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주일 낮예배 구원신앙의 표지(60) "오직 한 길을 찾은 사람"

요한복음 14:1-6

<요한복음>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I

1. 오늘도 읽어드린 본문 말씀을 강론할 때, 저와 여러분 모두를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표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 안에 더욱 견고하게 서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에 합당한 사람으로 이 흑암의 세상에서 빛의 아들들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성경이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단순한 이론에 불과하다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실체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정말 ‘구원’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우리의 실제 인격 전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정서와 의지와 행위,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증거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성경은 그 증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구원받은 다음에 어떤 새 사람이 되었는가를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성경이 우리와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구원받기 이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가장 극악하게 박해한 무리의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신약시대 이후의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에 ‘그가 그렇게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증거할 증인들 중에 ‘사울’이라는 그가 서 있었습니다.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그러나 그를 향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은 그를 구원하시어 당신의 증인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를 믿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어야 마땅하다’는 증인이었으나, 구원받은 이후에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의 증인으로 자기를 온전하게 드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도로서 자기의 행로를 주장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에베소의 3년간의 사역을 마친 후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행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스스로 도를 닦다가 터득한 무슨 신비로운 체험으로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한 일로 옥중에 갇힌 몸으로 디도에게 쓴 디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딛 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2. 이것을 생각하고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의 실체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과 관련하여 매우 긴요한 표지 하나를 제공하고 계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절대 표지(적은 믿음 큰 믿음이 아니라 이는 절대치)는 ‘예수님이 오직 유일한 구주, 하나님께 이르는 오직 유일한 길, 진리와 생명의 오직 유일한 실체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어 회개하고 예수님 믿게 하시어 구원받게 하실 때 ‘현저하게 나타나는 표지’입니다. - 적은 믿음 큰 믿음 상관없이 절대로 믿어야 할 표지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II

1. 오늘의 본문 말씀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둔 날 저녁 식사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 일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아직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그 행하시는 일, 저녁을 드시면서 ‘떡과 잔’을 가지고 “이것은 내 몸이라, 이것은 내 언약의 피라 하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의 죽음을 기념하라” 하신 말씀, 수건을 두르시면서 자기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의 일 – 이런 모든 것이 그들로 심히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주 예수님께 무슨 일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그들에게도 중대한 파국이 일어날 것을 제자들은 알고 불안하고 마음에 근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조금 걱정이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뿌리 채 흔들 정도의 극심한 공포의 씨를 가진 그런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모르실 리 없으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 그들의 마음의 근심은 단순한 근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존재 깊음 속에 그들 전체를 사로잡는 그런 ‘근심’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나 예수님께 중대한 위기가 찾아 올 것을 짐작하며 그것이 자기들에게 미칠 위협’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자들의 마음의 근심’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 살고 있는 모든 인생들의 문제임을 보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사람들의 ‘근심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무엇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사람의 모든 근심의 궁극적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것이 모든 인간 조건입니다.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변에 위협적인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결국 자기들에게도 파급이 되어 결국 자기들도 동일하게 목숨을 잃는 죽음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과 염려와 공포심’은 ‘내가 죽을까 무서워 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으로 태어난 사는 이들 중에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상태’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왕이나, 부자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조건에 있는 사람이나, 미개인이나 문화인이나,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이나 젊은이나 중년이나 노년이나 –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를 무서워 일생에 종노릇하는 하는 굴레’를 쓰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결국 ‘죽기 위하여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떤 처방도 증상만 가라앉히고 병의 원인은 남겨둔 채 병을 깊게 만드는 악덕 의사의 처방에 불과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진실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죽음이 자기에게 주어진다 하여도 그것을 자기 삶의 과정의 일부로 보면서 담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자유자요, 참된 행복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단서가 있습니다.

그 확신이 ‘자기 신념’(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신념과 같은) 아니라 절대 진리에 입각해야 합니다.

절대 진리가 아닌 다른 그 어떤 근거로 무의미하고 속임수입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어째서 인생이 ‘죽기를 무서워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가?’ - 인생의 그 조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절대 진리의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 절대해답을 제시합니다.

‘죄’ 때문에 사람들은 일생 동안 죽기를 무서워하며 종노릇한다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여 놓으셨습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라.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영적으로 죽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 날 이후 아담과 그 후손들 전체는 ‘영적으로 죽었고 일생에 매여 자기의 육신의 목숨을 염려하여 죽기를 무서워하며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모든 인생론’은 정말 무의미, 아니 속임수입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립니까?

창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것은 죄인의 육체의 죽음과 그 육체의 근본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조건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럼 그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요?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눅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의 행로와 영원한 거처는 달랐습니다.

나사로의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 낙원이라 일컫는 천국의 복락’에 들어갔습니다.

부자의 영혼은 ‘음부, 곧 지옥의 불못에 들어가 거기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혀를 서늘케 할 물 한 방울의 긍휼’을 구해도 줄 자가 없습니다.

