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T JOONGSIM

강의안

말씀을 배우고 삶으로 나누는 자료입니다.

새벽기도회 폐허가 된 성터를 시찰하는 느헤미야

느헤미야 2:11-16


성경 본문

11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12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14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16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설교 말씀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가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 성 재건을 위하여 먼저 무너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을 돌아 본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1절로 12절에서는 예루살렘에 거한지 삼일이되던 날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아무에게도 알지 않고 밤에 두어 사람과 짐승을 따로 무너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문을 시찰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몸이 아프다면 어떤 병이 들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약을 처방하고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은 무너지고 성문은 불타버리고 그래서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란을 만나고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성을 다시 쌓고, 성문을 다시 달고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멸시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상황을 살피려고 밤에 짐승을 타고 나셨습니다.

밤 중에 무너진 성벽을 돌면서 조사하는 모습은 실로 감명 깊은 장면입니다. 모두가 단잠에 빠져 있는 그 밤에 일어나서 대적을 침략을 막던 성문과 성을 보호하던 높은 탑들을 돌아보며, 우상숭배와 율법의 공의의 삶을 버린 죄악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느헤미야는 눈으로 보았고,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3절로 15절에서는 성벽을 한 바퀴 돌아온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죄로 인해서 철저하게 파괴도고 불타버린 성벽과 성문을 돌아보면서 느헤미야는 과거 조상들의 죄와 자신이 더 일찍 이 일에 헌신하지 않았음을 인하여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벽을 다시 쌓고, 성문을 다시 다는 은혜를 구할 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말씀으로 훈련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7장까지 성을 재건하고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다 기록한 후에 8장에서는 에스라와 함께 백성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바로 세워가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어떤 마음으로 성벽을 쌓고, 성문을 달았는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성벽을 다시 건축할 수는 있고 불타버린 성문을 다시 달수 있으나, 그들이 다시 범죄 하면 성이 또 다시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당장 해야 할 일뿐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가는 일들에 더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시찰하고 이 백성의 죄가 많고, 영적으로 게으르며, 죄악 가운데 거하고 있는 이들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어 이 일에 힘을 쓰리요. 하고 다시 수산성 아닥사스다 왕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시찰을 한 것입니다.

16절에서는 방백들은 느헤미야가 행한 일을 알지 못하였고, 느헤미야도 그들에게 고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왜 고하지 않은 것입니까? 기도하며 마음으로 준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17절 이하에 보면 때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이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불편한 현실 속에서 안주하며, 그 상황을 바꾸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누구를 책망하지도, 열심 있는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지도 않고, 고난 받는 백성들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그 일을 감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을 구원하시되, 죄인으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사람 보기에 대한한 일을 했어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과 비교할 수 없이 아주 작은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소원합니다.