤 말씀도 그 사람을 치료하시는 어떤 행위도 없이 그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명하실 때, 성경을 놀랍게도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요 5:9)라고 기록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명하실 때 이미 그 사람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을 수 있는 치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순종하고자 할 때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시대 백성들에게 성전과 제사법을 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셨는데, 제사법을 주시기 이전에 이미 그들을 왕 같은 제사장 나라로 부르시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그 명령대로 준행할 수 있는 백성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신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할 때 은혜 주시는 주님이신 것을 생각하며 도우심을 구하고 구원받은 우리의 현실을 증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아담의 원죄를 이어받아 영적으로 죽은 행실을 하는 저주를 이어가는 삶을 살아가던 자들일 뿐이었습니다. 그 저주의 삶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를 짓는 삶 곧 사탄 마귀를 따르며 세상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삶으로써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할 때 아담의 후손으로 되풀이해야 했던 모든 저주가 다 끊어지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와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로 인하여 당하게 되는 죄의 형벌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때 “복을 이어받게 하”신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복을 이어받는다는 말은 나뿐 아니라, 나의 자녀 손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주시는 은혜와 기쁨의 복을 이어받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시면서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6. 오늘 본문 10절로 11절에서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이 말씀은 9절에서 이미 말씀하신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기 위해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10절에서 “생명을 사랑하다”에서 사용된 “생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조엔’이라는 말인데, 헬라어로 육신의 생명을 말할 때는 ‘비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여기 사용된 ‘조엔’이라는 단어는 영적인 생명으로서 ‘하나님과 연결된 영원하고 근원적인 생명’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하반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는 말씀에서 “생명”이라는 말씀도 ‘조엔’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의 “생명”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숨 쉬고 사는 육체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가치 있고 풍성한 삶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사랑하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풍성한 삶을 귀하게 여기고 그 삶을 충만히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에서 “좋은 날”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날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 앞에서 서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좋은 날”을 누릴 수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생명”이라고 하였는데, 그 영적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날이 바로 이 땅에서 누리는 “좋은 날”입니다.

그래서 이런 은혜를 소망하는 성도는 10절 하반절로 11절에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라고 하시고 있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 다음 구절인 12절에서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7.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이유는 상과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10절로 12절 말씀은 시편 34편 12절로 16절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 12절에서는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인용한 시편 34편 15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시고, 한 구절을 지나서 17절로 19절에서 여호와의 눈이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로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이유를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눈이 의인을 찾으시고, 그 간구에 귀 기울이시는 이유는 그들을 보시고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환난에서 건져 내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인하여 통회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여호와의 눈과 귀는 저와 여러분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빌며 살고 있는지를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자, 곧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생명 곧 은혜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 좋은 날을 누리게 하시고, 이 복을 자녀 손들에게 이어받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입으로 거짓말을 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8. 이와 반대로 오늘 본문 12절 하반절에서는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의 눈이 의인을 향하시고, 주의 귀가 의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는 것을 그들을 위기에서 건져 내시고,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 인 것을 시편 34편 17절로 19절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러면 오늘 본문 12절 하반절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악을 행하는 자들을 보시고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도 시편 34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4편 16절에서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창조와 통치의 대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악인들에게 그 얼굴을 향하여 드시는 것은 그 악을 행하는 자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에게 여호와께서 네가 다윗과 같이 나를 섬기면 네 위를 견고히 해 줄 것이라고 하셨는데, 여로보암이 우상숭배의 길로 나아가자 여호와께서 그 집의 모든 남자를 거름 더미를 쓸어버림 같이 말갛게 쓸어 버리셨고, 우상을 숭배한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를 다 진멸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 때로 연약하여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다면 부르심에 합당한 삶도 아니며, 복을 이어받는 행동도 아닙니다.

또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지 않고, 그 입술로 거짓말을 하여 악에서 떠나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고, 화평을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보시고, 구원에 합당한 자가 되기까지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징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징계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하시어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답게 - 선한 일을 감당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주님을 닮고,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드러내며, 이런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영적인 생명으로 충만하고 풍성하게 하시고 이 좋은 날을 날마다 누리게 하시는 복을 누리고 또 이 복을 우리 자녀 손들이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녀, 곧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일은 결심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12절에서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신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런 의인을 보고 계시고, 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고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루하루의 육신의 삶을 위해서 육의 양식을 먹듯이, 하루하루를 주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힘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은혜를 오늘도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는 주님께 구하여 주시는 은혜 속에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삶을 살아감으로 복을 이어받는 복된 삶, 하루하루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 속에 주시는 영적 생명의 충만한 속에서, 그 영적인 생명으로 충만한 좋은 날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