지금도 그 부자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사로는 천국에서 그 영광과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사로와 부자 사이의 차이는 무엇이었는가?

흔히 사람들은 ‘나사로는 거지였으나 착하였고, 부자는 악하였기 때문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발상은 ‘사람의 도덕적 선행으로 덕을 쌓으면 천국에 가고, 그런 덕이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거짓된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의 짐작’에 불과합니다.

이런 큰 문제, 영원한 인생의 행로와 거처에 대한 것을 ‘그런 일반 사람들의 발상’에 맡기다니요?

여러분의 영혼의 행로에 관한 것을 ‘적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제발 ‘구원의 문제, 영혼의 문제, 영생과 멸망에 대한 문제’를 얼버무리게 하는 ‘악한 영 마귀’의 수작에 맡기지 마세요.

그것을 가리키며 사도 바울이 말하였습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III

1. 이 문제에 대한 처방을 우리 주님께서 이 본문에서 주십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 두 말씀을 합하여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구원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종노릇하는 데서 건져 주시어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과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으로 영원히 기뻐하고 기뻐하게 하며 영원히 찬미하게 하는 처방 – 그 복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바로 그분이 그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구주의 일’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그분이 ‘자기 백성을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시어 백성으로 영원히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죽으시려’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을 가리키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가리키시면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 자기를 믿는 것’을 동등하게, 하나의 선상에 놓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방도도 오직 하나,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기를 무서워 하는 마음에 근심하는 제자들’ – 그들의 말을 듣고 같은 믿음을 가질 자들(우리까지도)을 내다 보시고 – 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죽기를 무서워 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백성”을 구원하시어 영원하고 복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에게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런 내용을 말하는 종교나 철학이나 무슨 인생론이 있습니까?

‘성경대로 구원받은 자’의 지상행로는 ‘하늘의 아버지의 집에 자기의 거처’를 향해 가는 순례길입니다.

그러니 그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순례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실질적인 내용’입니다.

IV

1. “내 아버지의 집” - 집의 개념은 ‘건물의 개념 보다 더 앞 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집’이라면, ‘우리 몸의 거처’를 연상하나 더 궁극적으로는 ‘교제’입니다.

‘우리 집’- ‘우리 식구들이 함께 기거하면서 교제하며 의지하며 함께 고락을 나누는 아름다운 연합’을 의미합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아버지와 구원 받은 우리 사이의 영원한 교제를 방해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주 없는 완전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를 바라 보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하신 것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극치를 성령께서는 사도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 예수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것은 ‘너희에게 닥친 현안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적용하여 나가야겠지만, 그것 보다는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와 교통의 문제를 완전하게 회복하시는 절대 구원의 실체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믿고 그 안에 안식해야 만 ‘현안의 압박’도 그 빛에 비추어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현안, 우리의 일상 문제, 걱정거리’는 우리를 영원히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망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문제를 해소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하신 말씀은 ‘그 다음 날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 다시 오심’의 일련의 우리 주님의 행사 전체를 바라 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는 권리와 거처를 마련하시기 위한’ 오직 유일하신 구주의 행사입니다.

3.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는 ‘그 그리스도의 그 행하신 일의 모든 혜택, 은택, 곧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된 사람입니다.

롬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절대 표지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 행하신 일을 자기의 구원의 완전하고 충분하고 확실한 근거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의 절대 표지(적은 믿음 큰 믿음이 아니라 이는 절대치)는 ‘예수님이 오직 유일한 구주, 하나님께 이르는 오직 유일한 길, 진리와 생명의 오직 유일한 실체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어 회개하고 예수님 믿게 하시어 구원받게 하실 때 ‘현저하게 나타나는 표지’입니다. - 적은 믿음 큰 믿음 상관없이 절대로 믿어야 할 표지입니다.

저나 여러분의 회심의 이정표는 이 말씀이 믿어질 때에 세워졌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둘, 셋이 아니라 ‘오직 한 길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 선명하게 인식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그 사람이 구원 받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과 그 하신 일로만 자기 구원의 완전 충분한 근거를 믿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인생의 여러 교훈들의 풍조와 모든 인생론을 가르치는 선생들’을 다 버리고 오직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를 주장하는 ‘여러 교훈들과 여러 선생들이 있다면’ 그의 구원을 의심해야 합니다.

물론 구원받은 자들도 ‘세상에 살면서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그 유혹은 ‘오직 한 길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버리게 하려는 마귀의 수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4. 아직 이제까지는 그렇게 믿지 않았어도 오늘부터, 지금부터 그렇게 믿어요.

그러면 즉시 구원이 여러분의 심령에 임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기 집에 모셔 들인 삭개오는 그 날 즉시 예수님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눅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미 구원 받은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모든 근심과 걱정에 대하여 외쳐야 합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