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예배 베드로전서 강론(19) "남편들아 이와 같이...."
베드로전서 3장 1절로 7절
“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1. 지난 시간 우리는 베드로전서 3장 1절로 6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를 따라서 아내가 남편에게 가져야하는 마땅한 도리는 순종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은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불신자일지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하여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는 이제 시선을 남편에게 돌려서 아내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순종이라면 남편들에게는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 볼 때에 주의 성령께서 잘 깨닫게 하시고, 깨달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 먼저 베드로 사도는 “지식을 따라서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지식은 가정에 대한 지식 곧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한 가정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자식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지식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지식이 아니라, 성경에게 가르치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지식을 말씀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 문제 전문가와 가정 문제 연구소가 많이 있는데, 이 분야의 전문가와 기관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 이 시대 사람들의 필요가 넘쳐나고 있다는 말이요,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이 땅에 수많은 가정들이 바른 가정의 모습이 무엇인지, 바른 남편과 바른 아내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가정의 위기 시대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이런 저런 견해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시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주에 세상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교훈을 말한다 해도 성도의 유일한 신앙과 삶의 기준은 성경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을 다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늘날 매스컴에서 들려오는 온갖 견해와 이론에 그리스도인들이 무방비하게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리를 자꾸 듣게 되면 그리스도인들도 무의식중에 세상 사람들의 주장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큰 함정입니다.
오직 저와 여러분은 ‘성경이 말씀하는 가정의 모습은 무엇이고, 남편과 아내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알기를 힘쓰고, 듣고 배운 바 그 교훈을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나의 가정을 견고히 세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시편 16편 5절로 6절에서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내게 주신 가정,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직장과 일터, 또한 내가 속하여 주님을 섬기라고 허락하신 교회와 교회에서 섬기라고 주신 직분과 구역, 전도회, 주일학교 이 모든 것이 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입니다.
나에게 허락해 주신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맞는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가정과 비교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아름답지 못한 것을 주셨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나에게 꼭 맞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적으로 나에게 허락해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내게 주신 것을 믿음으로 잘 지키고, 가꾸고 섬길 때 더욱 아름다운 기업이 되게 하시는 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또한 나에게 주신 구역 곧 나의 기업을 잘 사랑하고 잘 관리하고 섬길 때 5절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되어 주시고 또한 “나의 분깃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지식을 따라서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라고 하시는데, 성경이 가르치는 가정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지식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고 있으나 이 시간에는 크게 3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그러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정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첫 번째 지식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18절과 20절로 23절에서 남편과 아내 곧 부부를 하나님께서 서로 돕는 배필로 지으셨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여기 “돕는 배필”에서 “돕다”는 말은 히브리어 ‘에제르’인데, 이 말의 뜻은 약간의 도움을 주는 조력자나 비서와 같은 역할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께서 사람들 도우실 때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시편 20편 1절로 2절에서 “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 2절에서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라고 하실 때 ‘돕다’는 단어가 바로 ‘에제르’입니다.
시편 121편 2절에서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말씀하실 때 “도움”이라는 말도 “에제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도우실 때는 사람에게 부족한 약간의 것을 도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도움을 주시는 것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는다고 할 때, 남편은 아내가 할 수 있는 일 뿐 아니라, 특별히 아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돕는 존재로, 또한 아내도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도와야 하지만, 아내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남편을 도와야 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배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케네그도’인데 그 뜻은 ‘마주 보는 자’라는 뜻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마주보고서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준다는 의미에서 “돕는 배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남편에게 부족한 약간의 도움을 주는 아내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부족한 약간의 도움을 주는 남편의 역할을 말하는 것 아니라, 남편은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로 아내를 돕고, 아내는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일로 남편을 돕는 자, 곧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고유한 영역, 고유한 이치를 따라서 돕는 배필로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밖에 나가서 사냥하고 농사를 짓는데, 적합한 신체 구조를 주셨고, 아내에게는 자녀는 낳고 양육하며 가정을 돌보는데 적합한 몸과 은사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남녀의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주석가 매튜 폴은 ‘여자는 남자의 발에서 나오지 않아 짓밟혀서는 안 되며, 머리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남자를 지배해서도 안 되고, 옆구리(갈빗대)에서 나와 그와 동등하며 그의 팔 아래서 보호받고 그의 심장 가까이서 사랑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에게 주신 특성과 능력을 따라서 자기 역할을 감당함으로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돕는 배필”은 높낮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고유한 역할을 따라서 ‘서로 마주 보고’ 돕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의 고유한 영역에서 아내를 도와야 하며, 아내는 아내의 고유한 영역에서 남편을 도우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벽에 못을 박을 때 옆에서 잡아달라고 하면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아내가 설거지를 도와 달라고 하면 그것은 당신 일이니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시대에 육아와 가사의 적절한 분담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서로 도와서 감당하되, 특별히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역할, 아내에게 주신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복된 가정을 세워가는 주님을 왕으로 모신 귀한 가정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성경이 가르치는 가정 곧 남편과 아내에 대한 두 번째로 지식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24절에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남자는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여자도 그 부모를 떠나 남편과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이 말씀이 부모 공경을 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고, 결혼에서 부모를 모시고 한 집에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서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부모로부터 원리적으로 또한 정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수 있고, 부모님을 모시고 한 집에서 살 수 있으나, 그 결정은 오롯이 남편과 아내가 주도하고 합의하여 하나가 된 후에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정의 근본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둘이 합하여 한 몸, 한 뜻이 되어야 온전히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것이고, 자녀들을 사랑으로 바르게 양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 보다 우선되는 원리도 없고, 우선되는 관계도 없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보다 부자 사이가 더 좋아도 원리적으로 옳지 않으며, 모녀 관계가 부부 사이보다 더 친밀해도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아들이 결혼하면 아들 부모님들은 내 아들 이전에 며느리 남편의 자리가 먼저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딸을 결혼시킨 부모님들도 이제는 내 딸 이전에 사위의 아내의 자리가 먼저인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질서입니다.
5. 성경이 가르치는 가정 곧 남편과 아내에 대한 세 번째 지식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쳤고,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아내에게는 복종을 남편에게는 사랑을 명하신 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예표하기 때문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해야 하며, 또한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 일 뿐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서 구속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는 일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대할 때 내 아내에게 내가 그렇게 사랑할 만한 조건이나 충분한 자격을 아내가 갖추고 있는가를 찾지 말고,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정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사랑할 만한 자격이나 조건이 있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목숨을 건 희생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을 기억하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되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곧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사도 바울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며, 또한 아내를 향하여서 주께서 베푸신 이 사랑에 근거하여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교훈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편은 성경이 가르치는 남편 역할을, 아내는 성경이 가르치는 아내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를 이루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에서는 이 지식을 따라서 “아내와 동거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동거하”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순오이케오’인데, 이 말은 ‘순’이라는 말과 ‘오이코스’라는 말의 합성어인데, ‘순’이라는 말은 ‘함께’라는 뜻이고, ‘오이코스’는 ‘집’이라는 뜻으로서 ‘순오이케오’라는 말은 ‘한 집에서 같이 산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가 얼굴을 자주 보지 않을수록 덜 다툰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말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앞서 살펴 본 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대한 지식을 따라서 살아갈 때 시간적 공간적인 동거가 평안하고 행복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서 서로 돕고, 서로 이해하고,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가정에 돌아오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친구도 부모도 아니고, 부부입니다. 몸만 같이 사는 것이 동거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동거입니다.
7. 또한 오늘 본문 7절에서는 남편들에게 아내와 한 집에서 함께 살되, “그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이 열등하다는 말이 아니라,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은 ‘깨지기 쉬은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남편도 ‘깨지기 쉬운 그릇’으로 지으심을 받았지만, 아내는 더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연약하다는 말은 신체적으로 남성에 비해서 근력이 부족하고, 정서적으로 남성보다 더 예민하다는 말입니다. 남편보다 신체적으로 약하게 지으심을 받았으니 같은 일을 해도 더 빨리 피곤해지고, 정서적으로 훨씬 예민하게 지으심을 받았으니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지으심을 받은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남편들은 덜 연약한 그릇으로 지으심을 받았으니 더 잘 깨지기 쉬운 그릇으로 지으심을 받은 아내를 배려하고, 아내의 짐을 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더 연약한 그릇인 아내를 귀하게 여기는 방식입니다.
남편 뿐 아니라, 아내도 남편의 연약한 부분을 감당해 주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시편 68편 5절에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10장 17절로 19절에서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연약한 자의 상징인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연약하여 자기 짐을 지기 어려운 자들의 짐을 함께 나누어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은 가정 안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의 육체의 연약한 면을 감당한다면, 아내는 남편의 정서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부분의 짐을 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연약한 자 곧 구약시대의 표현으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연약한 자의 짐을 서로 져주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8. 또한 오늘 본문에서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 여기 “생명의 은혜”라는 말을 가정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것 곧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르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2) 그러나 더 나아가서 여기 말씀하시는 “생명의 은혜”는 베드로 전서 1장 4절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영생의 은혜’, ‘영생의 선물’을 말씀합니다.
지상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구별 속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은혜를 누리지만, 궁극적으로 남편과 아내 모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동일한 영생의 은혜를 누릴게 될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영생의 내용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을 더 사모하게 되고, 아내도 아내에게 주신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천국의 삶에 대한 소망이 더 충만해 진다는 말씀입니다.
9. 또한 오늘 본문에서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지식을 따라서 동거하지 않고, 연약한 그릇임을 알아 귀히 여기지 않고,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지 않으면 기도가 막힌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도할 수 없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귀하여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이며, 또한 내가 연약하여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기도가 막히면 하나님과 생명의 교통이 잠시 멈추게 됩니다. 하나님과 생명이 교통이 멈추게 되면,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막히게 되면 우리 삶에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를 간구할 수 없게 되고, 우리의 삶은 광야와 같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남편대로 기도가 막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아내도 아내대로 기도가 막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자신을 위해서 또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10. 끝으로 “남편들아 이와 같이”라는 원리를 따라서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앞 시간에도 본대로 여기서 말씀하시는 이와 같이는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서 말씀하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 온 삶을 말합니다.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온 삶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2장 18절로 25절 말씀에서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첫째로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온 삶은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때 주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고 부당한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삶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하는 고난은 죄가 있어 그 죄 때문에 매를 맞는 부끄러운 고난이 아니라,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부당한 고난을 받으사 우리에게 본을 끼치신 예수님을 자취를 따르는 부당한 고난을 받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 때문에 남편은 아내가 순종하지 않아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곧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하며, 주님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주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지 않아도 그리스도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에서 부당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남편과 아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삶입니다. 성화는 가정에서부터 일상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온 삶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벧전 2:24) 사는 삶입니다.
아내 입장에서 남편이 자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심 같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본성에 부합한 삶입니다. 또한 남편 입장에서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아내를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도 본성에 딱 맞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죄에 대하여 죽은 삶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산 자의 삶입니다.
반대로 아내 입장에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 남편 입장에서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아내를 사랑하는 삶이 바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내의 반응과 행실과 상관없이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가정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장소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부부 사이에서도 우리는 항상 내가 주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을 위해서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옥에서 영원토록 당해야 할 형벌을 십자가 위에서 대신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갚을 길이 없는 일만 달란트를 빚을 진 모습입니다.
이것에 비추어 보면 남편이 아내를 자신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남편이 예수님 믿는 아내를 핍박한다 하여도, 반대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강포를 행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받은 일만 달란트의 사랑과 은혜에 비추어 보면 100데나리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 농부의 사랑의 땀 흘림의 수고가 없이 논과 밭의 곡식과 과일이 저절로 자라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시편 126편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내는 믿지 않는 남편이 나를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해 주지 않고 도리어 핍박한다 하여도 남편에 순종하고 남편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의 씨를 뿌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게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아내가 순종하지 않아도 먼저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따라서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함으로 내가 받은 대속의 은혜를 가정에서부터 먼저 실천하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의 삶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가 될 때, 그런 성도의 모든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시는 귀한 열매를 기쁨 중에 거두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은혜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넘치도록 부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